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Disabled 05화

목소리는 하나의 페르소나였다

Disabled 05

by 소안키친

퇴원 후에도 몸이 좋지 않아 며칠 더 휴가를 내고 회사에 다시 출근했다. 목에 남은 흉터는 스카프 등으로 가릴 수 있었지만 목소리는 불과 열흘 전과 판이하게 달랐다.


“수술 후유증으로 당분간 목소리가 안나와서요. 미안합니다”


수술 스토리를 아는 직원들은 물론 모르는 직원들에게까지 똑같은 레퍼토리를 반복해서 설명했다. 업무에 필요한 모든 대화에서 양해를 구해야 했으므로.


속삭이는 듯한 작고 갈라지는 목소리는 듣는 이에게 ‘너무 아픈 사람’의 이미지를 전달하기에 충분했던 것 같다. 말할 때 통증이 느껴지는 것도 아닌데 상대방은 내 목소리에서 통증을 느끼는 괴이한 경험이었다.


같은 팀은 물론이고 한번 설명을 들은 사람들은 나에 대해 배려해줬다.

작은 목소리에 귀 기울여줬고, 너무 많이 이야기 하지 않도록 신경써줬다.

그리고 늘 걱정해줬다. 비즈니스 관계란 모름지기 이해가 작용하는 법이니,

겉으로는 배려해 줬지만 속으로는 불편해 했으리라 짐작한다.


하지만 이미 작아진 목소리만큼 작아진 자아를 애써 감추고 있는 나에겐 티내지 않고 배려해주는 회사 사람들의 마음씨가 너무 고마웠다.


오히려 가까운 사람들의 쉽게 던지는 말 한마디에 더 상처받은 적이 있었다. ‘노래방 마이크를 가지고 다녀야겠다’, ‘말 전달이 잘 안될 땐, 글로 써서 보여주면 되지 않나’등의 말을 들었을 때는 내가 너무 옹졸한가 싶으면서도 기분이 나빴다. 내가 우울한 기분에서 벗어나길 바라는 마음에서 한 농담이었을 테지만, 그럴 때 정색하고 화를 낼 수도 없고 더 곤란하기만 하다. 친한 사이에서 생길 수 있는 명암 중 하나다.


상대적으로 거리가 있는 관계에서 형식적으로라도 나를 걱정하고 배려해준 회사사람들이

더 고마워졌다.


남편과 아이들, 친정과 시댁가족들 모두 나의 합병증에 안타까워했다. 하지만 의사의 말대로 6개월 정도 지나면 좋아질 거라고 나는 그들을 안심시켰고, 나 또한 믿었었다.


하루하루 시간이 거듭될수록 새로 만나는 사람에게 변명아닌 변명을 해야했다.


초창기에는 사레와 기침이 나오기 시작하면 사무실에 앉아있을 수 없을 정도였다.

몸 속의 장기가 빨려나올 것 같은 기침에 두개골이 흔들릴 정도일 땐 도저히 마스크를

끼고 있을 수 없다. 코로나 시국이라 더 조심스러웠다.


퇴원 후 1주일 뒤 외래에서 담당교수는 사레걸림을 조심하라고 하면서 음식은 가리지 않아도 된다고 쿨하게 말했지만, 맵거나 짜거나 뜨겁거나 차갑거나 하는 자극적인 음식을 먹을 때 사레걸릴 확률이 높았기에 모두 피할 수 밖에 없었다. 먹었을 때 입 안에서 가루처럼 부서지는 음식 또한 금물이었다.


그렇게 무자극 음식과 무간식으로 생활하던 어느날 밤 패스츄리 형태의 비스킷을 먹다가

사레가 걸려 미친듯이 기침이 나왔다. 정상의 경우 왼쪽과 오른쪽 성대가 호흡과 발성 시에 열렸다 닫혔다를 반복하는데, 왼쪽 성대가 열린 상태로 닫힐 줄 모르는 상태이기 때문에 미세한 과자가루가 기도로 흘러 들어 갔던 것이다. 그 날 이후로 약 2주간 불면증과 잦은 기침에 시달리며 힘든 날들을 보내야 했다. 평생 과자를 안먹겠다고 다짐하며.


투병생활이 계속될수록 주변사람들은 점점 더 걱정하게 됐고, 나는 어느 새 내 몸을 걱정하는 것보다 나를 걱정하는 사람들을 더 신경쓰며 큰 부담과 피로감에 빠지게 됐다.


목소리도 외모나 성격만큼이나 한 사람의 페르소나가 될 수 있다. 말로써 감정을 표현하고 의견을 제시하고 때론 논쟁하기도 하기에 목소리는 그 사람만의 정체성이요, 캐릭터가 되는 것이다. 너무도 당연한 말이지만 내가 목소리를 잃기 전에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다.


말로 먹고 사는 직업은 아니지만, 직장생활에서 대화나 통화, 발표 등 의사소통이 주가 될 수 밖에 없기에 나의 자신감은 갈수록 떨어져만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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