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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ine Dec 02. 2016

겨울이 소복하게 쌓이는 소리

짧은 글, 생각나는 대로 쓰는 글

  봄에 시작한 연애가 겨울을 맞이했다. 지난 세 계절은 우리의 같음, 전 연애와 이번 연애의 다름을 깨닫게 된 시간이었다.


  엑스는 더위를 타지 않던 사람이었다. 한여름에도 땀이 잘 나지 않던 사람으로, 더위에 속수무책인 나와는 동 떨어진 인물처럼 느껴지곤 했다. 나는 햇볕밑에 조금만 서 있어도 약 먹은 병아리처럼 기운이 빠지고 어지럽고.. 뭐 그런 증상을 가진 사람인데.


  그래서 우리는 자주 삐그덕 거렸었다. 한여름에도 언제나처럼 20분을 걸어서 영화관에 가고 싶어하던 그는 왜 늘 걸어갔던 거리를 여름이라는 이유로 못 걷느냐고 내게 물었다. 나는 왜 가만히 있어도 땀이 나는 계절에 굳이 화장이 다 지워지고, 두피에 땀이 솟도록 기운을 빼야 하느냐고 다그쳤다. 우리는 서로를 이해할 수 없었다. 결국 영화관을 향해 걷다가 한껏 예민해진 나는 그에게 짜증을 내고, 그 짜증이 유난스럽게 느껴지는 그는 나를 다그치는 다툼이 생겼다. 다툰 이유는 단지 여름을 견디는 법이 서로 달랐기 때문이었다.


  그에 반해 나의 현재 애인은 나만큼 더위를 탄다. 땀이 나는 걸 싫어하고 나만큼이나 여름에 걷는 걸 싫어한다. 에어컨 바람을 좋아하고 쾌적한 곳을 찾아 데이트를 이어갔다.


  그럼에도 내 손을 잡았다. 손바닥 둘 그 사이로 땀이 맺히면 머쓱하게 손을 놓았다가 다시 잡았다가를 반복하면서.


  엑스는 손 잡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이었다. 어린 아이들 연애같다고. 그러나 지금의 내 사람은 늘 먼저 나의 손을 잡는다. 그러나 우리의 연애는 엑스가 우려한 것과는 반대로 조금도 어린 아이 같지 않다.


  영원히 끝날 것 같지 않던 여름이 몇해동안에 걸쳐 나를 지나쳐갔다. 그리고 내게 숨 고를 시간도 주지 않은 채 겨울이 왔다. 가을에 입으려고 작년에 산 코트는 드라이크리닝 비닐이 씌여진 채로 여전히 옷장안에 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봄, 가을은 참 짧다. 짧아서 아련하던 계절이, 지금은 다녀가는지도 모르게끔 달아나 버린다.


  나를 지나간 한번뿐인 굵직한 연애는, 어떻든 내 인생의 지표가 되었다. 나는 수없이 비교한다. 엑스와 지금을. 지나간 것과 나의 곁에 멈춰있는 것을.


  그리고 끝나지 않을 겨울 속에서 나는 여전히 둘이다. 긴 연애가 될 것이었다.



  * 보고있니 수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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