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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ine Oct 09. 2016

당신없이 너무 자주 행복해지는 내가

그녀의 20대가 온통 나라서

  내가 바랐던 20대의 나는 어떤 사람이었던가. 마냥 어른스럽게만 생각했던 스무살을 넉넉하게 지나친 지금의 나는 여전히 여고생의 그것과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다. 연애를 지나고, 무료한 대학생활을 지나고, 직장일이라는 것이 사람 살아가는 것이 새삼 별 것 아니라는 생각이 든 시점으로부터 나는 완연한 어른이 된 건지도 모른다. 어른이 된다는 건 애초부터 이렇게 별 것 아닌 일이었을지도.


  내가 가진 것 중에 가장 빛나는 것이라고 여겼던 모든 것이 나를 가로질러 간 지금, 내 곁에 여전히 머무른 것은 다름 아닌 엄마였다. 내가 어른이 되는 내내 머리가 희고 갱년기를 맞고 아름다운 처녀에서 나의 엄마, 더이상 스스로를 가꾸지 않는 주부가 된 여자. 나는 그녀의 하나뿐인 딸이었는데 어느새 하나뿐인 친구가 돼 버렸다. 나는 그녀에게서 잉태 된 그녀의 강아지였는데, 어느덧 그녀를 가장 아프게 무는 사냥견이기도 했다.


  내가 힘든 연애를 거쳐오는 내내 몰랐지만 엄마 역시 힘든 시간을 보냈다. 이유는 나 때문이었다. 내 자존감을 바닥으로 내리꽂고 나를 예민하게 만들었던 연애. 하루에도 몇 번씩 하늘로, 심해로 치 솟는 감정기복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 본 것은 나의 그녀였다. 이별이 나의 식욕을 앗아가고, 스트레스로 머리칼이 내 몸을 빠져나가고, 며칠사이에도 급격하게 살이 빠지는 나를 보며 엄마는 울지 않았다. 방문을 닫은 채로, 불투명한 어둠속에서 흐느끼는 나를 벽을 타고 느끼며 엄마는 나를 떠난 전 연인을 증오하지 않았다.


  다 지나가리란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엄마는 말했다. 치기어린 연애의 결과가 아니라, 마땅히 겪어야 할 성장통이라고 되뇌이며 엄마는 대못이 박히는 시절을 견뎠노라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나는 정말 성장했다. 엄마는 나의 이번 연애를 지지하고 있다.


  사랑이 나를 좋은 곳으로 이끌때마다, 내 미래가 온통 그 사람과의 건강함으로 두터워질때마다, 행복해서 감사하다고 묵주기도를 드리게 되는 순간마다, 나는 문득 생각한다. 나 혼자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가.


  스무살에 아빠를 만나 나를 낳기까지 7년이 걸렸다. 그 7년동안 엄마는 그 미워하는 할머니의 종교를 따라 기도를 하기도, 정화수를 떠다놓고 밤을 새기도 했었더랬다. 좋아하는 맥주도 끊고 나만을 위해 살았다. 나를 위해 예쁜 것만 먹던 엄마는, 어느덧 나를 위해 미운 것을 골라 입에 넣는다. 내 몫으로 남은 것이 온통 탐스럽고 완연한 것들 뿐일 때 나는 서글프곤 했다. 엄마의 청춘을 모두 살라먹고 큰 나는, 사랑에 자주 부딪히고 연애에 발목잡히며 나약하게 자랐다. 그 사실이 이제와서 죄스럽다. 충만한 사랑으로 자란 내가 유한한 남녀관계 앞에서 한없이 작아진 것이.


  엄마에게 묻는다. 나를 왜 사랑해? 그녀는 내가 너무 예쁘기 때문이라고 한다. 엄마의 안에서 엄마를 갉아먹으며 자란 내가, 대체 어디가 예뻐. 다른 곳 아니라 엄마 품으로 날아 들어 와주어 감사하다고. 엄마는 앳되게 웃었다.


  지금의 나보다 어린 나이에, 첫 연애 상대자와 결혼을 한 엄마는 언제 어른이 되었을까. 나는 연애를 통해, 여행을 통해, 이별을 통해, 대학생활을 통해 촘촘히 성장해왔는데 그 모든 것 없이 엄마는 어떻게 성장했을까. 나보다 어린 얼굴로 기어이 엄마 되는 삶 만을 선택한 그녀가 나는 아프다. 그래서 그녀의 존재를 하루에도 몇 번씩 잊고 행복해지는 내가 서글퍼지곤 한다.


  내가 엄마를 생각하면 가슴이 뜨거운 이유는, 엄마의 삶이 온통 나이기 때문이다.


  엄마. 내 곁에 있어줘서 고마워. 말하고 싶었는데 엄마하고 부르자마자 목구멍이 뜨거워져서 왜?하고 나를 향해 돌아서는 엄마를 쳐다볼 수 조차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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