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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안키친 Dec 31. 2021

0.0001% 확률에 걸리다니

Disabled : Epilogue 1

기다려도 돌아오지 않는 왼쪽성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찾아간 분당의 D병원에서 극적으로 마음까지 치유 되는 ‘낭만닥터’를 만났다. 환자의 처지를 진심으로 걱정하고 공감해주려고 노력하는 의사, 나만의 낭만닥터의 정의다.


그동안 수술하고 입원했던 A병원, 수술합병증이 고민돼 찾아갔던 B와 C병원의 선생님들의 장점을 모두 갖춘 분인 것 같았다.

(영문 이니셜은 병원이름이 아니고 가본 순서에 따라 임의로 매겼다)


수술후 3개월 뒤, 지난 여름 A병원에 첫 외래 진료를 갔다. 성대 마비가 조금은 회복이 됐기를 간절히 바라며..하지만 A병원 의사는 집도를 한 주치의임에도 불구하고 마비상태가 돌아오지 않는 것에 대해 아무런 감정의 변화 없이 말했다.환자의 절박함을 10분의 1정도만 알아주었다면 절망적인 설명을 듣는 동안에도 마음이 좀 덜 불편했을 것 같았다


나도 좋게 생각할 수가 없다. 빈정이 상했다.

‘그래 당신들은 수술 전 0.0001%의 합병증이 걸릴수 있다고 고지했고, 성대마비의 회복에 대해서도 나을지 안나을지 확실치 않다고 했으니 그걸로 죄가 없겠지. 그치만 몸이 망가진 데다 마음까지 망가진 환자는 말 한마디가 아쉽고, 그 낮은 확률에 걸려버린 심정은 말로다 못하는데…(퍼센트를 직접 말한건 아니지만 낮은 확률이라는 뉘앙스로 말했었다)


좀 더 기다려보자는 희망을 주는 이야기 따윈 한마디 없었다. 다른 병원에서 권하는 재활을 위한 음성치료 또한 한번도 권해주지 않았다.


“생활하기 불편하시면 필러주입술 하시면 되요. 성공확률은 80%정도라 높아요” 의사가 말했다.

이런 기분으로 시술을 하면 또 다시 20%의 실패 확률에 덜컥 걸려버릴 것 같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A병원 의사와는 케미가 안맞았다.


이제는 스스로 재활을 해보는 게 낫겠다고 생각해 몇군데 병원을 더 가보기로 했다.

B병원은 이비인후과 전문병원으로 대학병원과 달리 쾌적한 환경에서 빨리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전문적인 음성치료센터가 있는 것도 병원을 선택한 이유 중 하나다.

담당의사는 수술 히스토리를 듣더니 내가 물어볼 말까지 모두 줄줄 읊어 내가 별로 할말이 없게 만들었다.

A병원과 달리 내시경도 상세하게 오랫동안 보여주고 설명을 충분히 해줘서 좋았다.


D병원의 낭만닥터를 알게된 건 B병원에 이어 C병원에 갔을 때였다. 당시 C병원 선생님도 내가 사전설명 한대로 수술합병증으로 성대신경이 손상됐다는 데 이의가 없었고, 역시나 필러주입술이 가장 좋은 치료방법이라고 권했다.


그 때만 해도 필러주입술 보다는 ‘기다리면 돌아오지 않을까?’하는 희망을 가지고 싶었다. 제일 중요한 건 마비된 성대가 돌아올 가망이 있는지 여부였다. C병원에서도 ‘가능성은 없지않지만, 안 돌아올 수도 있다’는 식의 설명을 해줬다.

그러면서 성대필러 주입술은 해당병원에서는 안하고 있으니 분당의 D병원 ㅇㅇㅇ교수를 찾아가보라고 했다. ㅇㅇㅇ교수를 검색해본다. 유명한 교수면 주로 인터넷 카페에 많이 올라오는데 이 분은 별로 없었다.


그러고도 나는 3개월을 넘게 기다렸다. 인터넷 커뮤니티를 검색하니 가장 비슷한 질환이 많은 곳이 갑상선 질환 카페였다. 갑상선은 아니지만 비슷한 합병증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의 사연이 꽤 많았다. 나 또한 회원가입을 하고

사연과 고민을 남겼다.


커뮤니티의 힘은 생각보다 거대하다. 비슷한 경험과 처지의 사람들이 질병과 맞서 싸우며 병원에서는 미처 얻지 못하는 정보와 심적 치유를 커뮤니티를 통해 얻어가는 것 같다. 회원이 제법 많은 카페였고, 처음 병원 선택부터 담당의사의 선택, 수술과 입원 준비와 수술후기, 퇴원 후 건강관리와 멘탈관리에 이르기까지 질병과 관련된 것들이 총망라 돼 있었다.


나 또한 따듯한 댓글로 위안을 받아 하루종일 기분이 좋은 적도 있었다. 궁금했던 성대필러시술에 대해서도 경험한 분들이 댓글을 남겨주니 용기가 났다.진작에 부지런을 떨고 들어와 봤어야 하는데 내가 수술을 너무 단순하게 생각했다.


아주 오랜만에 후회라는 감정을 만나버렸다.난 수술 전 병가를 내고 회사 눈치에 다른 병원을 더 알아볼 생각을 하지 못했다. 초대형 대학병원인데 설마 별일 있겠냐 싶어 무턱대고 믿었던 것도 있다. 합병증 경고는 무서웠지만 내 일은 아니겠지 하고 안이하게 생각했다.


설령 다른 병원에서 수술을 했어도 합병증에 걸렸을 수는 있겠지만, 치료과정에서는 훨씬 덜 힘들었을 것 같다.


주변에 누군가 큰 수술이나 치료를 앞두고 있다면 몇 군데 병원을 비교하고 제일 믿음이 가는 곳으로 결정하라고 말해 줄 것이다. 분명 번거로운 과정이긴 하지만, 자신의 건강만큼 소중한 건 없을 뿐더러 건강은 한번 잃으면 되찾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렇게 돌고돌아 D병원에서 만난 의사쌤은  <어떤 죽음이 삶에게 말했다> 저자 서울대병원 김범석 교수님에 이어 내가 현실에서  두번째 낭만닥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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