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eine Apr 30. 2016

사랑에 대한 어떤 생각

떠나자, 그제서야 찾아 온 사랑이여

  문득 내가 행복해져도 될까? 생각이 들때마다 나의 발목을 붙잡는 것은 직전의 연애였다. 트라우마와도 같은 연애는 나를 묶어두고 과거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게 하곤 했다.


  늦어지는 오후, 미세먼지 농도는 아주 나빠 환기도 어렵다. 나는 저녁 약속까지 시간이 많이 남은 탓에 샤워를 미룬 채 강아지의 자는 모습을 지켜보거나 아이스크림을 먹거나 하며 무료한 기다림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러자 부속물처럼 떠오르는 어떤 시절.


  그 시절의 나는 누군가의 하루에 내 하루를 끼워 맞추느라 대부분의 시간을 기다리며 보냈다. 그 시간동안 오롯이 그 사람을 생각하며, 그 사람의 뒤통수를 바라본 채 가만히 있었다. 아마도 그때부터 나는 누군가를 미련하게 기다리는 법에 대해 통달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좋은 것인지.. 확신은 들지 않지만.


  그 사람과의 약속이 오후 일곱시라면 나는 열두시부터 기다린다. 그리고 머릿속으로는 계산하지. 몇시부터 샤워를 하고, 머리를 말리고, 옷을 고를지. 그리고 몇시에 나가서 버스를 기다릴지. 퍽 구체적으로. 그렇게 나는 하루를 낭비하곤 했다. 단지 그 사람을 만나기 위한 하루로, 내 인생 가장 젊은 날을 기다리기만 하며 보냈다.


  누군가를 새롭게 좋아하게 된 지금도 별반 다를 것이 없는 것 같다. 연애란, 왜 예습을 했는데도 낯선 범위인가. 왜 이미 수 차례 겪은 상황임에도 답을 쉽게 골라낼 수 없는가. 나는 어떤 연애에서 간신히 벗어나고도 또 다른 연애, 어쩌면 같은 연애를 향해 또박또박 걸어가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렇지만 나는 이 마음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내 인생은 사랑하지 않고 방치하는 순간 빛을 바라곤 해왔으니까. 재충전의 시간이 끝나고, 나는 내가 먼저 누군가에게 설레게 되었다. 내가 먼저 좋아한 상대와의 연애는 처음이다. 그래서 더욱 설레는지도 몰랐다.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지는 않을 것이다. 초라했던 나, 자존감이 바닥을 치던 나. 그때의 나로부터는 멀리 돌아설 것이다. 그러나 과거에 발목잡혀 겁 먹지도 않을 것이다. 이 감정이 식어버릴 것이라는 걸, 나를 바라보는 눈빛의 농도가 흐려질 것이라는 걸. 나는 잘 알고 있지만. 모른 척 그에게 영원히라는 말을, 내뱉고 싶어지는 어느 오후.

매거진의 이전글 극사실주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