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후반전을 준비하는 하프타임
돌이켜보면 마흔살을 기점으로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변화의 조짐이 시작됐던 것 같다.
마흔 살이 되던 해 가을로 기억한다. 태어나서 처음 '입맛이 없는'경험을 했다. 평소 많이 먹는 편은 아니지만, 끼니 때가 되면 입맛이 좋은 편이었다. 다른 계절도 아니고 천고마비의 계절에 밥맛이 없으니, 어쩐지
스스로 '내가 아닌 것 같은' 묘한 기분마저 들었다. 밥을 먹기 전과 먹은 다음이 별반 다르지 않았다.
배가 부르지도 고프지도 않은 날이 지속됐다. 그러다보니 어쩐지 전반적인 의욕도 떨어져 갔다.
어딘가 몸이 고장난건가 하는 불길한 예감이 엄습했다. 늘 오르내리던 회사 계단을 오르다가 문득 다리가 후들 거리는 경험도 했다. 현기증이 나는 날도 있었다. 병원에 가볼까 하다 먼저 회사 앞 헬스장을 찾았다.
늘 하는듯 마는듯 했던 '요가'대신 근력운동을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트레이너가 상담중에 한 말이 기억에 남는다.
“회원님은 만일 무리하게 운동하다 다치시면 치료가 아니고 재활을 하셔야 해요."
무슨 의미인지 정확치는 않지만 대략 알것 같았다. 젊으니까 운동같은 거 안해도 건강하겠지 하는 방심을 더이상 해서는 안되는 나이라는 것.
호기롭게 퍼스널 트레이닝(PT)도 신청했다. 금액이 부담됐지만, 아프기 전에 건강관리에 투자하는 셈치고 과감하게 결제했다. 회사 점심시간이나 퇴근 후에 한시간 정도 짬을 내서 근력운동을 배웠다.
땀이 잘 나지 않는 체질이라 겉으로 보이는 변화는 없었지만, 헬스를 시작하니 입맛도 좋아지고 물도 많이 먹게 되고 생기가 도는 것 같았다. 퇴근 후 다시 집으로 출근하던 저질체력의 워킹맘으로 살다가, 나에 대해 금전적인 투자까지 하니 운동하는 시간이 마치 실크로드를 걷는 것처럼 호화롭게 느껴졌다.
운동을 시작하고 계절이 바뀔 때마다 일상복 대신 운동복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운동의 재미를 붙이기 전에 운동복 사는 재미에 빠져버린 것.금세 쇼핑에 빠져버리는 스타일인 나에게는 운동복 소비의 당위성이 커보였다. 그 밖에도 운동가방, 신발, 모자까지 액세서리들도 굴비 엮듯 따라서 사게 됐다.
운동의 세계란 이런 것이구나, 몸에 근육이 있다는 건 이런 것이구나, 이제 호캉스를 가도 피트니스를 이용할 줄 알게 됐다니, 하루하루가 새로운 발견이었다. 운동 도중 사진을 찍어 SNS에 '#N일차' 인증사진을 올리는 것 또한 운동을 지속하게 해준 동력 중 하나인것 같다.
때마침 SNS로 책리뷰를 남기고 있던 나는 운동사진과 짧은 소회를 에세이처럼 기록하기 시작했다.
2019.6.8
반복되는 일상의 위대함
드디어 6개월 간의 PT수업 대장정이 끝났다.
난생처음 운동기구로 하는 근력운동을 배우고
기구를 세팅할 줄 알고 혼자서 운동할 수 있기까지
새롭고 재밌고 성취감을 느끼는 과정이었다.
다이어트 경험도 없다보니, 물리적으로 몸을 움직이며
무언가 생산적인 활동을 할 수 있다는게 아주 신선하게 다가왔다. 생각해보면 고등학교 체육시간 이후에는 몸을 쓰지 않고 살았다.
스무살부터 공부와 취업, 직장과 결혼, 살림과 육아에 이르는 기나긴 마라톤같은 레이스를 달리면서 체력단련은 안중에도 없었다는게 새삼 부끄러운 일로 여겨진다.
이전에 비해 건강해진 몸의 변화도 느껴지니 심리적인 충만감이 들었고, 긍정의 에너지가 선순환하는 것 같았다.
한편으론 고뇌와 번민의 시간이기도 했다. 공교롭게도 지난 6개월 사이 일적으로나 개인적으로 크게 절망한 일들이 있었다.
처음에는 시간이 없어서 운동을 건너뛰고,
다음엔 마음의 여유가 없어 소홀히 하기도 했다. (지금 이런 지경에) 운동은 해서 뭐하나 하는 회의감이 드는 위기도 찾아왔다.
그러다가 터득한 작은 진리가 있다. 취미를 습관화 하고, 매일 반복된 일을 하는 일상의 위대함을 발견한 것이다.
뜻하지 않은 시련으로 일상이 흔들릴 때,
반복되던 일들과 습관을 멈추고,
절망과 패배감에 매몰된다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는 게 더 힘들수 있다.
