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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안키친 Dec 15. 2021

결혼변주곡

오늘보다 내일 더 행복하게


결혼 1주년 기념일은 첫째를 낳고 채 100일이 되지 않는 때였다.


출산의 고비를 넘어 육아라는 거대한 산을 오르고 있을 때,

수면부족에 시달리며 산후조리와 수유와의 싸움에 지친

나의 최대 관심사는 그저 아기와 무사한 하루를 보내는

것이었다.

결혼기념일이 지나가는지 마는지는 안중에 없었다.


두번째 결혼기념일 즈음이었던가,

결혼 후 도통 선물을 할줄 모르는 멋없는 남편에게

엎드려 절이라도 받자 싶어 손수 편지를 써 달라고 주문을 했다.


아내에 대한 사랑과 감사가 마음 속에 있다면

못쓸것이 없다고 자부했다.


“이거 쓰느라 엄청 힘들었어. 발라드 노래 한참 들으면서 겨우 썼다...”


남편의 어이없는 고백을 듣고 나는 다시는 편지 숙제를 내주지 말아야 겠다 다짐했다.


세번째도 네번째도 나의 결혼기념일에는 별다른 이벤트가 일어나지 않았다.


처음부터 3명이 함께였고, 이윽고 4명이 되어 둘만의 오붓한 결혼기념일은 보내본 적이 없다.


케잌을 살 때도 아이들이 좋아하는 딸기가 듬뿍 들어간 케잌을 골랐고, 선물따윈 서로 생략하며 살아왔다.


결혼 10주년이 되면 회사를 그만두고 가족이 함께 근사한 해외여행을 가는 상상을 해 본 적은 있다.


하지만 큰일 일수록 세심한 계획이 필요한 법, 결혼 10주년이 되는 해에 나는 회사에 복직했고 해외여행은 당분간 가기 힘든 시기가 됐다.


이럴줄 알았으면 몇가지 꿈 옵션을 더 만들어 놓을 것을

아쉬운 마음이 든다.


다시 만난 직장의 세계는 역시나 녹록치 않다.

작년 <전업맘으로 산다는 것>에 대한 깊은 성찰을

경험하면서 스스로 멘탈이 단단해 졌다고 믿었는데...

나의 직장인 페르소나는 아직 단련할 것들이 남은 것일까.


마침 결혼 10주년 기념일이 되었다.

퇴근길 어깨가 축 처진 채로

발라드를 듣고 있자니 왠지 마음이 착잡했다.


내 안 깊숙히 웅크리고 앉아 울고 있는 여린 나를

바라보는 느낌이랄까.


울고싶지만 울 수 없다는 판단력과 울지 않겠다는 원칙으로 껍질은 단단해졌지만 정작 속마음은 한없이 울고싶기도 하다.


저녁 시간 내가 주문한 케잌을 사온 남편이 겸연쩍은 듯 선물과 편지를 내밀었다.


그동안 각종 기념일에 3무(No 선물, 편지, 이벤트)로 일관한 것에 익숙해진 나는 내 눈과 귀를 의심했다.


목걸이 선물은 결혼 전 크리스마스  때 프로포즈와 함께 받은 후로 두번 째다. 꼬박 10년이란 세월이 흘렀다는게 믿기지 않는다.혼자 선물을 사러갔을 장면이 하나의 서사처럼 떠오르고, 감성적인 언어들로 써내려간 편지는 진심을 전하기에 충분했다.


그렇게 남편이 준 결혼10주년 기념 선물은 생각보다 훨씬효과적이었다.


남편은 이제 발라드 없이도 감동적인 편지를 쓸줄 아는 것 같았다. 10년간 울고 웃고 싸우고 사랑한 날들이 우리들만의 노래가 되어 영감을 준 건 아닐까?


달달한 발라드부터 무시무시한 헤비메탈까지 장르를 총망라한 우리들만의 노래 말이다.


막상 서프라이즈 선물을 받고 나니 내심 기분이 좋았던 나는 말했다.


“앞으로 이런 선물 자주 받고 싶네! 곧 내 생일인데 그 땐 반지로 부탁해~^^”

“다음 선물은 10년 뒤에 해줄게ㅎㅎ”

“(OMG)”


처음 결혼생활의 8할이 기대였다면, 10주년이 된 지금의

결혼생활은 두려움과 호기심이 기대보다 앞서는 게 사실이다.  


남편이 뜻밖의 선물 3종세트로 감동을 주었듯이,

좀 더 이색적인 것들로 같은 듯 다른 변주곡을 써

내려가야 할 것 같다.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키워드는 세가지 정도로 압축된다.

관심분야에 대한 공부, 몸과 마음의 단련, 이 두가지를 실천할 수 있는 실행력이다.


결혼 20주년, 30주년에는 지금보다 더 팍팍한 현실을

마주할텐데, 옆에 있는 사람한테라도 신선한 영감과 에너지를 줄 수 있는 동반자가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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