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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ine Feb 05. 2019

5년 여의 시간이 며칠만에 끝나버리는 동안

당신에게 보내는 1번째 답장

5년이 넘는 시간을 만났다. 너와의 연애가 지나고 나의 나이는 30대의 반을 넘겼다.
나보다 어린 너의 시간을 기다리며 사랑했던 기억
왠일인지 뜻한 바를 이루고 난 너의 눈에는 더 이상 내가 없다.
대기업에 취직하고 올해는 결혼하겠다고, 우리 부모님 앞에서 당당하게 말하던 네가.
내게는 헤어지자는 말도 전하지 않고 사라져 새로운 여자와 새로운 감정을 나누고 있다.

그 모든 일이 몇주도 되지 않아 벌어졌다. 나의 20대 후반부터 모든 30대가 온통 너인데.

너는 내게 헤어지자고 하지 않았다.

그래서 어쩌면, 나는 기다리는지도 모른다.




그런 날이 있다. 평소에는 잘 보지 않았던 연인의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싶어지는 날. 아무렇지 않게 내어주는 사람에게는 안도감이 들어 깊게 들여다보지 않고도 불안한 마음이 쉽게 진정되지만 끝내 숨기는 사람에게는 “지금 당장 보여주지 않으면 끝이야” 쉽사리 마음의 날을 세우곤 한다.

5년의 연애가 끝난 당신.
헤어지자는 말도 전하지 않은 것은 그 사람의 명백한 잘못이다.
정정당당하게 이별을 고할 준비도 되어있지 않으면서, 당신과 당신의 주변사람을 쉽게 우스워져 버리게 만들었기 때문에.

당신에게 그만하자는 말도 고하지 못하고 혼자 시작해버렸기 때문에.

당신의 진한 사랑을 후회만, 아쉬움만 남도록 등 져 버렸기 때문에.

그러나 당신은 술에 취하는 밤, 그 사람의 sns를 염탐하며 속 쓰리게 후회하는 밤, “그 사람은 땅을 치고 후회할거야.” 라는 친구의 위로를 맹신하는 밤을 멈춰야 한다.

“내가 이제 누군가를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하는 마음도 그만.

당신에게는 결혼보다 중요한 과정이 있다. 지금껏 살아온 시절보다 더 기나긴 세월을 묵묵히 내 곁에서 다정할 사람을 고르는 일. 그 사람의 사랑은 5년 짜리였다고 쉽게 인정하는 일.


냉정하지만 그는 자신의 길을 찾아 당신에게 휴게소처럼 들렀을 뿐이다.

그러나 이 사실은 당신에게 너무 아프다. 당장 품기에는 날카로운 칼날같은 일이다.

당신에게 그 사람은 단순한 연인이 아니었을 테니까. 긴 시절을 지켜준 친구, 든든한 동생, 마음이 잘 맞는 후배. 그 어느 모습 하나가 떠나도 아팠을 텐데, 당신은 한꺼번에 모든 존재를 잃어버린 기분일테니까.

그러나 당신의 아침이 알고있듯, 그것이 당신의 인생 전부는 아니었다.

당신은 이직 준비를 해야 하고, 취업이 된다면 매일 출근을 해야 하고, 매시간 먹히지 않는 밥을 먹고, 밤에는 들지 않는 잠을 불러오며 오래도록 눈을 감고 있어야 한다.

지겹게 들은 이야기겠지만 지금은 버려진 나를 사랑해야 할 때다. 내가 원하는 일에 귀기울이고 내가 하고 싶은대로 내버려둬야 할 때.

미뤄뒀던 소개팅에 나가거나, 친구들과의 술자리를 가볍게 즐기는 것도 좋다. 이 과정에서 누군가를 만나보는 것도 좋지만 ‘복수하겠다’는 마음으로는 아무것도 시작하지 마라. 나의 상대에게도 못할 짓이 된다.


당신을 사랑해 줄 사람을 미련한 마음으로 인해 잃지 않길 바란다. 5년이 넘는 시간동안 한 사람을 사랑했던 고운 마음은 누구에게든 사랑스럽다.

