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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ine Aug 29. 2017

지난 연애는 분명히 나를 자라게 했다

사랑으로 이별로 성장한 나의 20대

  나는 건강한 연애를 할 때보다 그렇지 않을 때 더 많은 글을 쓴다. 그리고 그때 쓴 글이 더 많은 이들을 위해 읽힌다. 나는 이 사실에서, 너무 많은 이들이 건강하지 못한 연애를 하고 있음을 미루어 짐작한다.


  나는 여러 차례 이별을 겪었다. 어떤 이별은 나를 어둡고 축축하고 목 막히는 물구덩이로 집어 넣었고 또 어떤 이별은 어디선가 뛰어내리고 싶게 만들었다. 나는 이별을 겪을때마다 볼살을 덜어냈고, 건강이 도려져 나가기도 했다. 그렇지 않고 다녀간 사랑은 없었다.


  가장 끔찍한 이별의 계절은 내가 한가한 시절이었다. 내가 일이 없을 때, 집에서 사랑만을 떠올리고 있을 때 닥쳐진 이별은 잔혹했다. 애써서 만든 약속장소에서 웃고 떠들다가, 도로 집으로 내뱉어졌을 때는 몇 배로 더 고독해졌다. 나는 돌아오는 길 습관처럼 편의점에 들러 만원으로 네캔에 세계맥주를 샀다. 그 만원을 초과해서 비닐봉투를 부풀린 밤도 있었다. 그런 날 밤이면 나는 심심치 않게 울었다. 그러는 동안 마법같이 무뎌졌다. 술을 마시고 슬픔에 빠져 있느라 망가진 시간이 흐르면, 거짓말처럼 그 시간이 아까워진다.


  차라리 책을 읽을 걸, 영화를 볼걸. 내가 의미없는 사람을 떠나보내느라 의미없는 시간을 길게도 보냈구나 은연중에 떠올린다. 그럼 나는 내가 이별을 극복해 냈구나 깨닫는다.


  이별 이후의 시간을 부지런히 보내다보면 불쑥 내가 예전과는 달라졌음을 알게된다. 불과 한달전일지라도 이별을 겪어낸 나는 이전의 시간보다 더욱 성숙한 사고를 하고 있다. 이번 이별 역시 나를 성장시켰구나 나는 어느 순간 그렇게 믿었다.


  그런데 요 며칠은 그런 생각을 했다. 말도 안되는 이별이었고, 나는 마음의 양식 대신 맥주 캔만 쌓으며 시간을 보냈다. 연애에서 걸어나와 객관적으로 마주한 그 사람은 누군가가 '쓰레기'라고 지칭할만한 행보를 보였다. 그런데 나는 왜 성장한건가? 단순히 홀로 있는 시간이, 많이 운 시간이 날 성장시킨 걸까?


  아니였다. 나를 성장시킨 건 연애였다. 과거의 내 사람과 함께 했던 사랑이었다. 연애의 기간동안 줄기 대신 뿌리 깊게 성장하다가 그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나무를 뽑아 들자 그제서야 단단해진 뿌리를 체감하게 된 것이다. 결국 우리는 이별을 겪어야만 그 사랑이 나를 얼마나 성장시켰는지 깨달을 수 있는 존재다.


  과거의 사랑은 나를 조용히 키크게 하고 멀리로 떠나갔다. 그 사람의 그늘이 유난히 그리운 밤에도, 나는 그의 뒷모습을 좇을 게 아니라 단단해진 두 다리로 열심히 앞을 향해 걸어야 한다.


  슬픈 노래를 들으면서 내 인생을 대입해도 좋다. 우리의 연애를 드라마 속 한 씬에서 공감해도 좋다. 그러나 당신을 상처 받게 한 이별을 너무 오래 곱씹어선 안된다. 당신을 키운 건 따뜻한 온도지, 마지막의 칼날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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