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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안키친 Jun 13. 2023

나의 도서관 연대기

40대가 된 지금, 아이들이 학교에 간 시간 나도 매일 도서관에 온다.

지금은 내가 혼자 사색하고 공부하는 안식처이자, 가장 좋아하는 공간이 된 도서관.

내 인생에서 도서관은 어떤 의미였을까?


돌아보면 지난 세월 '도서관'이라는 공간은 나에게 그다지 아름답지 만은 않았다. 쫓기듯 공부하고, 또 공부했던, 그저 시험을 위해서만 찾아와 억지로 공부했던 공간이기 때문이다. 10대부터 40대까지 내 인생 속 도서관의 풍경과 추억을 톺아본다. 내가 도서관에서 키운 꿈과 얻은 것 들은무엇일까.


10대 : 나의 꿈은 대학생


고등학교 때, 한달씩 결제를 하고 동네 독서실에 다녔다.어둡고 조용하고 사적인 독서실에서 나는 왜 그리도 집중을 못했을까? 그러고 보면 진짜 몰입하는 능력은 장소만 가지고는 생기지 않는 것 같다. 고등학교 때 나는 공부에 대한 자발성이 매우 낮았고, 수학이나 과학 같은 과목은 너무 어려웠다. 독서실은 앉아있는 시간에 비해 실제 인풋이 떨어지는 비효율의 극치인 공간이었다. 세월이 흘러 내가 자발적으로 원해서 한 공부에서는 반대로 몰입할 수 있었고, 우수한 성과를 낼 수 있었다.  


학교 시험을 앞둔 일요일이면 언니들과 함께 아침일찍 남산도서관에 버스를 타고 갔다. 어렴풋이 나는 기억으로, 아주 일찌감치 가지 않으면 자리를 잡지 못할 정도로 남산도서관은 많이 붐볐었다. 공부하다가 배가 고프면 구내식당에서 국수를 한그릇씩 사먹던 기억이 난다.


그 때 나의 꿈은 우습게도 그저 '대학생이 되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하고 싶은 일이 뭔지,뭐가 내 적성에 맞는지는 고민하지 못하고, 너무 단기적인 미래만을 봤던 것 같다. 나같은 학생들이 전공학과를 고르는 방법은 그냥 성적에 맞춰 지원하는 게 정석이었다. 얼마나 내가 나에 대해몰랐던지, 전공학과 후보에 '유아교육과'가 들어가 있었다. 실제 지원한 적도 있었는데 불합격했던 게 지금 생각해보면 참 다행이다.

그 와중에 언어와 외국어에 관심이 있던지라 '영어영문학과'에 가게 된 건 그나마 다행이었다고 해야겠다.   

아무튼, 10대의 나는 도서관과는 물과 기름처럼 어울리지 못하는 존재였다.


20대 : 나의 꿈은 직장인

드디어 대학에 들어갔다. 내가 대학에 들어가서 제일 하고 싶었던 건 연극동아리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무슨 객기에서인지 그 당시에 나는 텔레비전에 나오는 배우가 되고 싶었던 것 같다. 텔레비전과 라디오 외에는 미디어가 전무했던 시절이었기에 그 속에 나오는 배우나 가수에 대한  막연한 로망이 컸다. 연극동아리에서 나는 연기로 시작해서 공연 스태프까지 경험했고, 나중에는 학회의 리더까지 맡아서 했다. 그러는 동안 성적은 곤두박질 쳤다. 지금 생각해보면 선배들과 밤새 뒤풀이를 하던 일, 성적이 바닥을 기던 일 등 썩 유쾌하지 않은 것들만 기억에 남는다. 하지만 연극을 하고 나서 한 가지 알게 된 것은 있다. 나에게는 연극배우의 꿈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대학시절의 3/4을 연극에 매진한 나는 학교 도서관과는 거리가 멀었다. 가끔 짝사랑하던 선배가 도서관에 있다고 하면 염탐 차원에서 방문하던 곳이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대학 도서관은 역사적인 장소이기도 하다. 당시 처음 PC통신이 보급되면서 학교 도서관에서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인터넷 이어봤자 이메일을 주고받는 정도가 다 였지만, 3학년 1학기를 마치고 호주로 어학연수를 갔을 때에도 시내에 있는 '인터넷 스테이션'이라는 우리나라 PC방 같은 곳에서 이메일을 열정적으로 주고받았던 기억이 난다. 호주에서도 영어시험을 준비하느라 국립 도서관에서 공부를 많이 했다.그 시절 나의 꿈은 돈 많이 주고 안정적인 직장에 취직해 '직장인이 되는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직장인이 된 이후에는 도서관 근처에도 가지 않게 됐다.오로지 시험과 취직이라는 관문을 지났을 뿐인데, 나는 마치 성과를 얻은 사람처럼 착각에 빠져 있었다.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 때도 알았더라면 좋았을것을.    

