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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ine Jan 28. 2017

사랑하게 될 줄 알았어

우리 처음 만난 그 날에

  - 안녕하세요.


  그와 만나게 된 것은 정말 우연적이었다. 매표소에서 실수로 스위트 박스 자리를 예매했는데, 옆 자리에는 이미 사람이 있었다. 자리를 확인하고 약간 난감하던 차에 눈이 마주치고 우리는 인사를 했다.


  사내에서 얼굴만 알고 인사 없이 지내던 그와 그 곳에서 마주치고 결국 함께 커플석에 앉아 함께 영화 '귀향'을 보는 내내 나는 어깨가 맞닿는 것만으로도 소란한 설렘을 느꼈다.


  나는 품에 안은 팝콘을 서로 무릎에 나눠 올린 채 손이 교차되지 않도록 신경을 쓰면서 팝콘을 입에 넣었다. 처음 맡아보는 향수 냄새로 박스가 가득하게 차올랐다. 옥스포드 셔츠 차림의 그는 어른의 얼굴을 하고 스크린을 응시했다, 그러다 나를 훔쳐보는 시선이 간지럽게 동공으로 와닿았다.


  영화가 절정을 지나고 그는 내 손바닥을 가져가 검지손가락으로 무언가를 긁적였다.


  - ?


  그가 두번 더 적고도 내가 영문 모르는 표정을 하자 귓속말을 했다.


  - 끝나고 집에 같이 가요.

  - (끄덕끄덕)

  - 치킨 먹으러 가면 더 좋고.


  다시 한번 끄덕하자, 그는 조용히 웃었다. 우리는 처음 대화를 나눈 그 날 영화를 보고, 집까지 멀지 않은 길을 나란히 걸었고, 그의 단골집이라는 치킨 집에서 치맥을 했다. 자리를 옮겨 소주도 한 잔 했다. 그러는 동안 쉬지 않고 떠들고 웃으며 수없이 많은 주제로 대화를 나눴다. 선한 눈은 눈꼬리가 접혀 들어가는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그 밤 우리에게서는 무언가가 피어 올랐다. 세살 위의 그는 금세 내게 남자가 되었다. 큰 키와 넓은 등. 긴 손가락과 둥근 코 끝. 나는 세심하게 그를 뜯어보며 어느 순간 떨리기 시작했다.


  그와의 연락이 첫 만남부터 끊기지 않고 이어졌다.:알고보니 이웃사촌이던 우리는 거의 매일을 만나서 야식을 먹었다. 그가 집으로 초대해, 파스타며 필라프를 만들어주기도 했다. 그러는 동안 나는 그를 좋아하게 됐다. 머지 않아서 그와의 연애가 시작되었다. 우리는 손을 잡고 품을 나눴다. 어색하지 않게, 내게 어떤 정의가 내려지기 전 낯선 타인이던 그는 연인이 되었다.


  응. 나는 너를 처음 만난 그 순간, 사랑하게 되리란 것을 알았다. 우리의 우연한 만남은 운명적인 것으로, 서로에게 이끌리던 감정은 운명으로 새 추억이 덧입혀진다. 연인이 된 우리는 그랬다.


  영화보는 것을 좋아하고, 닭발을 좋아하는 공통분모만 알고 시작했던 우리는 사실 더 많은 점이 통했다. 좋아하는 음식, 좋아하는 음악, 잠이 많은 점과 군것질을 좋아하는 것 그럼에도 묘하게 달랐다. 아침 잠을 잘 이겨내는 나와 그렇지 못한 그. 정리정돈을 좋아하는 나와 꺼낸 물을 좀처럼 냉장고로 다시 넣지 못하는 그. 어느 것은 같아서 좋았고 또 어느 것은 달라서 좋은 것들이었다. 적당히 섬세하고 적당히 무른 그 사람은 내게 처음 만나보는 유형의 남자였다. 그 사람 역시 내게 그런 칭호를 붙여주었다.


  생각한다. 우리가 그 날 그저 스쳐지났다면 어땠을까? 나는 우리가 첫 날 조용히 사랑에 빠진 것이 참 다행한 일이라는 것을 안다. 그리고 내가 후회하지 않는 것이 다시 다행스럽다.


  우리의 연애에도 기승전결이 있다면 마냥 상승하던 시기는 이미 지났고, 어떤 절정은 지나갔고, 어떤 절정은 아직 이르다. 우리의 연애는 차분하게 아주 미세한 곡선으로 흐른다. 그러다 가끔은 바닥으로 치닫는다. 또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을 때가 있다. 우리의 연애가 아직 뜨거움을 느끼게 하는 순간들이다.


  같은 이유로 몇 번 더 싸우고, 한 번 쯤은 헤어졌다가 만나기도 하고, 울고 화해하며 연애가 이어질 것이다. 나는 그것을 초연하게 기다리고 있다. 그 사실이 끔찍하게 싫지 않다. 당신을 만나 지지고 볶는 지금이, 어쩌면 당신을 스쳐 지나갔을 경우의 수보다 훨씬 찬란하다.


  그 순간으로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나는 당신에게 첫 눈에 반할 것이다. 그리고 어떤 과정을 다 겪어내고 당신과 연애 할 것이다.


  이렇게 될 줄, 나는 그 날 이미 알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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