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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ine Mar 21. 2017

이별이 드리운 순간

짧은 글

  같은 이유의 다툼이 반복될 때, 유독 지친다. 그 것이 상대방의 잘못일 때. 그 사람은 이 관계를 노력하며 지키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으니까.


  다툼을 풀지 못하고 새벽이 지났다. 다음 날 아침 우리는 딱딱해져 있다. 서로의 식사도, 일상도 묻지 않는다. 그 정도의 여유 조차 없을 갈등이었다.


  사소한 일로 시작되었다. 언제나 다툼은 그렇다. 그러나 상처는 사소하게 지나지 않는다. 나는 곱씹을 때마다 문득 문득 모르고 있었던 상처를 발견한다. 날개뼈 위로, 손가락 끝으로 날카로운 멍이 들었다.


  나는 이런 날 출근을 하지 않았다는 점에 대해 불행함을 느꼈다. 혼자 집에 있으면 시계추는 무거워지니까. 한없이 고독하고, 무기력해지니까. 그래서 나는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직 이르지만 옷장을 모두 뒤집어놓고 계절을 바꿨다. 먼지를 털어내고 이부자리를 정리하는 내내 날씨는 쾌적하지 않았다.


  빨래를 널고 걸레질을 하면서 최대한 쉬지 않았다. 가만히 있으면 또 우울해질 터였다. 청소가 끝나자 마자 샤워를 하고 나갈 채비를 했다. 서점, 안경점, 마트... 미뤄뒀던 방문 목록을 작성한다. 나는 버스를 이용하지 않고 걷기 시작했다.


  읽고 싶었던 책은 재고가 없었다. 대신 새로 공부하고자 했던 과목의 이론서를 집어 들었다. 세일 하고 있는 팬시 들을 구경하고 내내 불편했던 렌즈를 새로 구매했다. 이론서를 보기 위해 들른 스타벅스에는 슈크림라떼가 솔드아웃 되었고, 오늘따라 카페 내부가 시끌벅적했다.


  어느 것 하나 마음에 들지 않는 오후였다. 나는 휴대전화의 전원을 껐다.


  나는 애인을 계속 만나기 위해서 몇 가지를 포기하기로 한다. 바라는 마음, 내게 조금 더 예민해해주길 기대하는 마음. 그를 위해서가 아니라, 내 마음을 위해서. 내가 받을 상처를 피해가기 위해서.


  나는 늘 이별을 앞두고 이런 행보를 걸었다. 내 마음을 차분하게 정리하고, 상대방에게 갑작스러운 이별을 던진다. 그게 나의 가장 잔인한 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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