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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제 Jul 13. 2023

- 백로 -

작은 여유 부리기

아들 눈에 다래끼가 생겨서 쉬는 시간 없이 돌아가는 안과에 들르기로 했다.

거리가 있어 평소엔 차를 끌고 병원에 다니지만,

아들 하교시간도 일렀고 날도 좋았어서 우리 둘은 산책 겸 걸어가기로 했다.

마침 그날 딸은 현장학습에 가서 오후 늦게나 올 예정이었다.

우리가 시장을 가로질러 병원으로 향하는 도중에,

백로 한 마리가 하늘을 가로질러 날아가는 걸 보았다.

우리가 가는 방향으로 백로가 날아갔기에

가다 보면 또 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를 걸었다.

시장입구에 다다르자 근처 개천에서 먹이활동하는 백로를 다시 볼 수 있었다.


“우리 잠깐 백로 보고 갈까?”


“좋아, 엄마!”


우리는 백로가 수풀을 뒤지며 먹이를 찾는 모습을 관찰했다.

사진으로 볼 때보다 훨씬 가느다란 목과 작은 머리를 신기하게 보았다.

그렇게 한참을 백로를 보았고, 병원으로 가면서 계속 그 이야기를 했다.

병원 도착시간은 내 예상보다 훨씬 늦었지만,

우리 아이를 주로 보던 담당 의사는 휴진이었고,

다른 의사는 2시간짜리 수술에 들어가서, 일찍 왔어도 오래 기다렸어야 하는 걸 알게 됐다.


“2진료실 의사 선생님 수술 끝나려면 20분 기다려야 한대.”


“백로 보고 오길 잘했다. 그치, 엄마!”


“그러게. 살아가다 보면 지금 아니면 볼 수 없는 게 있는데, 때마침 잘 보고 왔다.”


백로는 다음에 보자고 아이를 끌고 일찍 병원에 올 수도 있었지만,

여유를 부린 게 나쁘지 않았다.

진료를 끝내고 근처 롯데리아에 들려 감자튀김과 아이스크림을 사 먹으며 아들과 미니데이트를 즐겼다.

오래 걸으면 아들이 힘들어할 법도 한데,

엄마와의 시간을 독점해서 아들도 즐거웠던 모양이다.

오늘은 다래끼난 눈을 째지도 않았고, 백로도 보았으며, 엄마랑 맛있는 간식도 사 먹어서 정말 운이 좋은 날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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