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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제 Sep 14. 2023

- 탈출 -

고양이와의 두뇌싸움


고양이는 마당에 나가고 싶다. 가장 말썽꾸러기인 흰 고양이 고은단은 미닫이 새시문에 달려있는 방충망 문 앞에 대기하고 있다가 가족들이 오고 갈 때 문이 열리면 재빨리 뛰쳐나갔다. 곧 잡혀 들어와 왔지만.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은단이가 문 앞에 대기하면, 일단 발이나 손으로 은단이를 막은 후에 움직였다. 바깥에 나가지 못하게 된 은단이는 심통이 나서 사람이 안 보이면 방충망 밑을 뜯기 시작했다. 쇼생크탈출의 주인공처럼 아마 꽤 오랜 시간 공을 들였던 모양이다. 어느 날 ‘탕탕’ 하며 문 흔들리는 소리가 나서 보니, 방충망 하단 틈으로 허옇고 긴 놈이 쥐새끼처럼 빠져나가 있었다. 현행범으로 바로 잡아들였다. 방충망 밑을 얼마나 섬세하게 뜯어놓은 건지! 사람의 손 못지않다. 저 작은 앞발을 봉인해야 했다. 마음 같아서는 앞발을 랩으로 꽁꽁 싸버리던지 하고 싶지만, 앞발이 방충망 원단 끝에 닿지 않는 정도로만 방충망 밑을 막는 게 당장 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집에 남는 압축봉 두 개를 연이어 방충망 프레임 하단에 촘촘하게 끼워 달았다. 이제는 못 나가겠지 하고 안심하던 차였다.

두 번째도 탈출한 지 오래지 않아 외출했다 돌아온 아빠에게 붙잡혀 연행되어 왔다.


“얘 왜 밖에 나가 있어?”


주둥이에는 풀을 물고 우물대는 허연 녀석은 어깻죽지를 붙잡힌 채 배를 축 늘어뜨리고 달랑거리며 매달려 있었다. 고양이는 집요하다. 성공을 맛본 고양이는 같은 부위를 또 노리고 파고들었다. 기어이 방충망을 또 뜯고 압축봉을 피해 빠져나갔다. 내가 고양이를 너무 과소평가했구나. 몇십 년을 살았어도 내가 아직 고양이의 앞발의 메커니즘을 이해하지 못했구나 생각했다.


“압축봉으로 막았었는데, 뚫고 나갔네. 대단한 놈.”


“혼자 했을 리가 없어. 말분이나 나미가 도왔겠지.”


상상의 나래를 편 남편은 은단이를 마주 잡고는 취조를 시작했다. 설마 그 녀석들이 도왔을까. 걔들 서로 사이도 안 좋은 거 알 텐데.


“너 혼자 벌인 일이야? 공범이 누구지? 빨리 불어!”


아빠가 버럭대자 은단이는 놀라서 털을 뿜어댔다. 탈탈 털리는 은단이의 출렁이는 몸을 따라 털도 나풀나풀 흩날렸다. 날리는 털은 마당에 내놓은 테이블 위로 소복하게 쌓였다.


“털만 날린다. 그만 털어.”


탈출해 봐야 좋은 꼴도 못 보면서 마당 나가는 게 그리 좋을까. 밑이 뻥 뚫린 방충망 사이로 모기 한 마리가 들어온다. 이대로 둘 순 없어서 또 머리를 짜내다가, 압축봉 사이를 벌리고 네트망을 달았다. 네트망은 고양이 발도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촘촘해서, 녀석이 며칠을 앞발을 밀어 넣으며 뜯어내려 낑낑댔지만 타격이 전혀 없었다. 이내 탈출을 포기한 은단이는 다시 우리를 보며 가냘픈 울음소리를 냈다.

고양이와의 두뇌싸움에서 드디어 인간의 승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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