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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ine Jul 09. 2016

나는 아직도 가끔 그 사람을 생각 한다

가끔 어떤 노래에 반응 하는 나를,
문득 멍해지는 나를,
너를 앞에 둔 채로 저릿한 어느 곳을 향하는 나를,
나는 내 곁에 있는 이 사람에게 들키곤 한다.

  시간이 많이 흘렀다. 나를 아프게 한 시간으로부터 멀리 걸어 나왔다. 스스로가 대견할 정도로 나는 괜찮다. 다 털어내었다.


  한때는 나의 전부였던 과거의 그가 내게 돌아온 대도 내가 싫을 완강함까지 갖게 되었다. 그런데 나는 아직도 가끔은 서글퍼진다. 뜨겁게 싸우던 어느 밤이 갑자기 나를 관통할 때면. 그의 숨 냄새가 불현듯 내 코끝에 닿을 때면. 나의 이름을 부르던, 목소리가 어디선가 나를 향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럴때면 나는 나를 다그친다. 왜 여전히 이리도 미련하니. 시간이 얼마나 더 흘러야 되겠니.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나는 나를 '두기로 한다.' 어느순간부터는 내가 마음껏 먹먹해하도록 나를 가만히 둔다. 그런데 종종 이런 나를 '너'에게 들킬때가 있다.

  너는 나를 원망하지 않는다. 어른스러운 척 나를 넘겨짚으며 어설프게 나를 달래는 행위를 하지도 않는다. 너 역시 나를 '둔다.'

  너에게도 있을 것이다. 사랑했던 사람, 그 사람에게 맹세했던 부끄러운 영원, 그 사람과 나누었던 시간이 분절 된 기억. 너는 어떻게 그렇게 씩씩하게도 그 것들을 모두 등진 채 나에게 조금도 그늘을 보이지 않니. 나는 문득 드리운 나의 슬픔이 네 앞에서 부끄러워지기 시작했다.


  과거로 돌아가 미련한 연애를 하지 않을 것이다. 오래 전 나눈 감정에 대한 일말의 연민에도, 나는 흔들리지 않을것이다. 다만 가끔씩 꿈처럼 나를 찾아오는 이 기억에서는 영원히 벗어날 수 없을 것이었다. 마지막이기를 바랐던 티끌없는 첫 기억이 그때 바란 그 크기만큼 내게 머물기 때문이다. 그리워서가 아니라, 그저 기억으로 영원히 내게 머무를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여전히 그를 생각한다. 불쑥 솟아드는 기억은 불가항력적인 것이었다. 나는 내 20대 절반의 모든 기억을 잊지 않고서야 그를 잊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와 연관 된 모든 순간까지도. 그러나 나는 담담하다. 그의 기억이 떠오르면 농담처럼 너에게 꺼내놓을 수 있을만큼 무뎌졌다.


  그럼에도 이런 내가 가끔 울적해 보일때면 너에게 미안하다. 그를 향한 마음이 여전한 온도를 갖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이제는 나에게 네가 더 소중하기 때문이다.


  내 인생의 전부라고 느꼈던 그를 잊고, 너에게 정착하기까지 나는 꽤 오랜시간을 묵묵히 걸었다. 애써 달리지 않는 대신 멈춰서지도 않은 채로 꾸준히 너를 향해 걸었다. 아니 사실 목적지 없이 무작정 걷던 내게 네가 불쑥 모습을 드러냈다. 뒤를 돌아보니 나는 이미 과거로부터 멀어져있었다. 그래서 너의 존재가 가슴 떨리게 반가웠다. 그렇게 나는 너와 함께 걷는 인생을 택했다. 노선을 바꿔 너를 향해 걷는 것이 아니라, 내가 걷던 길을 네가 동행하는 것을 허락한다. 그래서 나는 지금 과거보다 훨씬 현명한 연애를 하고 있다.


  너를 내 곁에 데려다 준 꿈 같은 과거에 대해 감사하다. 어느 날 뭉클한 마음으로 그것을 너에게 고백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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