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 사회의 진행속도가 한국보다 빠른 일본, 내가 머물던 도쿄의 변두리 지역에는 노인 인구와 외국인 인구가 많았다. 일본어 학교에서는 자격증을 목표로 공부를 했다면, 1주일에 한두번씩은 주민센터 같은 자치단체에서 하는 일본어교실을 찾아 현지식 일본어를 배웠다. 선생님들은 주로 자원봉사를 하는 60대 이상 어르신들이었다.
어르신들은 노후에 자식들을 타지로 떠나보내고 부부 또는 혼자서 생활하는 분들이 많았다. 나같은 유학생들은 생생한 일본어를 무료로 배울 수 있으니 좋고, 자원봉사하는 어르신들은 외국인 학생들을 만나 대화하며 적적한 마음을 달래고 소소한 보람을 느낄 수 있으니 서로가 윈윈 할 수 있는 좋은 사례로 기억된다.
일본어 학교에서 과외활동으로 많이 가는 단골장소 중 하나는 지진체험센터다. 실제 가정이나 사무실처럼 꾸민 세트에서 다양한 강도의 지진체험을 할 수 있어 신기했었다. 허나 체험은 어디까지나 체험일뿐 실제 지진은 훨씬 공포스러웠다.
일본 유학기간중 4-5번의 지진을 경험했다. 지진은 레스토랑에서 일하고 있는 날에도 찾아왔다. 갑자기 두 발을 딛고 있는 땅이 놀이기구가 된것마냥 스물스물 흔들리는 느낌은 생각보다 오싹했다. 이내 내장까지 흔들리는 듯한 메슥거림이 찾아오곤했다.
한번은 일본어 교실에서 만난 나이가 지긋한 어르신들께 물어봤다. 지진이 자주 일어나면 무서워서 어떻게 사시냐고.
“ 그냥 받아들이고 사는거지. 그래서 보험을 드는 사람도 있고. 지진이 일어나까봐 늘 마음 조리진 않는단다.”우문현답이 돌아왔다.
레스토랑 알바를 하며 잔실수도 많이 줄고 적응이 되니 같은 알바생들과 간간히 농담도 주고 받는 여유도 생겼다.
하루는 일본 TV에서나 보던 스모선수팀이 레스토랑을 찾았다. 엄청난 덩치의 비주얼은 역시나 압도적이었다. 예닐곱명의 스모선수들이 들이닥쳤고, 나는 테이블을 부리나케 붙여 자리를 마련했다.주문을 받으러 가려니 왠지 가슴이 두근거린다. 실수라도 해서 한번 째려보기라도 하면 엄청 무서울 것 같았다.주방에서도 긴장하기 시작했다.
“실례합니다. 주문하시겠습니까? (失礼します。ご注文お決めですか?)”
“함박스테이크 1개(ハンバーグステーキ 一つ)、등심스테이크 1개(サーロインステーキ 一つ)、까르보나라
스파게티 1개(カルボナ-ラスパゲッティー一つ)、、、”
한사람에 하나씩 메뉴를 다 말했다.
‘와~ 스모선수라고 해서 많이 먹지는 않나보네’
나는 속으로 다행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잠시 생각하더니 또다시 한명씩 다른 메뉴를 부르기 시작해 한바퀴를 더 돌고 나서야 주문은 끝이 났다. 그 날은 스모선수팀의 방문으로 이유없이 쫄았지만 매상은 많이 올릴 수 있었다.
일본에서의 학업과 알바생활은 금세 편해졌지만 일본의 문화와 정서에 대해 점차 알게 되면서 동시에 이방인으로서 느껴지는 괴리감도 커져갔다. 과연 내가 이곳에 정을 붙이고 살수 있을까.
그러던 어느날 한 할머니 손님이 식사를 마치고 레스토랑을 나서며 "사요-나라"라고 말해줬다. 계산을 마치고 돌아서는 할머니가 손을 흔들며 건넨 그 한마디 "사요-나라"가 왠지모르게 뭉클하게 다가왔다.
그 말 한마디가 이상하게 가슴 한켠에 따뜻한 위로처럼 와닿았다.
그때 내가 들은 ‘사요나라’는 단순히 "안녕"이라는 사전적 의미와는 다른 "아가씨, 타지에서 일하느라 고생이 많네. 힘내요"의 의미로 다가온 것이리라.
일본어와 일본인들이 무섭고 어려운 대상으로만 여겨졌는데 이렇게 따뜻하게 나를 대해주는 사람이 있다니... 그 날 이후 '사요나라(さようなら)'는 내가 아는 가장 따뜻한 일본어가 되었다.
(사진출처: 위키백과, Takenotsuka Main Street 13-May-2006.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