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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ine Aug 02. 2017

당신과의 기억을 쓰다

추억으로, 편지로

  버스에서 하차하기 위해 손을 뻗었던 과거를 떠올립니다. 그 날 버스 속 승객은 당신과 나 둘 뿐이었고 우리는 13개의 정류장을 지나는 내내 손을 잡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내려야 하는 정류장에 다다르고, 우리는 서로의 손을 떠날 찰나의 순간이 아쉬워 두손을 잡은 채 하차 버튼을 함께 눌렀습니다. 우리의 키 차이때문에 당신은 앉은 상태로 나는 엉거주춤 서서 경보음을 맞았습니다. 그때의 우리는 그것이 얼마나 즐거웠던지 계단을 밟아 내려가면서도 숨이 차도록 웃었어요.


  나는 버스를 탈때마다, 내가 내려야 하는 어느 곳에 버스가 정차할 때마다, 그 날이 떠오릅니다. 누군가 붉은 벨에 손가락을 가져다 댈적마다, 삐-하고 경보음이 울릴 때마다, 나는 우스웠던 그 날을 생각하며 어쩐지 눈물이 날 것만 같은 기분에 휩싸입니다.


  당신에게서 부지런히 걸어나온 길지 않은 시간동안 나는 우리의 추억 속을 부유하다가, 혼자 벗어나기를 반복했습니다. 어느 밤에는 찬란한 꿈으로 그 시절에 닿았다가, 새벽 빛과 함께 현재의 비린 시절로 되돌아오곤 했습니다. 그럴때면 나는 베개에 얼굴을 묻은 채로 얼마나 다시 꿈으로 돌아가고 싶어했는지 모릅니다.


  공허한 시간을 견디다 견디다 나는 밖으로 나갑니다. 불편하고 예쁜 구두를 신고, 입술은 아무말도 하지 않는 채로 여름의 긴 해가 뉘엿해질때까지 집으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몇 대의 버스를 보내고 집을 향하는 버스에 올라선 나는 어느 시절 당신의 손을 쥔 내가 그랬듯 손등으로 벨을 누릅니다. 당신의 손을 놓은 나는 두 손 무거운 쇼핑백 가득 돈을 쓰고 오늘이라는 시간을 쓰면서, 그것들을 소진하면서 마냥 흘러가고 있는데. 왜 당신의 기억은 써도 써도 여전히 넘치는지. 바닥날 겨를 없이 충만한지. 나는 영문을 모르겠습니다.


  현관을 열자마자 영수증이 구겨 들어있는 가방과 쇼핑백을 침대 위로 던져놓고, 내내 견뎠던 숨을 토해냅니다. 내 안의 당신이 여전히 가득해서, 나는 헛헛합니다. 그리움은 써댈 수록 부피를 키워, 어느새 나의 키를 덮습니다. 나는 그 그늘속에 조용히 파묻힙니다.


  그리고 언제까지고, 영원히 당신이 읽지 못할 편지를 씁니다. 나는 지금 이렇게 살고 있다고. 쓸쓸하다가 울적하다가, 또 하루를 견뎌내고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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