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보아야 알 수 있다.
남편은 사람의 특징을 잘 잡아서 사물화를 잘한다. 동물에 빗대기도 하고, 물건으로 비유하기도 한다. 그 때문인지 사람을 한 번 보면 잊지 않고 잘 기억했다. 산책길이나 마트에서 누군가를 만나면 나는 모르고 지나치는데 남편은 잠깐 본 내 지인까지 알아챘다.
“방금 딸네반 00엄마 지나갔잖아.”
“누구? 그걸 기억한다고?”
나야 등하교 때 가끔 보긴 해도 남편은 참관수업 때나 잠깐 봤을 텐데.
참 신기한 능력이다. 매번 겪지만 감탄이 나온다.
나는 반대로 ‘안면인식’이 형편없는 수준이다. 자주 봐도 사람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한다. 내가 유일한 목격자가 되어 어떤 사건의 용의자 몽타주를 그려야 한다면, 이 케이스는 수사에 실패하게 될 거다. 나는 정말 오래도록 곁에 두어야 그 사람의 특징이 보인다. 그마저도 눈감고 떠올리라고 하면 선명하지 않다.
어느 날 휴대폰 케이스를 고르다가 라마 캐릭터가 눈에 뜨였는데 어디서 많이 본 거 같았다. 이 기시감은 뭘까 생각하다가 귀여워서 일단 샀다. 아이폰에 끼우고 흐뭇해했다. 그때 마주 앉은 짝꿍의 얼굴과 폰케이스가 나란히 눈에 들어왔다. 그제야 나는 그 기시감의 이유를 알았다. 라마 캐릭터의 익숙한 ‘무심한 듯 심통 난 표정’은 남편의 평소 얼굴이었다. 매일 보는 그 얼굴 말이다.
그 후로 텔레비전에서 라마가 나오면,
“너희 아빠 나온다.”
하고 아이들에게 농담을 던졌다. 덩달아 어느 사이인가 아이들도 아빠와 라마가 닮았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아빠를 제외한 세 사람의 공감대가 만들어졌다. 정작 주인공은 내가 어디가 닮았냐며 불만의 소리를 냈다. 한눈에도 자기가 보기에 라마와는 닮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이 그렇다. 남편을 그냥 보면 라마 이미지가 딱 떠오르지는 않는다. 그래도 우리는 라마와 남편이 닮아 보였다.
아들은 아빠 듣기 좋으라고 ‘팔다리가 긴 점’을 닮은 점으로 꼽았다. 그리고 나는 라마 특유의 무심한 표정이 닮았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딸의 화룡점정,
“아빠는 기분 나쁘면 라마처럼 침 뱉잖아.”
그 말의 우리는 와르르 웃음을 터트렸고, 남편은 기분 나쁜 표정으로 “퉤”하고 침 뱉는 시늉을 했다. 공식적으로 라마를 닮았다는 걸 인정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