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생활 머스트해브 ‘자전거’ 그리고 ‘100엔샵’
도쿄의 겨울은 영하의 날씨가 드물었다. 그럼에도 서울에서 겨울 아우터를 넉넉히 챙겨갔었다. 가난한 유학생에게 주요교통 수단인 지하철과 지하철역에서 주로 멀리 떨어진 집까지 자전거를 병행하며 살아야 했기에.
자전거를 탈 때는 찬바람을 막아줄 외투가 필수였다. 지하철에서 집까지 거리가 멀면 주로 버스를 이용하는 서울과 달리 내가 살던 도쿄 외곽 타케노츠카는 주로 버스대신 자전거를 이용했다.
얼마전 하남 미사역에 방문했을 때 지하철 역 한켠에 대형 자전거 주차장이 있는 걸 보고 많이 놀랐는데,
생각해보면 그 옛날에 도쿄의 지하철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당시 가난한 유학생들이 주로 애용하는 상점은 대형 할인마트인 돈키호테, 햐쿠엔쇼프(100엔샵),요시노야(규동 등 덮밥 전문점) 등이었다. 그 당시에 빈곤한 처지에 생활용품을 100엔샵에서 사서 썼던 기억에 훗날 한국에 돌아와서는 '다이소'를 한동안 이용하지 않았다.
처음 집세를 아끼기 위해 가장 저렴한 방법인 일본어학교의 기숙사에 머물기로 했다. 기숙사라고 해도 연립주택이나 고급맨션일리는 만무하다. 첫날 일본어 학교에 도착했을 때 담당 직원은 룸메이트와 나를 기숙사로 안내했다. 한 30년은 족히 된듯한 2층짜리 다세대 주택의 2층에 있는 3평 남짓한 방한칸이었다. 대구에서 온 룸메이트는 나보다 3살정도 어린 사근사근한 동생이었다. 작은 방으로 이민가방과 캐리어를 옮겨 넣으니 두명이 겨우 몸을 누일 정도의 공간만이 남았다. 방 안에는 화장실 한칸, 작은 부엌에 벽걸이형 에어컨에 TV, 작은 베란다에 세탁기 한대가 살림살이의 전부였다. 공급 전력이 약해서 가전제품을 3개 이상 함께 돌렸던 날, 전기불이 나가 어둠 속에서 밥을 먹었던 웃지못할 추억도 생각난다.
룸메이트 동생은 단기간 계획으로 왔었기에 5-6개월 후에 먼저 한국으로 돌아갔다. 처음 도쿄생활에 적응하며 희노애락을 함께한 친구라 정이 많이 들었는데 헤어지려니 아쉬움이 컸다.
하드보일드 알바생활이 시작되다
지금도 마찬가지겠지만 한국 유학생들은 학비와 생활비를 벌기위해 보통 한국 음식점에서 아르바이트를 많이 했다. 하지만 나는 일본인이 운영하는 레스토랑에 지원을 해서 알바를 했다. 나는 학교에서도 최고연장자였고, 어학공부 후에 광고학과가 있는 전문대학을 진학할 계획이 있었기에 좀 더 하드한 일본어 환경에 나를 밀어넣어야 했다. 일본어학교를 다닌지 3개월 정도 된 후에 시작했던 터라, 처음에는 시행착오의 연속이었지만.
내가 알바를 한 곳은 프랜차이즈 패밀리 레스토랑 '코코스(coco's)'였다. 처음 구인광고를 보고 전화를 걸었을 때 점장과 통화에서 역시 서툰 일본어 때문에 생긴 에피소드가 있다.
"저는 한국에서 온 유학생입니다.현재 00 일본어학교에서 공부하고 있습니다(韓国の留学栄ですが、今00日本語学院にかよっています。) "
"나이는 어떻게 되시나요?"(おとしは いくらですか?)"
"27살 입니다(にじゅななさいです。)"
코코스의 점장은 간단한 인적사항을 물어보고, 접객업무인데 이전에 경험이 있는지 할 수 있겠는지 여부를 물었다. 나는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했었고, 대학생 때 여러가지 알바를 통해 접객업무를 한 적이 있다고 자신감을 내비췄다. 점장은 면접을 보자고 했다.
두근거리는 마음을 안고 처음 레스토랑을 찾아갔을 때 점장이 미심쩍은 눈빛으로 말했다.
"나이가 열 일곱살 맞나요....?"
"(헉) 아...뇨. 스물 일곱인데요;;;"
전화 통화에서 일본어로 27살인 '니쥬나나 사이'라고 말했는데, 발음이 나빴는지 점장은 17살인 '쥬 나나 사이'로 들었던 거다. 나는 얼굴이 화끈거렸지만 침착한 척 면접을 계속 봤다.
다행히 레스토랑에서 일할 정도의 일본어가 가능하겠다고 봤는지 알바에 합격했다. 그리고 알바를 시작한 첫날 점장이 내 나이를 10대로 짐작한 이유를 알았다. 레스토랑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직원은 25살이었고, 나머지 알바생은 모두 10대 고등학생들이었던 것이다.
코코스에 출근한 첫 날 손님이 들어오면 '솔'톤으로 "이랏샤이마세~~(いらっしゃいませ)"라고 외치라고 배웠다.
원래도 목소리 톤이 높지 않았지만 애써 노력해 인사말을 뱉어보려고 연습했다. 최대한 과도한 친절을 담아.
하지만 처음부터 잘 될리가 없었다. 손님이 들어왔는데 목소리는 기어들어가고 있었다. 첫 날 좌절감에 빠져
퇴근길 돈키호테에 들러 잘 먹지도 않는 소주를 두 병 사갔다.
집에 도착해서 난 룸메이트 동생을 붙들고 신세한탄을 하면서 술잔을 기울였다. 내가 이 나이에 무슨 고생을 사서 하는지, 왜 바보같이 인사 한마디를 못했는지 자괴감이 들었다. 이로써 나의 하드보일드 알바생활은 시작됐다. 그 후 약 10개월동안 코코스에서 알바를 하는 동안 나는 일본어능력시험 1급에 합격했고, 학교의 스피치대회에서도 입상하는 등 나름 늦깍이지만 에이스로 활약(?)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