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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ine Aug 13. 2018

마음의 제한속도

이별에 담대해지는 법

활-짝

당신은 소리가 나는 듯 활짝 피어나는 웃음을 가졌다. 그 얼굴은 당신의 소중하고 씁쓸하고 가련한 마음을 온통 투명하게 드러냈다.


그 얼굴을 사랑했다.


당신은 내게 일상에 감탄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전깃줄 위에 나란히 앉아 있는 참새 여섯마리를 하나, 둘, 셋... 하며 일일이 세는 법. 쭈쭈바를 입에 물고 말하는 법 그리고 그 뭉개진 발음을 이해하는 법. 뜬금없이 빨간 지붕 식당까지 달리기 시합을 벌이기도 하고, 도착함 순서에는 상관없이 동시에 빵 터지는 법.


그런 사소하고 더는 새로울 수 없는 일들에서 기쁜 마음을 얻을 수 있도록 해주었다. 당신의 곁에 서면 어린아이가 되는 것 같은 일이 행복했다.


그러다가 문득 나는 무뎌진 줄 알았던 유년의 치기가 불쑥 내 인생에 등장한 것을 느낀다.


어릴 적 나는 큰 집에서 혼자 자랐다. 부모님은 바쁘셨고, 이점을 미안하게 여기며 나를 무척이나 안쓰러워 하셨던 통에 나는 수많은 장난감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유행이었던 것은 바비인형이었고, 나는 내 옷보다 '모모'의 옷을 신경쓰며 미취학 아동의 시기를 보냈다. 드레스, 하이힐, 여러 크기의 백 등 다양한 아이템을 코디하고 모모의 남자친구 '토토'나 친구 '라라'와 역할 놀이를 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러다 엄마 친구의 딸, 나와 동갑인 여자 아이가 우리 집에 놀러 오는 일이 있었다. 내내 과묵하고 소심하던 유미는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 되자 나의 장난감 중 하나를 품에 안고 대성통곡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가지고 놀지 않던 곰인형이었다. 엄마와 유미의 엄마는 난감해하면서도 내심 내가 곰인형을 유미에게 선물하기를 바라는 표정으로 눈치를 살폈다.


나는 유미의 품에서 곰인형을 낚아챘다. 그리고 유미의 눈물이 무색할 만큼 더 크게 더 많이 울었다. 그리고 이 곰인형이 얼마나 내게 소중한 것인지, 마음에도 없는 거짓말이 입술밖으로 마구 터져나왔다.


이후에 어떻게 되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정확한 것은 결국 유미가 빈 손으로 집을 빠져나갔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습게도 그 곰인형은 정말 내게 소중한 것이 되었다. 곰인형을 안고 울었던 기억이 애틋하게 남았던 모양인지... 그러나 그 마음이 오래가지는 않았다. 잠시, 그러다가 이내 곰인형은 처음처럼 장난감 방 구석 어느 곳에 장식품처럼 앉아 있게 됐다. 몇 번의 이사를 거치고 나자 어느 순간 그 자리는 비워졌다.


그 질투랄까, 치사한 소유욕이랄까 정의할 수 없는 (잊고 있었던) 마음 그대로 애인의 삶을 조금도 남에게 뺏기고 싶어하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곰인형처럼 어느 순간, 당신의 자리가 비워지게 되었다.


- 넌 너무 어린 것 같아.


순수하다고 생각했던 당신은 사실 어디에도 얽매이고 싶어하지 않는 것이었다. 아이 같은 모습은 철이 모자란 것이었고, 아무것도 책임지지 않고자 하는 것이었다.


당신은 나의 속박을 견디지 못했다. 나에게 모든 책임을 넘기고 관계를 종결하길 바랐다.


- 헤어지자는 말은 네가 해.


나는 헤어지고 싶지 않았는데, 그저 더 좋은 관계로 우리가 발전하기만을 바랐는데.


이별을 원한 건 당신이면서... 그는 선심쓰듯 나를 떠났다.


어떤 점이 문제였을까? 나는 긴 시간을 자기 성찰로 보냈다. 내가 잘못한 것을 기어이 파헤치고, 결국 스스로를 원망하면서 이별을 받아들였다. 그 과정이 얼마나 고통스러웠던지, 나는 많이 울고 아무 것도 먹지 못했다. 일주일 동안 6키로가 빠졌다. 잠을 자지 못하고 모든 인생의 결함이 밤을 괴롭혔다.


그러다가 유미를 만났다. 마음 속 작은 짐이었던 곰인형을 안겨주고 싶어서였다.


장난감 가게에서 구입한 곰인형을 들고 유미를 만났을 때, 유미는 활짝 웃었다.


- 아, 그런 일이 있었어? 너도 참 귀엽다.


유미는 아무런 기억이 없다고 했다. 오랜만에 만난 우리는 지난 시절에 대해 가벼운 이야기를 나눴다. 남자친구와 헤어진 얘기도 그 톤 그대로 하게 되었다. 이별을 인정하는 것 같아서 남에게 알리는 일을 참 꺼렸는데.


그러다보니 옛날 얘기도 자연스러워졌다. 그리고 유년 시절의 친구를 만난 증거로 우리의 말투가, 표정이 마냥 유해졌다.


- 차라리 내가 너에게 정중하게 이 인형이 갖고 싶다고 말했다면 어땠을까? 너는 어쩌면 그때 나에게 인형을 주고, 마음에 짐을 가지지 않은 채 살 수 있지 않았을까?


유미의 말에 그랬던가? 생각한다. 그러자 정말 과거의 나는 그랬던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그 때 나는 유미가 무례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자 불쑥 기분 나쁜 마음에 곰인형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웃긴 떼를 쓴 것이다.


그렇게 대화를 마치자 마음이 가벼워졌다. 과거의 나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곰인형을 안고 총총 떠나간 유미는 결혼하기로 했던 남자와 파혼을 했다고 했다. 그래서 이 곰인형이 위로처럼 느껴진다고.


나는 유미를 향해 웃었다. 그녀도 활짝 하고 웃어보인다. 정말로 아이같은 미소에, 마음이 비로소 편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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