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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ine Jul 02. 2018

절정을 지나버린 모든 것

언젠가의 너는 은행나무 길을 사랑했다. 노란 바람이 물결치는 그 곳을 걸으면 나이의 계절과는 관계없이 지금이 마냥 청춘처럼 느껴진다고 웃었다.


나는 은행 으깨진 냄새를 피해 숨을 참다가도 어느 순간은 그 지독함에 무뎌져 너의 호흡을 따라 많은 대화를 나눴었다.


짙은 여름의 한 가운데서, 내가 타야 할 버스를 향해 직장을 향해 그 어느 장소를 향해 의식 없이 걷다가 '우지끈-' 동그랗고 적당히 무른 은행을 밟아낼 적이면 종일 따라다니는 역한 냄새 뒤꽁무니 그 뒤로 하늘하늘한 모양의 네가 따라 붙곤 한다.


인스타그램을 통해 너의 결혼을 알았다. 보통의 웨딩홀에서 보통의 결혼식을 올렸다는 사실, 신혼 여행지로 프라하를 선택했다는 사실, 너의 아내는 너보다 연상이라는 사실을 함께 알게 되었다.


종종 결혼에 대한 로망을 이야기 할 순간이 오면, 너는 야외결혼식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비가 오는 날이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 신부 입장에서 그건 최악이죠. 야외결혼식은 무조건 날씨가 좋아야 해요. 드레스가 젖는 건 물론이고, 신경 쓴 헤어나 메이크업도 습기로 망가질 게 뻔한데.


더군다나 야외 웨딩자체가 얼마나 까다로운지, 전혀 알지 못한 채로 오래도록 막연히 품어오기만 한 이상인 듯 했다. 그러나 너는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


- 그런가요? 각자 우산을 쓰고 행진한 신랑과 신부가 한 우산 안으로 들어와 함께 걸어가는 게.. 참 애틋할 것 같은데요. 결혼이 원래 마냥 행복하기만 한 건 아니라잖아요. 첫 역경인거죠. 하하.


첫 역경이라니, 둘이 빛나는 미래를 약속할 행복한 장소에서 더군다나 신부가 주인공이어야 할 결혼식에서.


나는 애써 표정을 숨겼다. 너와 결혼할 일이 없어야 할텐데, 진심으로 생각했다.


그러다 너와 프라하로 여행을 갔을 때, 앞선 나의 다짐과도 같았던 생각이 흔들렸다. 그 여유롭고 단정한 도시 속으로 조금의 위화감도 없이 섞여드는 모습이, 꽤 근사했다. 여행의 일정부터 티켓팅까지 모두 해내는 계획적인 모습과 가끔 즉흥적으로 식당을 가리키며 가볼래요? 묻는 얼굴.


나는 너와 결혼을 하게 되면 어떨까? 우연히 찾은 인도 음식점에서 너의 손으로 찢은 난을 나눠먹으며 문득 생각했다.


트윈 베드를 예약한 보람 없이 한 침대에서 잠을 잤고, 그 침대 위에서 서로의 품을 베고 많은 대화를 나눴다.


너와의 어떤 기억보다 가장 짙은 것은 물 밀 듯 오가던 대화였다. 그 대화 안에서 우리는 교복을 입고, 군복을 입고, 엄마가 입혀준 옷을 입고, 옷차림을 정의할 수 없었을 모든 시절의 그 때로 돌아가 가장 철없이 웃었다.


이미 다녀갔던 모든 곳을 아내가 될 여자와 함께 걸으며, 너는 가끔이라도 은행나무 길을 떠올리는지 궁금했다.


우리는 왜 헤어졌던가. 야외웨딩홀과 보통의 웨딩홀 사이에서 타협을 찾지 못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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