일단 sns 염탐은 끊는 것이 좋다. 자존감과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미용실에 가고, 필라테스를 등록하거나, 외국어 공부를 시작해보는 것도 좋다. 느긋하게 프랑스 자수나 컬러링북을 파고들어도 좋다.

정적인 시간을 통해 마음을 비워라. 내내 불안했던 마음을 모두 비우고 오롯이 혼자가 되어라.

내가 먹고 싶은 메뉴를 골라서, 내가 좋아하는 주말을 보내라. 그렇게 8번의 주말을 보내고 나면 당신은 문득 ‘편하다’는 감정을 느낄 수 있다.

불안했던 굴레에서 벗어나게 된 하루가, 그 사람의 연락을 기다리고, 나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을까봐 막연하게 두려웠던 시간에서 많이 걸어나온 주말이, 편안하다고 느껴진다.

문득 문득 목구멍이 뜨거워지고, 가끔은 화장실에 앉아있다가도 눈물이 흐르겠지만

울고나면 전에 없이 개운해진다. 매일매일 그 사람 생각을 했는데 한 시도 빠지지 않고 이별에 대한 생각 뿐이었는데 하루에 몇 시간 정도는 그 생각을 안하고 있는 것이다.


그 것을 깨닫고 나면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는다. 인간은 때론 혼자일 때보다 둘일 때 더 외로운 법. 언젠가 인생의 전부였던 그 사람때문에 당신이 얼마나 외로웠던지 알게 되면 당신은 더이상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


나의 지인 A는 6년 동안 고시공부를 하던 남친의 뒷바라지를 했다. 고시에 붙은 남자는 연수원에서 만난 4살 연하의 여자와 연애를 시작했다. 주변에서는 모두 남자친구를 욕했고, "조강지처 못 잊는다"는 말로 A의 속을 뒤집었다.


A는 여자아이의 사진을 들여다보며 비교하고, 자책하고, 상처받으며 15kg 가까운 체중을 잃었다.


그 해를 넘기지 않고 둘은 결혼했다. A는 세상에서 가장 처연한 여자가 됐다.


A는 견디는 것이 용한 시간을 보냈다. 원형 탈모 때문에 모자를 벗지 않고 살았다. 여자의 집안이 어떻다더라, 결혼식을 어디서 한다더라... 그런 말이 주변에서 돌 때마다 구멍은 크기를 키웠다.


남자는 결혼식이 끝나고 1년도 지나지 않아 A에게 연락했다.


- 당신같이 나를 사랑해주는 여자는 없었어. 후회해..


A는 그제서야 숨통이 트이는 듯 했다고 말했다. 그 남자가 나를 못 잊어서가 아니라, 겨우 그 정도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돼서.


그러고 나자 A는 이별에서 빠져나왔다. 왜 그렇게 깊은 수렁에서 오래 힘들었는지 모르겠다며, 긴 연애를 털어냈다.


A에 의하면 sns 염탐이 가장 해로운 일이었다고 했다. 여자의 삶을 들여다볼수록 비교가 돼서 어느 순간 자신을 깎아내리고 있었더라고.


나에게는 다정하지 않았던 남자가, 꽃을 사고 여자를 픽업하는 행위가 매스껍게 느껴졌더랜다.


남자는 A에게서 배운 다정함을 여자에게 쓴 것 뿐이다. 곧 남자의 본 모습으로 돌아가 여자의 입에서 "변했다"는 소리를 기어이 듣고야 말 터였다.


시간을 걸어나오자 그 사실에 직면했다. 그러자 연애가 비로소 끝났다. 이는 당신에게도 통하는 맥락이다.


당신이 깨달아야 하는 사실은, 전남친이 '그정도'밖에 안되는 사람이라는 것. 과거 속 뜨거운 연인은 세상에 더는 없다.


당신은 적어도 이 연애를 통해 누군가에게 이렇게 최악은 되지 않아야 겠다고 배우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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