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도쿄28

#3 점장이 무릎을 꿇었다

by 소안키친


파미레스(ファミレス、패밀리레스토랑) 알바를 시작하고 며칠동안 훈련을 거듭한 끝에 기본 인사말을 마스터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서툰 일본어 솜씨로 동료, 고객들과 커뮤니케이션 하기엔 넘어야 할 산이 너무 높았다.


동료들은 대부분 고등학생이었는데, 처음 어색한 일본어를 구사하는 나를 보고 자동으로 미간을 찌푸리곤 했다. 고객들이 무언가 매뉴얼에 없는 질문을 할 때 특정 단어를 못알아 들으면 잠시 기다려달라 양해를 구하고 주방에 들어와 고참 알바에게 물어봤다. 하지만 머리도 꼬리도 자르고 특정 단어만 옮겨 말했더니 알아듣지 못해 바보스러워 질 때도 있었다.


그 와중에도 친절을 베풀어주던 고참 카오리(カオリさん)와 최고참 직원이자 츤데레 스타일 아오키(アオキさん)는 정이 많이 들었다. 그녀들과 찍은 사진은 그 옛날 싸이월드에 모두 올라가 있는데 아직 서비스 오픈이 안돼 안타까운 마음으로 기다리는 중이다. 아날로그 사진으로 몇장 남겨놓으면 좋았을걸.


레스토랑의 주방과 물품을 보관하는 창고에 있는 물건들의 이름과 위치를 모두 외우고 나니 일하기가 한결 편해졌다. 날이 갈수록 긴장보다는 자신감이 많아졌다.


굴욕적인 카레 소스 사건

하루는 이른 저녁 점장이 사정이 있다며 일찍 퇴근을 했다. 불미스러운 일은 언제나 이럴 때 터지는 법인가보다.


깔끔한 정장을 입은 30대 비즈니스맨 두명이 들어왔다. 자리를 안내하고 주문을 받을 때까지는 완벽했다.

메뉴는 카레라이스. 주방에서 요리가 나오고 둥글고 커다란 쟁반위에 큰 디너접시를 두개 올리고 서빙을 시작했다.


비즈니스 맨 손님들의 자리에 도착해 접시를 한 개 내려놓는 순간 쟁반이 한쪽으로 기울어지고, 접시에 있던 노란 카레 소스가 손님의 재킷 위로 뚝-뚝 떨어지고 말았다.


‘오마이갓!’ 손님은 즉시 불쾌감을 표시했고, 순간 실수를 인지한 나는 죄송하다는 말만 반복했다.

어쩔 줄 몰라 물티슈를 여러개 가지고 가서 건네주고 또 다시 “스미마생(すみません)”을 연발했다.

그런데도 손님은 이상하게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어 점장을 부르라고 소리쳤다. 겁에 질린 나는 하는 수 없이 퇴근한 점장에게 SOS를 쳤다.

모처럼 일찍 퇴근한 사람을 불미스러운 사고로 다시 부르려니 그 또한 죽을 맛이었다.


헐레벌떡 돌아온 점장이 급한 불을 끄고 사태를 수습했다.

주방으로 돌아온 점장에게 처음으로 쓴소리를 들었다. 나의 결정적인 실수가 무엇인지 그는 조목조목 설명해 주었다.

“그런 실수를 했을 땐, 물티슈를 가져가서 손님의 옷을 직접 닦아드려야 한다.”


물티슈를 그냥 왕창 주고 사과를 하면 최선이라고 생각했는데, 직접 닦아주면서까지 사죄를 해야한단 말인가?

나는 납득이 되지 않았지만, 일본 문화 또는 일본식 서양레스토랑 서비스의 문화차이인 것으로 간주했다.


그리고 점장은 ‘실수’가 아니라 자꾸만 ‘실패’라는 단어를 들먹이며 나를 훈계하기 시작했다. 가까스로 눈물을 참고 있던 나는 급기야 대성통곡 하기 시작했다.


그 순간 ‘실패’라는 단어를 듣고 일본에 와서 학업와 알바를 병행하면서 쌓였던 서러움과 스트레스가 한번에 폭발했던 것 같다. 마치 나를 향해 ‘너는 낙오자야’하고 말하는 것처럼 들렸다.


지금 생각해도 부끄러운 일이지만, 그렇게 한번 크게 민낯을 보이고 난 후로는 점장과 한결 더 가까워질 수 있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비온뒤 땅이 굳는 건 진리인가 보다.


점장이 무릎을 꿇었다


하루는 알바 출근을 하고 홀에 나왔을 때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했다. 한 테이블에 손님으로 보이는 여자 고객이 앉아있었고, 점장이 그 앞 바닥에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이며 사과하고 있었다. 순간 나는 얼굴이 너무 화끈거렸다. 마치 내 아버지가 누군가에게 굴욕을 당하는 것 같은 민망함 이었던 것 같다. 나중에 사정을 들어보니 우리 매장에서 판매한 음식 중 이상이 있던 게 있었는데 그 손님의 자녀가 그걸 먹고 탈이 났다고 했다.


점장은 깔끔한 유니폼에 언제나 품위있는 자세를 유지하던 고상한 캐릭터에 가까웠다. 그런데 저렇게 넙죽 손님 앞에 무릎을 꿇다니 나로선 무척 당황스러웠다.

아무리 고객이 왕이라지만 참 너무들 한다 싶었다. 카레 사건 때 점장이 말한 대응방법도 무리는 아니겠구나 싶었다.


코코스에서 알바를 하며 일련의 일들로 나는 조금씩 일본이라는 나라와 문화, 일본사람들에 대한 이질감이 들기 시작했던 것 같다. 일본에서의 학업과 알바는 순조로웠던 편이었지만, 이러한 이질감이 쌓이면서 결과적으로 나는 일본과 일본인들로부터 한 걸음씩 뒷걸음 치게 됐다.


(사진 출처 : Google map, ココス 足立保木間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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