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에서 만난 눈부신 가을이야기
여행의 불확실성 만큼 매력적인 건 없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나는 좋은 여행지를 찾는 센스, 여행가방을 싸고 푸는 부지런함, 가서 온몸으로 노는 체력 중 아무것도 가지지 못했다.
작년 여름까지만 해도 몸이 편하고 잠시나마 럭셔리 라이프를 누릴 수 있는 호캉스를 갔었는데, 올 가을 이색적인 여행지를 발견하곤 한눈에 반해버렸다.
춘천에 한 오래된 폐교를 리모델링해 카페와 레스토랑, 독채 스테이로 오픈한 <오월학교 스테이>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욕심부자 둘째가 여행을 가자고 조르면서 내건 조건이 있었는데, 계단이 있는 2층집이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가평의 어느 2층 펜션을 알아보던 차에 여름이 지나고 어느덧 가을. 우연히 오월학교를 알게됐다.
오월학교는 카페로도 유명한데 숙소는 단 4개이고 한 방에 최대인원이 3~5명 정도로 매우 프라이빗한 컨셉이라 마음에 들었다.
저녁에는 운동장에 마련된 캠핑 사이트에서 바베큐를 즐길 수 있는 옵션이 있어 주저없이 선택했다.
우리는 복층룸에 천창이 있는 방으로 예약했다. 운이 좋으면 밤하늘의 별을 보는 특별한 추억을 만들 수 있다고 믿으며..
게다가 오월학교에서 아이들이 고양이와 놀 수 있다는 후기가 있었다. 이건 고양이를 좋아하는 첫째를 위한 공짜옵션으로 완벽했다.
그래, 이번 여행의 컨셉은 2층집과 밤하늘의 별, 그리고 캠핑체험(with 고양이)이다!
여행 당일 나는 운전을 할테니 남편에게 여행지에서 아이들과 놀아줄 것을 당부하며 출발했다.
강원도 춘천시 서면 오월리는 아담한 단층집들과 논밭이 펼쳐지는 산촌마을, 알록달록 가을의 정취를 머금은 고즈넉한 풍경 아래 정돈된 아름다움을 지닌 마을이었다.
보통 자동차로 시골길을 달리면 도로가 좁아서 긴장하는 탓에 주변 풍경을 오롯이 눈에 담지 못하는데, 오월학교로 가는 길은 달랐다.
산촌을 수놓은 작은집의 파란 대문, 탐스러운 가을열매들이 어우러진 안온한 풍경에 마음을 이미 빼앗기기 시작했다.
1982년 폐교된 지암국교분교장 자리에 지어진 카페와 레스토랑, 목공방, 그리고 독채펜션 스테이까지
세월과 이야기를 지니고 탄생한 오월학교는 모두가 새것이지만 푸근한 옛것의 냄새가 났다.
실제 당시 학교의 건축자재를 일부 재사용했다고 하니 이보다 더 낭만적일 수 있을까.
어린시절 국민학교과 닮은 너른 운동장에서 아이들은 축구하며 마음껏 뛰놀고, 어른들은 따뜻한 차한잔씩 어루만지며 있노라니 근심 걱정 잊고 잠시 동심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햇살 아래에서 뛰어놀 수 있고, 세상살이에 지친 어른들은 조용하고 평온한 기분으로 쉬어갈 수 있는 곳이었다.
저녁식사는 캠핑사이트에서 바베큐와 맥주한잔을 즐기며 생경한 장소에서의 들뜬 마음을 노곤하게 가라앉혔다.
식사가 시작될 무렵, 드디어 첫째를 위한 무료 옵션인 고양이 게스트가 출현했다. 짐작컨대 주변에 있던 고양이들이몇집에서 바베큐를 굽기 시작하니 냄새에 홀려 모여든 것 같다. 아이들은 밥먹을 생각도 없이 고양이와 숨바꼭질 하기에 바빴다.
춘천 오월학교는 호캉스에서는 누릴 수 없는 작지만 특별한 즐거움들을 발견할 수 있어서 더 좋았다.
식사후에는 운동장 한켠에 마련된 모닥불을 즐길 수 있었다. 깊어진 밤, 모닥불을 바라보고 앉아있자니, 다른 가족들과도 잠시나마 묘한 동질감이 들었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던데, 같은 시간에 특별한 공간에서 만난 사람들은 아마도 비슷한 취향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밤새 얌전하게 내린 가을비가 그친 아침,창문을 열어보니
촉촉한 나뭇가지에 바쁘게 종알대는 어린새들이 날아들었다.
고요한 아침, 운동장을 감싸는 멀리서 들려오는 계곡의 물소리와 새들의 지저귐에 잠시 생각을 멈추고 그저 귀기울여 봤다.
오월학교가 특별했던 건 옛날 이야기과 터전을 살려내 감성적이라는 점과 누구나 익숙한 ‘학교’라는 형태와 이름의 공간에서 푸근함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이다. 운동장에 있는 투박한 나무들은 계절마다 색을 바꾸며 리얼리티를 더해준다.
여기에 개인적으로는 고급스러운 원목 가구와 인테리어를 즐길 수 있던게 여행의 백미였다.
짧지만 긴 여운을 남긴 이번 가을 여행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