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원의 행복
고양이들 박스 사랑이야 집사들 사이에서는 상식이다. 크기를 불문하고 일단 박스가 보이면 몸부터 구겨 넣고 보는 고양이 모습에 집사는 입가에 걸리는 흐뭇함을 감출 수가 없다. 그래서 쇼핑할 때 기왕이면 박스가 있는 상품을 골랐다. 그게 우리 집은 컵라면이다. 낱개로 살 거, 박스에 들은 6개들이 작은 컵라면 제품으로 샀다. 그 컵라면 박스를 또 우리 고양이들이 특히 선호한다. 1층, 2층에 나눠 냥이들 길목에 놓아두면 마치 트랩처럼 한 마리씩 걸려든다. 덩치 큰 나미가 들어가면 박스 옆면이 불룩해지는데, 힘을 버티지 못해 기어이 터져도 고양이들은 계속해서 박스에 들어갔다. 박스에 찡겨 들어가 있는 모습은 좋아도 터진 박스는 보기 흉해서 버려야 했다. 박스가 조금만 더 튼튼하면 좋을 텐데 아쉬웠다.
최근 집사들 사이에 핫(?)한 아이템이 있다. 바로 시장표 소쿠리. 소쿠리를 여러 개 놓아두면 고양이들이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한 마리씩 들어가 자리를 잡는다고. 박스처럼 고양이들이 안락함을 느낀다나. 우리 집도 저렇게 들어가 있으면 좋겠다 싶어 일단 한 개만 시험 삼아 사 보기로 했다. 천 원의 저렴한 가격이라 부담도 없었다. 바로 나미를 넣어봤는데 공간이 널널이 남았다. 음 이런 곤란한데. 고양이는 몸을 좀 눌려야 좋아하는데 작은 걸로 골라올걸. 아니나 다를까 나미는 잠깐 들어가 있더니 그 후로 쳐다도 보지 않는다. 말분이는 냄새만 쓱 맡고는 한 번도 들어가지 않았다.
다행히 은단이만은 소쿠리를 적극적으로 이용해 줬다. 덩치도 제일 작은 녀석인데 소쿠리 느낌이 마음에 쏙 들었나 보다. 나와 남편은 소쿠리에 들어간 은단이가 너무 귀여워서 이고 다니기 시작했다. 얼룩무늬 하나 없는 새하얀 고양이 고은단은, 소쿠리에 들어가 있으면 마치 돌돌 말아놓은 가래떡 같다. 오래전 떡집에서 갓 나온 가래떡을 광주리에 담아 머리에 이고 오던 엄마의 모습이 떠올랐다. 가래떡은 살짝 말려서 작두로 송송 썰어 떡국떡을 만들었다. 떡 써는 엄마 옆에서 긴 가래떡을 얻어 꿀 찍어먹으면 그게 참 맛있었는데. 소쿠리 하나로 별 게 다 떠오른다.
우리 아이들은 아빠를 쫓아다니며 가래떡을 팔라고 한다. 아빠는 이고 있던 소쿠리를 머리에서 내려 은단이 꼬리를 잡고 손을 칼모양으로 만들어 써는 흉내를 낸다. 은단이는 하악 대며 화를 냈지만 인간들은 재밌어서 배꼽이 빠져라 웃었다. 소쿠리는 매우 튼튼해서 이고 지고 다니고 고양이가 뒤집어엎어도 흠집하나 나지 않는다. 역시 추천템은 이유가 있다. 천 원의 행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