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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ine Jul 28. 2017

반딧불

사랑한다는 말이에요

  어디서부터 편지를 써야할지 약간 고민했어요. 당신은 제가 누군지 모르실테니까요. 아니 어쩌면 저 역시 당신을 모르고 있는 게 맞을까요?


  오늘 새벽 저의 꿈으로 찾아오셨죠. 실물이 없는 당신의 얼굴이라 조금은 단면적인 형상이었지만요. 당신은 저의 이름을 부르셨어요.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목소리로, 마치 피부로 스며드는 것 같은 목소리로.

꿈에서 깨어나고도 퍽 오래 두근거렸다는 사실을 말씀드리면, 당신은 입꼬리를 올려 조용히 웃으실까요? 아직은 실제로 본 적 없는 그 미소말예요.


  당신을 알게 된 후 줄곧 당신에게 호기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예쁜 이름을 입속으로 오물거려보며 제가 이 이름을 입밖으로, 당신을 향해 소리낼 수 있는 날이 올까 조금은 설레하면서요. 그러다보니 당신은 어느새 제 안에서 부피를 키워 내셨어요. 반딧불만하던 것이, 어느새 저를 빙 둘러쌀만큼 충만한 빛을 내요. 그리고 저의 볼을 붉혀요.


  고운 말만을 하는 당신의 얇은 입술을, 단단한 어깨와, 다부진 눈밑 그늘을. 저는 보고 싶어하다가, 어느새 그리워합니다. 언제 어디선가 분명히 본 적 있던 것처럼. 당신을 알기 오래 전, 같은 거리를 분명히 걸었던 사실이 저를 더욱 들뜨게 하는가봐요.


  어느 순간 당신의 인생으로 불쑥 끼어들 제가, 당신에게는 갑작스럽겠지만요. 사실 그건 불쑥이 아니에요. 어느 순간은 더욱 아닐거구요. 저는 생각보다 오랜 시간 당신 주위를 돌며 당신 눈빛 향하는 곳을 함께 응시하고 있었답니다. 아마 당신의 눈은 웃고 있겠죠? 이쯤되면 저는 당신을 앞에 두고도 제 발끝만 보고 있겠네요.


  당신의 해사한 미소를, 다정하고 섬세한 눈빛을, 온 몸으로 받아낼 그 날이 머지 않았어요. 그럼에도 이렇게 편지를 적어요. 시간이 흐를수록 물결치는 나의 마음을, 당신에게는 끝내 전하지 못하겠지만. 언제가 됐든 당신과 하루를 기념할 수 있는 날이 오게 된다면, 이 감정을 모두 모아서 한마디 쯤은 하고 싶어요.


  내가 당신을, 먼저 좋아했다고. 그 사실이 행복하다고.


  당신은 생각할 수 없는 시간을 건너 당신에게 왔어요. 당신을 만나기 위해서, 그 모든 것들을 다시 겪으라고 한다면 저는 기어이 그럴 수 있어요. 너무 늦지 않게 당신을 만나게 되어 기쁩니다. 우리 곧 만나요. 보고 싶습니다. 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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