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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ine May 19. 2016

바늘같은 사랑

어떤 연애

  네시간동안 카톡 답장을 하지 않는 남자친구를 두고, 여자는 미니시리즈 한 편을 완성했다. 그 드라마 속에서 남자는 만난지 한달여 된 여자에게 금세 질려버려 그녀를 떠날 궁리만을 하고 있다. 그리고 그 드라마는 여자의 마음에 수 없는 스크래치를 내며 상영한다.


  다음 날, 찝찝하게 부푼 가슴으로 확인해 본 카톡은 '잘자요' 세 글자로 한 통이었다. 여자는 심장이 쿵 내려 앉는다. 드라마를 끝까지 시청하지 않고 억지로 잠에 든 지난 밤이 더욱 애처롭게 느껴진다. 여자는 답장을 하지 않은 채 집을 나선다. 점심시간이 되도록 남자에게선 연락이 없다. 분명히 일어났을텐데, 분명히 출근을 했을텐데.


  그녀는 생각한다. 이 보이지 않는 줄다리기는 무엇을 위함인가? 지금 그에게 먼저 연락을 한다고 '나'는 을이 되는가? 그의 연락이 오지 않아 전전긍긍하고 있는 지금 나는 이미 을로 전락하지 않았는가.. 차라리 내 속이라도 편하자 싶어 그녀는 남자에게 카톡을 남긴다. '점심 맛있게 먹엉.' 기다렸다는 듯 남자에게선 답장이 온다. 찝찝한 마음이 조금 덜어진다.


  그는 어젯 밤 힘들었다. 그와 여자를 함께 아는 동료가 그의 어제를 여자에게 전했다. 너무 힘들어보였다고. 여자는 순간 마음이 무겁게 내려앉는다. 어제 내도록 힘들어 한 그를 두고 나는 대체 무엇을 했는가. 미니시리즈는 이별을 향해 방영되고 있었으므로 면목이 없어진다. 그리고 그녀는 마음을 고쳐 먹는다. 그에게 힘을 주겠다는 명목으로 카톡을 마저 보낸다. 오늘 하루도 힘내라고, 언제나 당신의 편이라고.


  상대를 향해 쥔 바늘이었는데 뭉툭한 끝에도 손이 베였다. 상처를 감싸쥐었다. 아프다고 굳이 소리내어 입술로 말한다. 내가 이렇게 아플 동안 당신 역시 아팠겠노라고 진심으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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