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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ine May 02. 2017

내가 더 사랑한다고 자만했던 시절

짧은 글

  내가 보고 자란 사랑은, 엄마를 향한 아빠의 그것이었다. 사무실로 출근을 하자마자 엄마에게 그 사실을 알려주는 것. 엄마의 점심 메뉴를 함께 고민해주는 것. 아무리 중요한 사람과의 미팅 중에도 엄마의 전화를 꼭 받아서 끊는 것. 오후 시간에는 엄마가 낮잠에 들때까지 문자를 나누고 퇴근을 앞에 두고 엄마에게 전화해서 얼른 보고싶다고 말하는 것. 그리고는 업무가 끝나자마자 집으로 향하는 것. 매일 같이 저녁을 먹고, 그게 힘들더라도 꼭 한 침대에서 잠드는 것. 새벽에 깬 엄마가 부시럭 거리는 소리에도 내내 깨지 않은 척 하다가 엄마가 침대에 도로 누우면 팔베개를 해주는 것.


  나는 아빠같은 사람과 결혼하고 싶었다. 누가봐도 애처가인, 나보다 엄마가 더 소중한 아빠를 존경했다. 그런데 나의 아빠는 종종 내 연애를 괴롭힌다. 세상에는 아빠 같은 사람이 또 없더라. 그래서 나는 나에게 아빠같은 애인이 되어주지 않는 사람들에게 상처받고 지냈다.


  나의 애인은 왜 나를 사랑하지 않지? 스스로 내 마음를 긁으며 푸른 생채기를 냈다. 결국 선택한 것은 이별이었다. 나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시간이 한참 지나고 나서, 내가 바로본 것은 엄마의 사랑이었다. 아빠에게 전화도, 문자도 용건없이는 먼저 하지 않는 그녀. 아빠가 좋아한다는 장어를, 본인이 싫어한다는 이유로 결혼 이후 단 한차례도 식탁에 올린 적이 없는 그녀. 아빠가 아플 때보다 반려견이 아플 때 더 동동거리는 그녀. 그렇다면 엄마는 아빠를 사랑하지 않는가?


  새벽 다섯시 반이면 눈을 떠 아빠의 아침식사를 준비하는 엄마가, 마주 앉아 아빠가 밥그릇을 모두 비워낼 때까지 생선 가시를 발라주는 엄마가, 아무리 피곤해도 귀가를 기다리고 늦게까지 저녁을 먹지 못했을 아빠를 위해 국을 데우는 엄마의 뒷모습이 나는 사랑인 줄 뒤늦게 깨달았다.


  그래, 어쩌면 당신도 나를 사랑했겠다. 물론 내게 위로가 되지는 않았다. 다만 당신을 떠올리며 더 초라해지지도 않았다.



* 사랑에 상처받은 분들의 댓글을 보며, 제 글에 공감하고 아파하시는 분들을 보면서 제가 답변으로 남기고 싶었던 댓글이 이렇게 길어졌습니다. 누군가 당신을 열심히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이쯤 되어선 당신도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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