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쉬운 일은 없다
9월부터 시작된 ‘오징어게임’ 열풍이 아직 거세다. 오늘은 미국 ‘고담어워즈’에서 한국 드라마 최초로 수상했다는 소식이 들리면서 또 한번 이슈가 됐다.
오징어게임이 글로벌 무대에서 흥행에 성공한 것도 대단한 일이지만, 나는 집집마다 꼬마 아이들까지 드라마에 대해 꿰뚫고 있다는 사실에 더 놀랐다.
안방극장이 아닌 유튜브 극장에서 숱한 패러디가 생산되면서 어린아이들 까지도 주요 인물과 장면, 대사와 음악까지 줄줄이 꿰고 있다. 뿐만 아니라 주요 캐릭터로 그림그리기나 만들기까지 러닝 동영상도 많다보니 모를 수가 없는 것이다.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인 게 무색할만큼.
집앞 놀이터에서는 잊혀졌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가 재현되고, 얼마전 춘천여행에서 마주친 다른 집 아이들도 오징어게임 이야기를 즐겨 하는 걸 목격하고 온라인 미디어의 위력을 다시금 실감했다.
‘달고나 뽑기’놀이도 어린이들이 보는 영상컨텐츠로 많이 재현되다보니 전부터 둘째가 지대한 관심을 보인 터였다.
초등학교 시절, 동네 작은 천막 안에서 뽑기를 사고 팔던 풍경이 어렴풋이 기억난다. 내가 어릴적엔 초등학생이 할수 있는 유일한 일탈 두가지가 오락실 가기와 뽑기 사먹기였다. 왜 그랬는지 지금은 잘 모르겠지만, 그 당시에는 학급 친구 중에 누가 오락실이나 뽑기 천막을 드나드는 걸 목격하면 담임선생님께 신고(?)를 했었다.
초등학교 1학년 둘째가 몇번 달고나 세트를 사달라며 조르는 걸 요령껏 디펜스 했었는데, 어제는 작정하고 사달라며 고집을 피웠다.
더이상 버틸 재간이 없어, 저녁나절 달고나세트를 사왔다. 축구교실을 다녀온 둘째는 피곤한 기색도 없이 달고나 세트를 열어보고 기뻐했다. 그리고 밤 9시 우리는 위기의 달고나 만들기를 시작했다.
주위에서 달고나 만드는게 생각보다 어렵다는 말을 들었던지라 마음의 준비를 하고는 있었다.
적당량의 설탕을 녹이는 것부터, 소다를 넣고 다 녹은 달고나를 받침판에 얹은 다음 누름판으로 납작하게 만들기까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누름판에 달고나가 묻어나서 설탕반죽이 망가지기가 일쑤였다. 나중에는 기름을 발라보기도 했는데 그다지 효과가
없었다.소다를 너무 적게 넣으면 달고나가 너무 작아서 모양틀을 못 찍고 실패했다. 소다를 너무 많이 넣으니 쓴맛이 단맛 못지 않게 났다.
이처럼 달고나 만들기에는 단계별로 실패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한 시간이 흘렀다. 자꾸만 실패하자 아이도 울상이고 나도 짜증이 치밀었다. 국자가 문제인가 싶어 냄비로 했다가 다시 국자로 했다. 달고나를 한번 만들때마다 여기저기 설탕가루가 떨어지고 녹은 설탕이 곳곳에 딱딱하게 굳어 금세 주방이 난장판이 됐다.
쌓여만 가는 실패작들을 집어먹으며 떨어지는 당을 충전했다. 어느덧 밤 11시.
몸도 힘들고 지친 내가 더이상 못하겠다고 말하자 아이가 참고 있던 울음을 터트렸다.
별모양과 자동차 모양, 로케트 모양 3가지를 하고싶다고 했었는데 하나도 성공을 못하고 실패만 계속하니 좌절한 것이다.
“처음 하니까 못할 수도 있는거야. 그런 것 가지고 울지마. 다른 이모들도 다들 어렵다고 했던거 알잖아. 우리만 그런거 아니야”
우는 아이를 달래보려 했지만 어지간히 서러웠는지 울음을 그치지 않는다. 아이도 자기가 해본답시고 내 옆에서 꼬박 2시간을 거의 서있었다. 피곤과 좌절감이 몰려왔던 모양이다.
“니가 원하는 걸 말해봐. 울지만 말고!!”
서서히 분노 게이지가 상승했다.
‘나도 힘든데, 너가 해달래서 했는데, 울면 내가 너무 힘들다’ 내 단골 레퍼토리가 자동으로 나올 뻔했다.
어릴 때부터 둘째는 울음이 많았다. 억지로 달랜다고 달래지는 적이 없었다. 눈물의 용량 보존의 법칙이라도 있는 것처럼 아침에 안울면 저녁에 몰아서 울었다. 그런 아이를 키우면서 깨달은 게 있다.
때론 기다려주는 게 최고의 훈육이라는 것이다.
대신 방치가 아닌 ‘지지하고 응원하는 마음으로’ 기다려주는 것이다. (이게 막상 닥치면 무지 어렵다)
그렇게 잠시 기다렸더니 아이는 이내 울음을 그쳤다.
“달고나 박스에 쌍따봉 하는 영희 미워. 왜 이렇게 어려운거야?’”
“그런데 엄마 저 냄비랑 그릇들은 안씻겨지면 어떻게 해?”
뒤죽박죽 된 감정의 퍼즐들이 맞춰지기까지 시간이 걸린건지, 살림살이 배려 멘트도 하는 걸 보니 기분이 나아진 것 같다.
“그러니까 세상에 쉬운 일은 없다. 오늘 달고나 만들기의 교훈이다. 너무 늦었으니까 우리 내일 다시 하는 걸로 하자^^”
다음 날, 학교에 다녀온 아이는 바로 달고나를 만들자고 재촉했다.
달고나 2일차, 제법 숙련된 솜씨로 설탕을 녹인다. 소다량과 불의 세기를 매의 눈으로 조절해 가며 익숙하게 국자를 저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 녹인 달고나를 받침판 옮기고 나서 누름판으로 눌렀을 때 자꾸만 달고나가 묻어나와 실패하기를 반복했다. 불의 세기와 소다의 양을 조금씩 달리하면서 몇 번을 더 시도하다보니 조금씩 감이 오는 것 같았다.
2일동안 10번 넘게 시도한 끝에, 설탕 약 600g을 소비한 끝에 드디어 멀쩡한 달고나가 완성됐다! 힘든 여정이었지만 실패만을 남기고 끝나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바라건대, 달고나 만들기 체험으로 아이는 몇가지 교훈을 얻었을 것이다.
처음 도전하는 일은 잘 안될 확률이 높다는 것, 실패했을 때 슬프고 힘들면 잠시 주저앉아 울 수 있다는 것, 그 다음에 계속 도전하다보면 조금씩 성공에 다가갈 수 있다는 것
이다.
저녁을 먹던 아이가 입안이 쓰라리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달고나를 너무 많이 핥아서 혓바닥이 헌 모양이다. 그러더니 내일 또 한번 계획했던 달고나 만들기를 전격 취소했다.
“달고나 만들기 이제 절대 안해!”
“(야 호) 그래 그러자~ ㅎㅎ혓바닥이 아파서 안좋네..”
나는 몰래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