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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ine Jun 18. 2017

며칠 전 이별한 당신

다시, 또 혼자

  나를 1년간 들끓게 했던 연애가 끝났다. 이별은 허무하게, 또 갑작스럽게 찾아왔다. 그 문턱을 바로 등지고 서서 나는 급한 숨을 정리했다.


  우리는 지쳤다. 더이상 싸우고 화해하는 일에 에너지를 쓰고자 하지 않았다. 그러나 여전히 사랑했다. 그래서 조금 벅찬 이별 중이다. 헤어졌다는 말을 누군가에게 물어 옮기기에 울컥하는, 그러나 사진을 정리하고 더이상 서로를 그리워하지 않도록 노력하는.


  1년의 추억을 상자에 모아두었다. 그 행위에 묘한 기시감이 들었다. 나는 이 직전의 연애에서도 똑같은 짓을 했다. 나는 이별 앞에서 지나 온 연애와 이별을 떠올렸다. 그때 학습했던 것을 상기시킨다. 힘들었지만 분명히 괜찮아졌다. 더뎠지만 잊었다. 나는 성장했고 더욱 섬세하며 훌륭한 다음 연애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나를 타이르면서도 어쩐지 나는 울것만 같다. 두번째 이별 역시 힘들다. 여전히 낯설다. 세상에서 제일 가깝던 사람과 가장 먼 사이가 되었다. 매 끼니를 걱정하던 사이에서, 영원히 멀어져버렸다. 나는 마지막 통화를 떠올렸다. 가까운 기억을 곱씹으며 점점 멀리의 기억을 향해 걸었다.


  당장 며칠 전 우리가 함께 했던 저녁 식사가 생생하다. 그 날 우리가 무슨 얘기를 했던지, 무슨 메뉴를 먹었는지, 당신의 옷차림이 어땠었는지. 당신도 그런가?


  그런 기억은 우리가 아직 서로를 완연하게 사랑하기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처음 서로를 자신의 인생으로 끌어들였던 순간으로, 당신에게 첫 눈에 반했던 시절로. 당신도 그런가?


  그렇다면 우리는 왜 헤어졌지. 나는 그 일이 기억나지 않는다. 당신이 몇달 전까지 사용한 바디워시 향기마저 생생한데 바로 며칠 전 일이 깜깜하게 느껴진다. 우리는 왜 이 시간을 버티고 있는 것일까? 아무리해도 익숙해지지 않는 고독이, 원래 자기 자리였던 나의 품으로 깊게 파고든다.


  우리의 시간이 산산히 부서진다. 나는 당신을 떠올리기를 그만둔다.


  일상에서는 살아진다. 일을 해야했고 사람을 만나기 위해 나를 치장해야했다. 그건 어렵지 않았다. 끼니때가 되면 밥을 씹었다. 맥주 한 캔을 모두 비웠다. 그러다 문득 슬퍼졌다. 몸을 가눌 수 없는 쓸쓸함과 허망함이 나를 덮쳤다. 그럴때면 전화하고 싶어져서, 그를 찾아가고 싶어져서 그것을 참느라 고생했다.


  무겁고 긴 밤을 간신히 보내고 해가 뜨면 1시간도 채 눈 붙이지 못한 몸이 현기증을 일으켰다. 그럼에도 나는 몸을 일으켜야 했다. 그렇게 견뎌졌다. 하루가 3일이 되고 일주일이 되어갔다. 이별이 지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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