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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안키친 Apr 03. 2023

수술 2주년을 회고하며

뚯밖의 불행에 대처하는 자세

2021년 다소 상기됐지만 담담한 마음으로 수술대에 오른지 벌써 2년. 수술 전 후로 긴밀하게 연락을 주고 받았던 친구 H를 수술 후 처음 만났다. 그 동안 후유증으로 고생한다는 말은 했었지만 사느라 바쁜 나머지 친구를 실제로 만나지 못했었다.


햇볕이 제법 뜨거웠던 4월의 정오경,  강남의 한적한 브런치를 찾아가기란 생각보다 힘들었다. 너무 늦게 약속장소에 도착한 내가 “죄송합니다~”하고 들어서니 친구는 내 목소리에 놀란 듯 물었다. “어? 목소리가 아직 안돌아왔네?ㅠㅠ”


그동안 재활의 과정을 자세히 알지 못했던 H는 수술 전 내 목소리를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말을 이어가자 친구는 불현듯 눈물을 훔쳤다. 순간, 지난 2년동안 내가 흘린 눈물이 이미 종영된 드라마처럼 떠올랐다.


“울지마라… 난 이미 울 거 다 울었어..” 내가 말했다.




절친  유일하게 의료인 출신인 친구 H 수술  내가 후유증 경고에 대해 걱정하자 0.1% 확률만 있어도 경고해야하는게 의사들의 일이라고 하며 나를 안심시켜줬다. 수술 전날 입원 수속을 하고 긴장된 마음으로 다시 H 카톡을 주고 받았다. 친구는 너무 걱정말라며   될거라고 응원을 보내줬다.


그리고 다음 날 수술을 마치고, 마취에서 깨어나 두어시간  을 고통속에서 버텨낸 뒤 담당 교수가 회진을 와서 잠시 상태를 보고 간 뒤 전공의가 상세한 설명을 해줬다.


“수술로 떼어낸 혹이 너무 커서 당기다가 미주신경 일부가 손상된거 같아요. 그래서 6개월정도 목소리가 작게 나오고 음식 삼키는 것도 불편할 수 있어요. 왼쪽 성대 운동이 제대로 안되는 상황인데 정 불편하면 필러를 주사해서 회복시킬수 있어요.” 라고 설명해 줬다. 말수가 없던 담당교수와 달리 교과서 외우듯 열심히 설명해주는 전공의가 고맙기 까지 했다. 나는 의사의 말을 최대한 기억해 다시 H에게 메세지를 보내놓았다. 기록의 의미도 있었다.


돌이켜보면 지옥같던 그 놈의 6개월 동안 나는 휴직을 했고, 오매불망 목소리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우울한 나날을 보내야만 했다. 일상을 살아가야 했지만 불편해진 몸 때문에 멘탈 또한 온전치 못했던 것 같다. 재활을 위해 음성치료를 받았지만 큰 차도는 없었고 성대마비 상태는 여전히 변화가 없었다. 6개월이 지나고 수술한 병원 진료를 받았을 때 담당교수는 가망이 없어보이니 성대에 필러를 주사하는 방법을 권했고,  나는 그 날 이후로 그 병원을 손절했다. 담당의사가 중대한 수술 후유증을 남긴 것에 대한 최소한의 측은지심이라도 보여주길 바랬던 게 나의 잘못이라면 잘못일 것이다.


그렇게 나는 다른 대학병원을 전전했고, 마침내 라포가 잘 형성되는 의사쌤을 만나 재활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나의 재활을 담당한 교수님은 정신적으로 다 죽어가던 나를 살게 해준 구세주 같은 분이다.




재활치료를 받으며 다시 사회로 복귀하고자 새 직장을 구했고, 처음엔 목소리 핸디캡 때문에 위축되었지만 너무도 좋은 동료들을 만나 8개월의 시간을 함께 보냈다.


업무 강도가 세지 않은 직장을 찾다보니 계약직 신분으로 일해야 했기에 낯설고 아쉬웠지만, 일에 대해 내가 들인 수고와 애정에 대한 가치를 더 크게 봐주고 고마움을 표현해주는 동료들이었다.


마지막 날 각자 준비한 선물도 감동이었지만 감사패까지 받게 되어 눈물이 나고 가슴이 벅찼던 기억이 난다. 이전 회사에서는 장기근속자 중 한명이었는데 그냥 맨손으로 나오게 되었건만, 극명하게 대비되는 상황이었다.


서로에 대한 고마움으로 연결된 관계는 여느 동료들보다 더 끈끈했다. 나이들어 새로운 사람을 사귀고 친해지고 오래간다는 게 적잖이 힘든 일인데, 귀한 인연들을 만난 건 뜻밖의 불행 뒤에 보상처럼 찾아온 행운이었다.


지난 2년동안 나는 뜻하지 않게 불행의 주인공이 되었고, 우울의 바닥을 찍고 올라오는 시행착오를 겪다가 다시 대처하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사람과 사회와 생(生)을 바라보는 관점이 조금 달라졌다.


행복의 정의에 대해서는 아직 답을 얻지 못했지만, 불행이 무엇인지는 명확히 알게 됐다고나 할까? 그것을 모르고 막연히 두려움을 느끼는 것과 그것을 알고 대처할 자신이 생기는 것. 자의는 아니었지만 나는 후자를 얻게 됐다.


불행은 번호표 없이 찾아오고, 누구나 언제라도 주인공이 될 수 있다. 갑작스러운 사고나 재난으로 하루아침에 소중한 것들을 잃어버리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관심을 갖고 귀기울이게 되었고, 내 일처럼 여기는 것까지는 무리더라도, 남의 일이라고 치부해 버리지는 않는다.


어제 MZ 장례지도사가 늘어난다는 뉴스를 봤다. 장례지도사를 양성하는 기관에 2030세대 수강생들이 늘어나고 있고 지난해 서울 경기 지역에서 자격증을 이수한 사람들 중 약 40%가 MZ세대라고 한다.


세월호 참사, 10.29 참사 등 뜻밖의 사고를 통해 젊은 나이에 친구나 가족을 잃으며 직간접적으로 죽음을 경험해야 했던 MZ세대들이 죽음을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마지막을 어떻게 맞이해야 하는지에 대해 관심을 갖고 직업으로 선택하는 추세가 반영된 결과라는 보도를 보고 적극 공감했다.


얼마전 이지선 교수가 ‘유퀴즈 온더블럭’에서 한 말 중 ‘오늘살이’라는 말에도 많은 공감을 했다. 지금 당장 절망적이고 내일이 없을 것 같지만 ‘오늘 하루’를 살아가다 보면 꽤 괜찮은 해피엔딩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가지라는 이야기다.


나 또한 불행을 대처하며 새로운 인생관으로 ‘오늘 하루만 잘 살자. 잘 버티자’고 생각하게 됐다. 어느정도 회복된 목소리에 감사하는 마음과 다시 안좋아지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 혼재된 마음에서 다른건 필요없고 오늘 하루만 무사히 충실하게 살아가자고 나 자신을 다독였다.


그거면 충분하다고. 예전처럼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래에 대한 걱정 따위는 생각할 겨를이 없고 그저 오늘 하루만 잘 살자고. 이렇게 ‘오늘을 소중히 여기게 되기까지’ 지난 2년은 너무도 혹독했지만 한편으론 의미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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