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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ine Jun 28. 2017

헤어짐은 모든 관계를 제로 아닌 마이너스 상태로

그러니 당신, 다시 제로(zero)로 열심히 걸어가야 할 것이 아닌가

  너를 안으면 발목부터 뻐근하게 저려오던 감정을 기억한다. 이별을 겪고 퍽 시간이 흐른 지금 나는 너의 생각을 의식적으로 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이별 직후 나는 하루 온종일 너의 생각만을 했는데, 이제는 그렇지 않은 것이다. 문득 문득 하는 것이다. 그 사실이 나는 기쁜가.


  나와 연애한 당신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던 사람처럼 느껴진다. 우리의 연애를 아는 사람들은 모두 나에게서 당신 이야기를 아낀다. 나는 단지 사진 속 당신만이 떠오른다. 당신이 나의 앞에서 짓던 얼굴이 그 형상이 멀게진다. 당신의 음성이 떠오르지 않는다. 나 당신과 연애한게 맞았던가, 당신이라는 사람이 내 곁을 다녀가기는 했던가 아득하다.


  당신 역시 힘들 것이라고 믿고 견디던 나의 이별이 이리도 초라할 수 없다. 지금쯤이면 너는 나를 털어내고 어디론가 목적지를 향해 걸어가고 있을 것 같다. 나는 이별 후 자꾸만 뒤를 돌아보느라, 조금도 나아가지 못했는데. 당신은 어쩐지 괜찮을 것만 같다. 그렇게 생각하자 가슴이 저릿하다.


  운명이라고 색 입혔던 순간들이, 사실은 너무도 흔한 것들이어서 우리가 나눈 연애감정 뭐 그런 것들 역시 이별 앞에서 그저 흔해져버렸다. 우리 참 흔한 연애를 했구나. 싶다.


  당신의 편지를 외우는 내가, 당신의 집으로 향하던 버스 속 그 몇 개의 정류장 이름을 기계음으로 듣기만 해도 가슴 철렁하는 내가, 당신의 손가락 마디마디 정수리를 뻗어나는 머리칼 한 올에도 키스하던 내가, 당신의 늦잠을 질투하고 세상 모든 것을 당신에 대입하던 내가, 당신에게도 흔한 게 맞는가.


  당신에게도 이 연애가 흔한 사랑으로 마침표 찍힌 것인지 나는 묻지 못하고 그저 앓는다. 당신은 이 연애를 자양분 삼고 또 성장했을까봐, 나는 당췌 그래지지 않는데.


  나는 마이너스 된 나의 인생을 걸어나와야 겠다고 드디어 결심한다. 일을 미루고, 나의 하루를 버리면서 그저 무력하던 나의 삶을 어느 순간 반성한다. 나의 인생이 자꾸만 그늘로 가닿는 현재는 더이상 안된다.


  나에게도 이 연애가 플러스가 되어 쌓이기를 바란다. 내가 당신을 그늘로만 기억하지 않기를 바란다. 당신을 추억하기 위해서, 꿈같이 아련한 기억으로 가끔 꺼내볼 수 있을만큼 담대해지기 위해서 나는 오늘 하루를 살기로 마음 먹는다. 누구에게든 그런 기억은 있어야 하니까. 더는 기다리지도, 미화하지도, 자책하지도, 후회하지도 않고 우리의 기억을 밀봉한다. 끝내 당신에게 가 닿지 않을 나의 마지막 물음도 함께 매듭지어 넣는다.


  그래서 당신은 나를 잊었는지. 지금, 잘 지내고 있는게 맞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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