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Disabled 04화

내몸의 전원을 잠시 끄다

Disabled 04

by 소안키친

수술 하루 전 입원하고 병원에서의 첫날 밤을 보냈다. 간호사는 수술 전 숙지사항이 적힌 여러 장의 안내문을 주고 동의 사인을 받아갔다. 정확한 수술시간은 다음 날 아침에서야 나오는데 밤 12시부터는 금식을 유지해야 했다. 아, 이제는 진짜 수술을 하는구나 점점 긴장이 됐다.


그러다 갑자기 예정에 없던 목MRI를 밤늦은 시간에 찍어야 한다고 했다. 담당 주치의의 긴급 요청으로 밤 12시에 MRI촬영이 진행됐다. 담당 교수는 퇴근했지만 밤이라도 촬영영상을 받아보고 숙지한다고 한다.


그렇게 밤늦게 마스크를 쓰고 잠이 오지 않을 것 같은 병실에서 잠이 들었다. 보호자 침대에서 남편도 잠이 들었다.


드디어 수술 당일, 수술 시간은 정오로 잡혔다. 속옷은 모두 탈의하고 긴 머리는 양쪽으로 묶어서 머리카락이 최대한 삐져나오지 않도록 정리하고 호출이 오길 기다렸다.


수술실까지 내 발로 걸어갈 줄 알았는데 남자 직원 두명이 병실로 데리러 왔다.

수술실 행 침대에 누워 회색 병원 천장만 바라보며 실려가는 기분은 묘하다.

남편도 종종걸음으로 수술장 앞까지 함께 갔다.


막상 수술을 하려고 하니 공포와 두려움이 밀려왔지만, 애써 담담한 척 운명에 맡긴다는 심정이 됐다. 드디어 수술장 앞에 도착하고 남편에겐 잘 다녀오겠다고 인사하고 직원들과 함께 홀로 들어갔다. 남편은 이제 병실로 돌아가 수술 경과에 대한 문자 메시지를 기다리고 있으면 된다.


안경을 벗어 뿌옇게 보였지만, 수술장 안쪽에는 실제 수술실로 들어가기 전 회복실 같은 공간이 넓게 있었다. 여러 개의 침상이 보였고 내가 누운 침대도 한쪽으로 자리했다. 담당 간호사가 신원을 확인하고 나서 잠시 대기하는 시간이 있다. 철저히 혼자가 된 기분, 그것도 환자복을 입고 침대에 누워서 무력한 모습으로 혼자가 되어보니 외로웠다.


잠시 후 병원에 소속된 듯한 목사님이 기도를 하러 와주셨다.


“잠시 기도를 해줘도 될까요?”

“종교가 달라도 괜찮나요?”

“그럼요. 괜찮습니다”


어두운 풀숲에 버려진 어린 양에게 내미는 유일한 손길 같아,

나는 기도를 받겠다고 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나지막한 목사님의 음성을 듣고 있으려니 뜨거운 눈물이 새어 나왔다.

마흔 넘은 나이에 창피한 줄 모르고 어린아이 같은 마음을 들켰던 것 같다.


수술실로 들어간 후 마취를 시작하기 전 팔과 다리가 묶였다. 이쯤 되니 정말 아무생각이 안들었다. 그리고 마취 직전 드디어 담당 교수가 들어왔다. 잘 보이지 않았지만 교수는 자기가 왔다는 듯 얼굴을 한번 확인시켜 주었다. 여기까지가 수술 전 기억이다.


넷플릭스 D.P. 원작을 쓴 김보통 작가의 전작 <아만자>에서는 이런 장면이 나온다.

말기암 선고를 받은 주인공이 암투병의 고통 속에서 말한다.

“만약 나의 전원을 켜고 끌 수 있는 스위치가 어딘가에 있다면, 잠시라도 전원을 꺼버리고 싶다. 설령 다시 못 켤 위험이 있다 하여도.”


