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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ine Mar 31. 2017

사랑이 바닥났음을 들켜버린 순간

  혼자 있는 밤에 때로는 너의 이름을 불렀다. 부를때면 그것이 몇번째고, 목소리가 떨렸다. 너를 처음 불렀을 때 처럼. 물결에 반사되는 가로등처럼 너는 해사하게 뒤 돌아 보았다. 창아. 나는 그저 너를 불렀다.


  그 이름은 너무 많은 것을 담고 있어서, 나는 그저 너를 부름으로써 내 마음을 일러주곤 했다. 너는 아는지 모르는지 웃다가, 말다가, 때로는 답답한 듯 인상을 쓰기도 했다.


   우리의 관계가 바닥나 버렸을 때, 너의 어깨가 더 이상 내게 맞닿아 있지 않을 때, 항상 나보다 멀리 가 있는 너의 눈동자에 대고 나는 목소리를 냈다. 창아. 잠시 멈춰서는 너의 호흡 위로 다시 한 번 너를 부른다. 창아. 너는 풀었던 와이셔츠 소매 단추를 끼우고 쇼파 위에 걸쳐 두었던 자켓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더는 나를 바라보지 않은 채 현관 앞에 선다. 나는 앉은 그대로 눈을 감는다. 의도하지 않은 숨이 터져나올까봐 조용히 너의 이름을 읊는다. 너에게 들리지 않을 정도로만. 창아.


  문은 열리지도 닫히지도 않은 채였다. 우리는 그렇게 수 없는 호흡을 했다. 창아, 너는 무엇을 망설이고 있니.


  창아, 너를 처음 사랑했던 날이 떠오른다. 그 당시 내 감정이 사랑이었나, 지금은 확신이 없다. 그러나 나는 너를 불렀다. 그리고 나는 사랑이, 사랑한다는 말이 허락의 도구가 되어버렸음을 나는 후회했었다


  관계 도중, 니 입술에서 터져 나오던 신음을 잊지 않는다. 그리고 모든 움직임을 멈추고 우리는 눈을 마주쳤다. 그 온도로, 그 음색으로 너는 누구를 불렀니. 식은 그의 품에서 빠져나왔다. 그는 아무 것도 걸치지 않은 다리를 휘적거리며 베란다로 나갔다. 찰칵, 찰칵 마찰음이 들리고 부연 연기가 그의 머리통을 가로질렀다. 나는 속옷을 챙겨 입었다. 그가 연신 담뱃불을 붙여내는 동안, 잠에 드는 것을 목표로 했다. 그가 불렀을 어떤 이름을 잊고, 그 소리에 뒤돌았을 흰 얼굴을 잊으려 애쓴다. 내가 눈을 떴을 때 침대는 비어있었다. 너는 내게 끝내 변명 하지 않은 채 자리를 떠났었다. 너를 다시 부른 건 또 다시 나의 입술이었다.


  창아. 우리 관계에서 나는 내가 먼저 사랑을 느꼈다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그게 맞았나. 사실은 나만 사랑을 느꼈던 관계였던가 생각한다.


  나를 떠나기를 망설이며 구둣발을 주춤거리는 너에게 안도를 느끼는 내가 새삼 초라하게 느껴진다. 창아. 나는 너에게 무엇이었니. 너는 나에게 부를 수 있는 이름이었는데.


  울음 대신 터져 나왔던 너의 이름이, 비명처럼, 때로는 탄성처럼 튀어 나오던 이름이, 나는 항상 너였다. 창아.


  이내 도어락이 열리고, 닫혔다. 새삼스러운 것 없는 일이었다. 너를 만나며, 창아, 내가 혼자이지 않았던 순간이 있던가. 창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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