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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ine Sep 13. 2018

터널같은 연애가 끝나고, 혼자서

이별이 오는 계절

  
  
매일 나의 끼니를 챙겨주던 걱정이 있었다. 엄마도 모르는 비밀을 공유하던 사람이 있었다. 내가 좋아할 것 같다고, 나도 모르는 작가의 책을 선물하던 마음이 있었다. 뒤척이는 등을 손바닥으로 재워주던 토닥토닥 소리 나는 밤이 있었다. 나의 찬 손을 만져주러 왼쪽에, 오른쪽에 번갈아 서던 예쁜 온도가 있었다.
  
벅차고 애틋했던 시간을 지나자, 겨울이 왔다. 지금 나는 이별의 계절에 혼자 서 있다.
  
우리가 왜 헤어지는 건지? 잘 몰랐다. 어쩌면 상대방도 모르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권태기, 잦은 다툼, 새로운 이성의 등장. 모두 맞고 모두 틀렸다. 우리는 그런 시시한 이유로 헤어지지 않았다.
  
내가 했던 것은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연애였다. 이 세상이 나로부터 뻗어나가는 듯 매일 다리가 땅에 닿지 않는 분홍색 꿈에 살았다. 그 꿈에서 나의 연인은 나의 손등위에 입 맞추는 일을 좋아했다. 운전하는 중에 그의 오른손은 늘 내게 와 있었다. 그 오른손은 나의 볼을 건드리고, 턱을 장난스럽게 늘이다가, 나의 손을 쥐고 자신의 입술로 가져갔다.
  
나의 손등과 그의 입술이 닿아 내는 찐득한 소음이 좋았다. 마음 한 구석에 찌르레기가 울었다. 나,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거야? 생각했다. 어릴 적 내내 받지 못했던 크리스마스 선물을 한 번에 당신으로 받았구나 생각했다. 나의 생각이 그에게 닿으면, 그는 그저 귀엽다고 했다. 넓고 단단한 어깨를 들썩이며 웃기도 했다. 나는 정말, 때로는 불안했던 건데.
  
꿈 속 보다 행복한 일상을 위해, 밤잠을 줄이며 당신과 목소리를 나누는 일이 좋았다. 좋아하는 라면으로 끼니를 대체하는 나에게 핀잔을 주는 당신의 목소리가 좋았다. 아주 가끔, 나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는 목소리가 좋았다. 그래서 당신이 떠나면 모든 것이 떠나갈까봐. 조금도 행복하지 않은 일만 일상으로 남을까봐 문득 문득 나는 슬퍼졌다.
  
아무리 학습해도 나는 연애 앞에서 늘 똑같은 모습으로 서 있었다. 가장 민감하고, 가장 초라한 얼굴로 그저 당신이 나를 떠나지 않기를 바라는 모양 밖에는 할 수가 없었다.
  
당신이 사랑하는 고양이를, 당신과 아주 오래 전 사별한 연인을, 당신과 한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사원을, 질투하는 내 모습이 스스로도 싫었지만 잘 숨겨지지 않았다. 아무리 괜찮은 척 해도 삐죽 고개를 내밀고야 마는 모난 마음이 당신에게 가 닿으면 그 사실이 싫었다. 나는 왜 이것밖에 안되는 사람이지? 비참해지고야 말았다.
  
어디서부터 문제였을까?
  
혼자 있을 고양이에게 서둘러 가는 그의 뒷모습이 왜 속상했을까? 내가 중요한지, 고양이가 중요한지 영양가 없는 질문을 왜 했을까 나는?
  
아메리카노를 싫어했다는 당신이, 언제부터 아메리카노를 좋아했는지 이유를 거슬러 가다가 전 여자친구 이름이 당신 입술에서 무심결에 튀어나왔을 때. 나는 이미 알고 있는 이름이라 더 놀랐다. 그 사실도 싫었다. 나는 왜 당신의 과거마저 질투하고 있었던가.
  
하루 아침에 교통사고로 떠났다는 그 이름을 곱씹으며, 그녀가 떠나지 않았다면 이 자리는 나의 것이 아니었을까? 질 낮은 질투를 한다.
  
당신의 품이 좋아서 자꾸만 구차해질 때. 나는 연애의 끝을 기어이 생각하고야 만다.
  
당신의 일상 생활 모두가 나의 시기를 부를 때.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이 벽을 보고도 당신의 이름을 부르며 울어야 할 때. 온통 흠집난 마음을 애써 숨기고 당신 곁에 앉지만, 삐쭉한 마음이 기어코 당신을 향해 날을 세울 때.
  
나는 당신에게 이별을 말하고야 만다.
  
우습게도 잡아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다. 그 한켠으로는 이렇게 당신을 마주 보는 일이 오늘이 마지막이었으면 한다.
  
당신과 있으면 너무 행복해서, 불행해져. 당신과 떨어져 있는 매 분 매 초가 지옥 같아져. 그래서 그만하고 싶어.
  
언제나의 투정일까? 당신의 표정이 알 듯 말 듯 굳는다. 헤어지자는 말이 떠오르자마자 당신이 운다. 당신이 울면, 나는 가슴 속에서 분수 같은 피가 솟고야 만다.
  
- 헤어지기 싫어.
  
얄궂게 고개를 드는 이기심. 당신의 눈물이 다행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 그런데, 내 곁에 있어서 네가 불행한 건 더 싫어.
  
당신은. 나의 천사 같은 당신은. 돌부리처럼 갑자기 다가와 자신을 넘어뜨린 이별에도 나를 떠올린다. 피 고인 무릎처럼 눈물을 흘리면서도 기어이. 나를 놓겠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는 헤어질 수 있었다.
  
모두 빠져나와보니 터널과도 같은 연애였다. 길고 불안한, 끝이 있는 시간. 그 시간을 빠져나오니 나는 터널보다 어두운 곳에 혼자 있었다.
  
늘 차던 손이, 유독 시리다. 정강이까지 추운 계절이 나를 관통했다. 이별이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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