암환자의 투병과는 비교도 안되는 병이지만, 지나고 생각해보니 전신마취를 했을 때 나도 내 몸에 전원을 잠시 껐던 거 같다. 이 땐 몰랐지만, 수개월 뒤 나는 수술합병증으로 인한 괴로움에 자의로 전원을 끄고 싶은 심정에 이르게 되었다.


눈을 떴을 땐 회복실이었다. 목 주변에 기분나쁜 묵직함이 느껴졌다. 머리가 어지럽고 속이 메스꺼웠다. 간호사를 부르고 싶었지만 목이 너무도 말랐고 목소리는 아주 작게 나왔다. 마취에서 막 깨어나 반 혼수상태인 나는 침대 옆 가드를 손으로 치며 내가 깨어났다고, 병실로 보내달라고 외쳤던 걸로 기억한다.


안경을 벗어 눈에 보이는 것도 없었고 속은 메스껍고 목소리는 답답하게 안나왔다. 이윽고 병실로 올라가서야 나의 괴로움을 호소할 남편을 만났다. 간단한 수술이라는 말만 듣고 긴장을 안했던 남편은 예상보다 길어진 수술과 고통을 호소하는 내 모습에 짐짓 놀랐다고 한다. 나중에 들었지만, 수술 직후 나의 얼굴과 목주변은 누런 소독약과 핏자국이 많은 상태였다고.


마취에서 깨어난 뒤로도 2시간 정도 물을 마시면 안된다는 규칙이 있어 더 괴로웠다. 약을 넣어줬는지 두통과 메스꺼움은 금세 가라앉았지만, 극심한 갈증은 견디기 힘들었다. 물수건으로 입술을 적시며 겨우 기다린 다음에야 조금씩 물을 삼킬 수 있었다.


저녁에 담당교수가 회진을 왔다.


수술 결과 종양은 잘 제거되었지만, 주변 신경과 유착이 심해 미주신경이 일부 손상되었고, 그래서 왼쪽 성대가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탓에 목소리가 작게 나온다고 했다.

당분간은 물 종류나 음식물을 삼킬 때 사레가 걸리지 않도록 특히 조심하라고 했다.

목소리는 약 한 달 정도 지켜봐야 한다고. 담당교수는 언제나 그렇듯 설명이 짧았다.


자세한 설명은 전공의 선생님에게 들을 수 있었다.


“왼쪽 성대가 안움직이다 보면, 나중에 오른쪽 성대가 더 커져서 왼쪽으로 좀더 붙게 돼 목소리가 더 잘 나올 수 있어요. 만일 그것도 안 된다면 왼쪽 성대에 필러를 주입해서 더 크게 만드는 방법도 있어요. (너무 걱정마세요)”


수업시간에 발표하는 학생처럼 공손하고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전공의들에게 환자들은 더 큰 만족감을 느낄 것 같다. 교수와 전공의라는 포지션 차이에서 오는 것이겠지만, 당장 내 몸이 중하고 호기심천국에 있는 환자에겐 친절한 전공의 하나가 열 교수 부럽지 않다.


그렇게 전공의 말에 위로 삼아 일단 안심하고 있었는데, 다음날 회진 때 담당교수는 목소리 회복기간을 확 늘려 말했다. 3개월 정도 더 기다려 봐야 한다고. 하루만에 갑작스러운 기간연장이라니. 그리고 퇴원 후 1주일 뒤 외래에서 교수가 말한 회복기간은 더 늘었다. ‘6개월 정도’. 당황스러웠다.


여기서 몸이 아픈 절박한 환자 입장에서 ‘일정기간 기다려야 알 수 있다’의 뜻은 흔히 ‘기다리면 나을 것이다’로 받아 들여진다. 환자는 의사의 말에 ‘나을 수 있다는 희망’을

바라는 만큼 싣기 때문이다. 이런 해석의 최대 단점은 의사가 말한 기간이 지나도 낫지 않는 경우에 일어난다. 이런 경우 환자는 헤어나올 수 없는 좌절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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