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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제 Dec 25. 2023

- 안부 전화-

무뚝뚝한 아들의 전화


엄마는 한 해 두 번 정도 나에게 전화를 먼저 걸어온다.


“딸? 뭐 하고 사느라 연락도 안 해?”

“엄마. 무소식이 희소식이야.”


용건이 있을 때는 나도 전화는 한다. 오늘 만나 점심 먹자 정도? 만나면 엄마 상태 봐서 두런두런 이야기도 하고 하지만, 전화로 안부를 묻는 건 말을 알아듣기 힘들어서 꺼리게 된다. 문자 또는 카톡 같은 건 사용하실 줄 모르니 따로 사는 엄마와는 연락의 장벽이 상당히 높다. 이마저도 당신의 치매증세가 심해진 후로 엄마가 먼저 거는 일은 이제 거의 없다시피 해졌다. 다른 형제들은 자주 연락하려나? 내가 집안의 막내라서 아무래도 엄마와 나이차가 제일 많이 나니까 거리감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반대로 남편은 장남이다. 아무래도 장남, 장녀들은 부모가 겪는 인생의 어려움을 바로 옆에서 지켜봐서일까, 부모와의 거리감이 좁다. 철없이 자란 6남매 중 막내인 나와 비할바가 못 되겠지.


전화를 어려워하는 나에게, 결혼 전 남편은 결혼하면 시부모님께 안부전화를 규칙적으로 드릴 것을 요구한 적이 있었다. 그때 꽤 크게 싸웠던 기억이 있다. 그는 전화하는 게 뭐가 어렵냐며 타박했는데, 사실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전화 통화가 너무 어렵다. 오죽하면 할 얘기를 정확하게 정리해서 시뮬레이션 한 번 돌려보고 전화할 정도다. 그렇게 해도 유선상으로는 소리가 제대로 들리지가 않아서 대응하기 어려울 때가 많았다. 부산사투리는 안 그래도 알아듣기 힘든데 뭐라 대답해야 할 줄 모르겠다고 했더니 그냥 네네 하면 된단다. 이게 무슨 말이야. 그때는 나도 왜 전화를 드려야 하냐며 날 선 반응을 하긴 했었다. 날 선 반응을 하니 싸움이 됐었고. 적당히 다툰 후에 서로 입장 정리하고 화해했으니 결혼해서 지금 잘 살고 있지만.


이제는 별 일 아니면 나에게 부모님 안부전화를 드리라 하지 않는다. 대신 안부전화는 남편이 매일 드리는 모양이다. 휴무일이면 전화시간이 달라지니 옆에서 듣고 있으면 ‘오늘 쉬나?’ 하고 묻는 소리가 들려온다. 남편은 본인이 걸어놓고 그저 대답만 한다. 말이 없는 아들 대신 시어머니는 먼저 간단한 현재 상황을 말씀하시고 잘 있나 안부 확인 후 거의 바로 끊으신다. 그동안 남편은 ‘네네’와 침묵을 반복하더니 발신하고 30초도 안 돼서 통화를 끝냈다.


곁에서 듣는 내가 저래도 되나 싶을 정도의 짧은 안부 전화였다. 어이없어 웃었더니 남편이 의아하게 쳐다본다. 이 날만 이런 게 아니라 남편과 어머니와의 통화는 항상 이래왔다. 그러니 부담이 없었던 거다. 나는 머리를 쥐어 짜내 어색한 침묵을 없애보려 노력하는데, 전화를 건 당사자인 남편은 그럴 생각도 전혀 없어 보였다. 나는 우리 엄마하고도 그런 건 불편하던데 남편의 뻔뻔함인 건지 아니면 원래 모자 사이가 원래 그런 건지는 나도 모르겠다. 하기사 부모와 자식 간에 통화 중 내리는 침묵이 뭐 대수겠냐만.


우리 아들도 크면 나한테 저럴까? 초등 수업 끝나면 학교 끝났다고 전화해, “엄마!” 하는 목소리가 귓가에 달콤하기만 한데. 사춘기 지나면 아빠처럼 무뚝뚝해지려나 조금 겁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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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박과 궁상사이는 평범하게 살아가는 한 가족의 이야기를 다룬 일상툰입니다.

매주 월(정기) 목(부정기) 업로드하여 주 1-2회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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