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원의 행복
여름휴가에는 매년 시댁에 간다. 부산이니 바닷가에 발 좀 담그며 휴가 기분 내곤 했는데, 올해는 그래도 아이들 위해서 어디 한 군데는 들러야지 싶어 해운대에 있는 수족관도 예약했다.
수족관에 들어서자 할아버지와 손자는 빛의 속도로 사라졌다. 두 사람이 어찌나 빨리 앞서 가는지 나중에는 일부러 전화를 걸어 찾아야 할 정도였다. 남편은 웬일로 열심히 가족사진을 찍어줬고, 시어머니와 딸, 그리고 나까지 셋은 느긋하게 구경했다. 장소가 그렇게 크다고 생각하진 않았는데 두 시간쯤 있었던 듯싶다. 아이들이 좋아해서 더 흐뭇했다. 사는 곳이 시골이라 이런 장소로 오려면 일부러 시간을 내서 가야 한다. 외출을 자주 못하는 저질체력인 엄마는 또 미안한 마음이 쌓인다.
출구가 가까워지자 기념주화 파는 자판기가 보였다. 아들이 그 앞으로 달려가 나를 불렀다.
“엄마!! 이거 봐!!”
신이 난 목소리였다.
사실 아들은 전부터 금화를 가지고 싶어 했다. 그래서 다이소나 대형문구점에서 가짜 동전을 찾았는데 의외로 파는 곳이 없었다. 금박으로 감싼 동전 모양 초콜릿만 보였다. 꼭 사야 하는 물건은 아니라 눈에 띄면 사자고 미뤄뒀었는데, 놀러 온 이곳에서 우연찮게 금화 모양의 기념주화를 발견했으니 얼마나 신이 났을까.
기념주화는 한 개당 5천 원이었다. 펭귄이 그려진 주화 모형을 보더니 딸도 가지고 싶다고 말했다. 두 개 만 원이네. 저 조그만 가짜 동전을 만 원이나 주고 사야 하다니 고민하던 찰나에 할아버지가 손주들을 위해 카드를 내미셨다. 아이들 손에는 상어와 펭귄이 그려진 주화가 각각 쥐어졌다.
“아따 비싸다.”
작은 동전을 보고 시어머니도 나와 같은 생각을 말씀하셨다. 상술이네 어쩌고 하면서 출구까지 나갔는데, 출구엔 기념품코너가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간과하고 있었다. 진정한 상술은 사실 그곳에서 펼쳐지는데 말이다. 수족관의 마스코트들이 인형이 되어 몇 만 원짜리 몸값을 뽐내고 있었고, 그곳을 통과해야만 우리는 이 수족관을 탈출할 수 있었다.
우리 아이들은 사달라고 떼를 쓰지는 않는다. 항상 나와의 대화를 통해서 사야 할지 말아야 할지 결정했다. 기념주화도 내가 사면 안 되는 이유를 얘기했다면 납득하고 넘어갔을 터였다. 그렇지만 이런 장소에 오면 아이도, 엄마인 나도 마음이 흔들린다. 갖고 싶어 하면 사주고 싶다. 여기서만 파는 거니까. 오늘 안 사면 다음에 언제 살 수 있을지 모르니까. 평소에도 좋아하던 상어 인형. 그냥 봐도 귀여운 수달인형, 그 외에 다른 움직이는 장난감 등등. 아이들이 혹할 만한 건 많았다.
그런데 의외로 고민할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아까 산 기념주화를 손에 꼭 쥔 아이들은 빠른 속도로 가장 먼저 기념품코너를 빠져나갔다. 이미 갖고 싶은 걸 가져서 다른 게 눈에 들어오지 않았나 보다. 비싼 기념품들이 쌓여있는 ‘위험한 함정’의 회피용 치트키를 고작 만 원으로 구매한 셈이었다.
동전을 샀든 인형을 샀든, 이날 산 물건들의 결말은 며칠 못 가고 집안 어디에서 굴러다니다 관심 밖으로 밀려나는 거다. 그렇게 손에서 놓지 못하던 기념주화도 칠판 자석에 붙어서 며칠 째 방치되고 있으니까. 비싸고 덩치 큰 인형을 샀다면 한 자리 차지하고 있었을 텐데 작은 동전만 사서 얼마나 다행인지. 돈도 굳고 자리도 굳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