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Disabled 06화

진실의 미간이 주는 불편함

Disabled 06

by 소안키친

수술 후 온전치 않은 목소리로 근무를 계속한 건 채 2개월이 되지 않았다. 자꾸만 추락하는 자존감을 부여잡고 계속 일해보려고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목소리는 좋아지는 기미가 안보였고 한껏 가라앉은 기분으로 실적에 대한 압박을 받아야 했다.


결국 나는 남은 육아휴직을 추가로 쓰기로 결심했다. 팀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몸부터 추스리고 봐야 할 것 같았다. 회사와 팀의 여러 가지 사정상 육아휴직으로 또다시 자리를 비우기에 타이밍이 결코 좋지 않았다. 이대로 마지막이 될 것 같은 예감도 들었다.


광고쟁이의 꿈을 안고 시작한 첫 직장생활. 대기업 광고주를 모시는 전문대행사여서 주로 인쇄홍보물의 기획과 카피라이터 업무를 했다. 그 다음 마케터의 꿈을 안고 입사한 회사에서는 상당시간을 홍보파트에서 글쓰는 일을 메인으로 했다.


직장인이라면 흔히 겪는 수많은 시행착오와 갈등 속에서도, 결혼과 살림, 두 아이의 출산과 육아를 병행했다. 힘든 와중에도 견딜 수 있었던 건 내가 꿈꾸던 일, 원하는 페르소나를 가질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때로는 좋은 리더가, 케미가 잘 맞는 동료가, 쑥쑥 커가는 후배가 새로운 동기부여가 돼 주었던 것 같다.


말로는 목구멍이 포도청인 생계형 회사원이었지만, 막상 모든 것이 사라지고 월급봉투만 남았을 때만큼 견디기 어려운 적은 없었다.


급기야 이제 건강에 적신호가 왔고, 더 이상 내가 원하는 페르소나가 나에게는 없는 것 같았다.


그렇게 돌아온 집에서의 생활에서도 곳곳에서 성치 못한 목소리 때문에 불거지는 불편함이 많았다..


작년 코로나 첫해 학교에 가지 못하는 아이들과 집안에서만 지낼 때는 코로나 블루에 시달렸다. 그 당시에는 두 아이가 하루 100번쯤 ‘엄마’를 찾는 일상이었고, 아침에 눈뜰 때부터 밤에 잘 때까지 잔소리를 입에 달고 살았다.


“일어나라, 숙제해라, 핸드폰 그만봐라, 밥먹어라, 벗은 옷 정리해라, 쓰레기 버려라, 양치해라, 일찍 자라,..”등 하루종일 목청이 터져라 말해서 늘 심신이 지쳐있었다.

그 와중에 활화산처럼 폭발하는 순간들도 있었다. 폭발한 뒤 남는 건 성과가 아닌 허탈함 뿐이었고, 그럴 때마다 나의 존재도 까맣게 타서 없어져 버리는 것 같다.


그런데 이제 목청을 높일 수 없게 됐으니 이를 어쩐다…

아이들이 말을 잘 들어주면 좋겠지만, 그런 꿈은 함부로 꾸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안다.


초딩 아들들은 역시 아이들다웠다. 엄마가 목이 아프니 말을 잘 들어야 한다며 가족과 친척들이 열심히 말해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전과 다르지 않게 말을 안 듣고 서로 싸우기 일쑤였다. 처음에는 나도 몸을 사리다가 도저히 못 참을 때면, 간혹 나오지도 않는 목청을 높이곤 했다.


보통의 여자들처럼 나 또한 스트레스는 수다로 푸는 스타일이었지만, 그 또한 원천봉쇄 됐다. 할말은 많지만, 말하지 못하니 종종 답답한 동굴에 혼자 갇힌 기분이었다.


집밖에서 내 목소리는 집안에서보다 훨씬 더 무력했다. 상대방에게 전달이 안되니,

뜻하지 않게 바디랭기지를 사용하는 외국인이 된 기분마저 들었다.


초반에는 장보러 갈 때, 커피를 주문할 때도 늘 목소리의 장벽에 가로막혔다.

집앞 마트에서 계산을 할 때도 포인트적립을 위해 핸드폰 뒤 4자리를 불러줘야 하는데, 계산원이 한번에 못 알아들으며 미간을 찌푸릴 때면 괜히 위축되어 축처진 기분으로 돌아왔다.


아주 오래 전, 이방인 취급을 받고 서러웠던 시절이 떠오른다. 2005년 일본 유학시절 일본어를 잘 배워보겠다는 의지로 현지인이 운영하는 레스토랑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당시 주로 10대 고등학생이었던 알바 동료들과 손님들에게 한국에서 온 유학생이 하는 일본어는 잘 통하지 않았고, 상대방이 미간을 찌푸리는 경우가 많았다. 어찌나 창피하고 비굴하던지.


알바 초반에는 속상한 마음에 집으로 돌아가는 길 마트에서 술을 사가서 깡소주를 마신 적도 있다. 다행히 일본의 알바생활은 성공적으로 마무리됐고, 그만 둘 때 동료들과 점장에게 훈훈한 선물도 한아름 받을 수 있었다.


keyword
이전 05화목소리는 하나의  페르소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