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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안키친 Dec 06. 2021

커피 한잔 할까요?

순수하지만 묵직한 커피같은 드라마

며칠전 종영된 카카오 TV 드라마 ‘커피한잔 할까요?’는

제목과 어울리게 한 잔의 따듯한 아메리카노 같은 드라마였다.


다소 무뚝뚝하고 고집스럽고 말수도 적지만 마음만은

따뜻한 2대커피 사장 ‘박석’.

동네 작은 매장이지만 스페셜티 커피 전문점으로

품질만큼은 제일을 추구한다. 모든 손님을 평등하게

대하는 마인드로 상업적인 영리추구와는 거리가 있는

캐릭터다.


취업준비생으로 잇따른 고배를 마시다가 어느날 2대 커피의 커피 한잔을 마시고 그 맛에 감명받아 바리스타의 길로 들어선 ‘강고비’


직원채용이 필요없던 박석은 제자로 받아달리는

강고비의 직진 프로포즈에 어딘가 모를 진정성이 느껴졌다. 그렇게 박석은 강고비에게 커피를 가르치고 둘은 커피를 둘러싼 지식과 철학을 나누며 브로맨스를 키워간다.


두 주인공의 부족하지도 넘치지도 않는 연기가 드라마 전체의 정서를 지배한다. 잔잔하면서 은근한 감동이 느껴지는 일화들이 매회 소개된다.


특히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 2가지가 있다. 2대 커피에서 일을 시작한 강고비에게 박석은 커피 머신의 설정값을 초기화 한 채, 방금 본인이 뽑은 에스프레소를 다시 뽑아보라고 주문한다. 머릿속이 하얀 고비는 여러차례 이론대로 시도를 해보지만 실패하고 만다.

그냥 버튼만 누르면 되는 줄 알았던 에스프레소 추출이 이렇게 어려운 일인지 깨닫게 되는 순간.


이 때 박석은 말한다.

버튼만 누르면 나오는 거 맞아. 그 버튼을 누르기까지 수많은 노력들이 가려지는 게,
그게 좀 아쉬운 거지


마침 2대 커피에 있던 손님은 출세에 혈안이 된 상사 때문에 스트레스 받는 상황이었고, 박석의 이야기가 그녀의 상황과 오버랩되면서 묵직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나는 이 대목에서 가사노동을 떠올렸다. 집안의 관리를 책임지는 업무인 가사노동. 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일을 반복해야 하는 강요된 성실함, 매 끼니를 다르게 기획하고 집밥을 차려내야 하는 수고로움, 방대한 양의 업무를 사실상 혼자서 해야하는 외로움 등은 가려진 채, 집안에서 휴식과 식사를 누리는 입장에서는 그저 편하고 쉽게 생각하기 쉽다.  


버튼만 누르면 잘 차려진 밥상이 나오고, 세탁된 옷이 나오고,깨끗한 거실과 방이 뚝딱 나오는 도깨비 방망이라도 있다면 모를까. 그 모든 관리와 유지를 위해 가사를 책임지는 한사람의 노동은 예상하는 것 보다 훨씬 혹독하다.


가사노동의 설정값을 초기화 하고 모두 직접 셀프로 해야한다면 그 노고를 알수 있을까 부질없는 상상을 해본다.


또 한 가지는 2대커피를 찾은 건설현장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에피소드다. 커피에 대해 문외한이던 건설현장 반장이 강고비의 노력으로 커피의 참맛을 알게되고 동료들과 나누는 이야기다.


박석은 건설노동자 손님을 무시하는 듯한 고비의 모습에실제 이탈리아의 커피숍에서는 바쁜 노동자들이 에스프레소를 빨리 들이키고 가기 편하게 바 테이블이 있는데,

2대 커피도 모티브를 삼아 바테이블을 만들었다고 말한다.

커피를 잘 아는 사람이나 모르고 처음 알게된 사람이나  

모두 커피 앞에는 동등하다는 박석의 마인드를 알고난 뒤, 일말의 선입견을 가졌던 고비는 부끄러움을 느낀다.


‘커피한잔 할까요?’는 카카오TV가 아직 생소한 채널이고 등장인물이나 토픽이 자극적이지도 않아서 소위 낚시성으로 시청자가 유입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는 <나의 아저씨>이후로 주목해 온 박호산 배우(박석 역)가 주인공으로 나와서 눈길이 갔고, 바리스타의 세계에서 이뤄지는 브로맨스를 그리는 드라마여서 관심이 갔다.


화려하지 않지만 진정성이 꾹꾹 담긴 2대 커피, 그 장소를 중심으로 주변인들의 에피소드들이 잔잔하게 그려지는 구성이기에 배우들의 연기에 더 몰입할 수 있었다.


 ‘커피한잔 할까요?’라는 한 마디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있을까? 그 말을 건네는 상대는 적어도 호감을 느끼는 사람일 것이고, 더 깊게 알고 싶다는 것, 관계의 미래에 기대와 설레임이 있다는 게 아닐까.


드라마를 보면서 에스프레소와 물로만 만들어지는 아메리카노처럼 순수하지만 묵직한 풍미가 가슴 깊은 곳까지 전해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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