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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안키친 Nov 20. 2021

엄마라는 페르소나

10년차 워킹맘 홀로서기


네 자매의 막내로 자란 나는 자의식이 강한 성격이다.


왜 그렇게 되었는지는 추측하건대

언니들이 많은 집에서 부대끼며 살아보니

나의 존재감을 명확히 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다.

그렇다고 나를 어필하기 좋아하는 건 아니었는데.

 

그저 생각의 원천이 되는 카메라가 남이 아닌 나를

향한 적이 많았다. 전형적인 내향적인 성격이었다.


초등학교 시절 기억나는 에피소드는 많지 않지만

어떤 친구에게 “넌 의견이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아서 좋다”는 말을 들었다. 그 친구는 기억나지 않아도,

나에 대해 남이 해준 말은 기억이 잘 난다.

아마도 친구들 간에 다툼이나 이견이 있을 때, A도 맞는 부분이 있고, B도 이해가 되긴 한다는 식의 이야기 였을 것이다. 좋게 말하면 중립적인 사람, 나쁘게 말하면 회색분자 정도 되지 않을까.


20대 초반 PC통신이 유행하던 시절 한창 ‘아이러브스쿨’이라는 웹서비스로 초등학교(구 국민학교)동창 찾기 열풍이 불었다.


그 때 동창들을 만나면서 새로운 나의 페르소나를 알게됐다. 초등학교 시절 서너명이 하교를 하곤 했는데 내가 친구들에게 자주 기대어 걸었다는 것이다. 기억이 나지 않지만 나는 전형적인 막내스타일의 의존형 이었던 것 같다.


중•고등학교를 다닌 청소년 시절에 막내티나는 건 좋은게 아니라는 큰언니의 충고를 듣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재수시절 방황 아닌 방황을 하며 나는 막내이지만 막내가 아닌 페르소나를 간절히 원했다.


대학교 1학년 선망하던 연극 동아리에 들어가서 신입생 환영회에 간 날, 한 선배는 나를 보고 ‘자신감이 넘쳐보인다’ 고 말해줬다. 대학생이 되면서 밑도 끝도 없는 자신감을 드러내며 막내티를 벗으려 안간힘을 썼던 것 같다. 그런 덕분인지 나를 처음보는 사람들은 차가워 보인다거나 첫째같다는 말을 곧잘 했다.


외국어에 대한 관심이 많고, 소질도 꽤 있는 편이었던 나는 호주 유학 시절 영어의 바다를 유영하듯 자유롭게 생활할 수 있었다. 한편으로는 타국에서 긴장을 늦추지 않는 빈틈없음과 철두철미함을 유지하면서. 영어 공부라는 작지만 명확한 목표만을 보며 집중할 수 있었기에 이유있는 자신감이 넘쳤다.


회사원 시절에는 회사에 올인하는 보수적인 순정파였다.

회사의 발전이 곧 나의 발전이라는(지금 세대에게는 구태의연하겠지만) 어찌보면 또래보다도 꽉막힌 마인드로 업무에 전념했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보면 불의라고 생각하고 혼자서 정의로운 척 술잔을 기울이고 눈물을 흘렸다.


일을 하면 열심히 하지 대충하지는 못하는 사람이라는 페르소나를 나름 만족해 했던 것 같다.




첫째를 임신했을 때는 어딘지 모르게 패기 넘쳐 보인다는 말을 들었다. 솔직히 영문을 몰랐다.기쁘고 설레는 마음은 있었지만 자신감있어 보일 이유는 없는데 말이다.


세월이 지나고 생각해보니 그건 아마 신체가 차츰 엄마가 될 준비를 하기 위해 모드 변경을 했기 때문인 것 같다.  

엄마가 되고 나서 맹수처럼 달겨들 현실과 싸울 준비를 하는 것 아니었을까.


그리고 워킹맘으로 10년을 살아오며 나의 페르소나는 무엇이었을까 자문해 봤다.쉬이 답이 떠오르지 않는다.


‘좋은 엄마’ , ‘멋진 엄마’, ‘장난감 잘 사주는 엄마’, ‘따뜻한 엄마’ ‘열심히 사는 워킹맘’등을 떠올려 봐도 왠지 모르게 그건 내가 원했던 페르소나와는 거리가 있다.


그도 그럴것이 ‘ㅇㅇ엄마’라는 단어 속에는 ‘나’라는 존재가 결여되어 있다. 다시 말해 내 이름 석자가 없다.


“아이가 태어나고 열살이 되기까지 다치는 일이 있으면 부모 책임이 크다”는 친정엄마의 말처럼

아이들이 어릴 때는 부모가, 엄마가 자의식을 붙들고 산다는 것이 참 어려운 일이다.


아플까봐 걱정, 다칠까봐 걱정, 잘 안클까봐 걱정

친구가 없을까 걱정하다보면 내 이름의 석자는 커녕

한자라도 어느 구석에 비집고 넣기가 힘들다.


그랬다. 지난 10년간 나는 본의 아니게 원하는 페르소나 없이 살아왔다.


“ 나에게 받는 인정과 남에게 받는 인정이 잘 맞물려야 사람은 건강하게 작동된다”

과거 브런치의 어떤 글에서 읽은 인상깊은 대목이었다.

이 말을 내 경우에 대입해서 조금 각색해봤다.


“나에게 받는 인정과 남에게 받는 인정이 공존할 때 사람은 비로소 행복을 느낀다”


이제 다시 ‘엄마’에서 ‘나’로 모드변경을 해야할 때가 온 것 같다. 과거 내가 원하는 페르소나를 얻으며 성취감을 동력삼았던 것처럼 새로운 페르소나를 꿈꾸며 나아가야 한다.


동시에 내가 스스로를 인정할 수 있도록 전보다 더 많이 노력해야 할 것이다. 보이지 않는 수면 아래로 부단히 발버둥치는 백조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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