우리의 삶이 잔잔한 호수처럼 늘 평탄하지만은 않기에,
어느 날은 누군가의 돌팔매에 큰 파동이 일수도 있고,
어느 날은 폭우로 물이 불어나기도 하는 사건과 사고가 있게 마련이다.
타인과의 트러블이나 자신과의 싸움에 골머리를 앓다보면
가장 먼저 자기신뢰가 무너지고 일상이 피폐해진다.
마음이 힘들면 금세 건강이 안좋아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되도록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일을 하는 것, 반복된 일들을 실천하는 일은 예기치 않은 일들로
일상이 무너지지 않도록 견고한 토대가 되어주는 것 같다.
잘 지어진 집은 태풍이 지날 때 무너지더라도 금세 복구할 수 있지만, 기초가 허술한 집은 태풍에 휩쓸렸을 때 처참히 무너지고 회복이 어려운 것과 같은 이치이다.
체력을 단련하는 일과 마음을 수련하는 일이 별개가 아닌 이유와도 같다.
비슷한 시기에 시작한 취미 겸 루틴 중에 하나가 ‘독서’다. 부끄럽지만 학창 시절 나는 책보다는 텔레비전을 가까이 하는 아이였다.
책에서 길을 구하기 시작한 건 육아전쟁을 치르던 때부터인 것 같다. 아이들이 세네살 무렵 한창 보육과 훈육이 동시에 진행 될 즈음이 되면 엄마들은 매일매일이 걱정 투성이다 보니 책으로 마음을 다스리는 경우가 많다.
이 때만 해도 우아하게 앉아 책을 읽는 일상은 상상하기 힘들었다.
첫째가 초등학교 들어갈 무렵, 마흔 한살부터 책읽기 루틴을 만들 수 있었다.
어느덧 독서를 습관화한지 햇수로 4년이 되었지만, 나는 아직 책을 빨리, 많이 읽는 편은 못된다. <이동진 독서법>이라는 책을 읽고 완독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에 부담을 내려놓고 닥치는대로 궁금한 분야나 끌리는 책들을 쌓아놓고 읽기 시작했다.
속도가 는다거나 학식이 엄청 많아지거나 하는 건 아직 모르겠지만, 한가지 변화를 감지한 건 있다. 알고싶은 분야가 생기면 관련 서적을 검색해서 찾아보는 습관, 다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책 속의 어떤 문구나 정의를 가끔 내 상황에 대입해서 떠올리고 에세이에 인용하는 경우가 생긴 정도.
가끔 내가 평소 쓰지 않던 어휘가 뇌리를 스치는 경험도 독서루틴의 효과인 것 같다.
운동 초반에 이영미 작가의 <마녀체력 : 마흔, 여자가 체력을 키워야 할 때>를 읽고 인상깊은 인용구를 발견했다.
근대 후기에 이르기까지 인류의 90퍼센트는 아침마다 구슬같은 땀을 흘리며 땅을 가는 농부였다.
그들의 잉여생산이 소수의 엘리트를 먹여 살렸다. 왕,정부 관료, 병사, 사제, 예술가, 사색가....
역사책에 기록된 것은 모두 이들 엘리트의 이야기다.
"역사란 다른 모든 사람이 땅을 갈고 물을 운반하는 동안 극소수의 사람이 해온 그 무엇이다."
이 구절을 읽는 순간, '와~~'하는 감탄사와 함께 차가운 새벽공기가 뇌리를 스치는 느낌이었다.
40년 넘게 알고 있던 상식을 뒤집는 신선한 관점에 놀랐다. 역사에 기록될만큼 유명한 엘리트들만
주인공인 줄 알았는데, 그들을 먹여살린 건 막상 땅을 갈고 물을 운반한 90%의 노동자들이라니.
이런 책은 꼭 읽어봐야겠다는 마음으로 600페이지짜리 유발하라리의 <사피엔스>를 구매했다.
책을 읽으면서 '책속의 책'을 발견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그러다보면 자연히 다음에 읽을 책이 예정되기도 하는 것이다. 워낙 먹고사니즘이 고민인 1인이다 보니, 문학보다는 비문학 분야에서 시급한 문제들과 관련된 책들을 주로 골라 읽는다. 사춘기가 다가오는 아이들이 있기에 육아 서적과 교육서적, 나와 아이들이 살아가야 할 사회에 관한 사회학 책, 주식과 부동산 등 경제관련된 책(특히 어려운 책들),독서법이나 글쓰기 책, 최근에는 코로나19로 인해 변화하는 트렌드를 다룬 책 등 읽을 책들은 무수히 많다.
글을 쓰다보니 '인생은 60부터'가 아니라 '인생은 40부터'라고 말해도 좋을 정도로 마흔은 나에게 가던길을 잠시 멈추고 체력과 지적 능력을 챙겨야 함을 알아차리게 했다.
때마침 여러가지 사유로 뒤늦게 2년의 육아휴직을 쓰고, 코로나를 겪으며 운동은 전처럼 하지 못하지만 독서습관은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이렇게 마흔 즈음은 나에게 인생 후반전에 돌입하기 전 ‘하프타임'이 된 것 같다. 이제 전투력을 충전하여 다시 뛸 준비를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