30대 꿈을 잊었다

나의 30대는 적막했다. 꿈이 없는 시대였다. 어찌보면 '결혼하는 것'이 꿈이었던 것 같다. 직장생활에서는 열혈사원으로 일했고, 결혼상대를 찾는 데도 열심이었다. 그리고 서른 넷이 되던 해 결혼을 하면서 도서관은 더더욱 멀어져만 갔다. 아이가 3-4살정도 되고 같이 다닐만 해졌을 때는 책과 친해지게 해준답시고 대형 서점에 자주 갔지만 딱히 실속있는 시간은 아니었다. 그렇게 꿈도 없고 머릿 속에 든 것도 없이 소모적인 시간들을 보내며 첫째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무렵 나는 드디어 번아웃 됐다. 직장에서 연차가 올라가면서 스트레스도 점점 높아지기 시작했고, 육아와 훈육에 대해 몸과 마음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알길이 없었다. 마치 출구를 모르는 미로 속에 갇힌 기분이 들었을 때, 상담센터나 병원을 찾아가기 전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이것이 마흔부터 내가 독서를 시작하게 된 배경이다. 그렇게 흘러가게 놔둬버린 나의 30대가 가엾게 느껴지지만, 늦게라도 책에서 답을 얻으려는 노력을 하게 된 것에 감사하다.  


40대 나의 꿈은?

독서를 시작하며 도서대출을 위해 다시 찾은 구립도서관은 내 인생의 다음 스테이지를 꿈꾸며 사색하고 공부하는 공간이 됐다. 과거에 비해 정부에서 곳곳에 짓는 구립도서관이나 아파트 커뮤니티에 있는 작은 도서관 등 시설이 많이 확충된 덕에 더 책을 가까이 하며 살 수 있었다. 오랜 직장생활을 마치고 롱런하는 직업인이 되는 게 지금 나의 꿈이 됐다.
‘책 속에 길이 있다’는 고리타분한 말일지도 모른다. “길은 무슨길이 있다는 건가, 읽어봐도 그 때 뿐이지 돌아서면 다 잊어버리는 것을.” 이 말도 맞는 말이다.


그런데 4-5년간 꾸준히 독서를 하다보니 보이는게 있다. 내가 추구하는 가치, 중요시하는 것들, 지키고 싶고 더 발전하고 싶은 방향들, 이론과 철학들이 내가 읽는 책들 속에서 한 가지 이상씩 중복되어 나타나는 것이다. 그것들은 작은 점일 때도 있고 어떨 땐 제법 큰 원으로 교집합을 이루듯이 ‘중복‘ 될 때도 있다. 그리고 마침내 ’어떻게 살아야 될 것인가? 나는 어떤 삶을 원하는가?‘의 큰 물음에 대답을 준다. 인생의 로드맵이 조금씩 만들어지는 느낌이 든다.


돌아보면, 도서관은 항상 그 자리에 있었는데, 나는 도서관 안팎을 들락거리며 성장해 왔다. 인생이라는 길고 긴

시험 위에서 매일 당면하는 문제를 좀 더 지혜롭게 풀어가기 위해 도서관은 나의 영원한 동반자가 되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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