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집에서 부모상담 기간이라며 A4용지를 한 장을 주셨다. 커다란 네모 칸이 네 개 반듯하게 위에서 아래로 그어져 있고, 하얗게 비워져 있었다. 분명 지난해에도 똑같이 받아보았는데, 아직도 나는 여기에 무얼 적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사회성 및 정서 발달’, ‘(언어, 인지, 신체) 발달정도’. 이런 단어들을 보고 나는 어떤 글을 적어야 할까. 사회성, 좋다 나쁘다? 발달, 잘 되어있다? 모자라다? 기준은 뭘까? 그렇게 고민하다 보니 내가 아이의 발달 단계에 대해 너무 모르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만 4세는 유아기라고 칭하고 전도추리 및 미성숙적 사고가 보이는…’ 이렇게 답해야 하는 건 아닐 텐데. 그래서 그냥 이렇게 적었다. "첫째가 김밥 살 때 햄을 빼 달라고 말할 수 있게 된 것을 스스로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라고.
올해 초 우리집 두 아이, 재인이와 봄이를 모두 어린이집에 보낼 수 있게 되면서 4년 전 첫 출산 이후 처음으로 진짜배기 자유시간이 생겼다. 비록 가게 재오픈으로 바쁜 시기여서 여유롭게 보내지는 못했지만 아이들 없이 남편과 둘만 가게에 있는 일은 처음이라 그 느낌이 설레면서 어색한 것이 썩 좋았다.
아침 9시 반까지 아이들을 맡기고 3시 반에 데리러 갈 때까지 6시간 동안 나는 열심히 일했다. 1분도 허투루 쓰지 않으려고 애썼다. 선물처럼 생긴 6시간에 4년 동안 마음에 담아뒀던, 하고 싶은 일들을 다 할 기세로 덤벼들었다. 하루 6시간은 짧았고 그렇게 6개월도 금세 지나갔다.
“아이들 다리가 길어졌어요.” 어린이집 선생님은 아이들이 반년 전에 비해 부쩍 컸다며 흐뭇하게 말씀하셨다. 아이들은 어린이집에서 내가 쓰지 않는 말을 배워오기도 하고 낯선 노래를 흥얼거리기도 했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엄마 아빠 맛있는 밥 만들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하고 인사하는 아이를 보며 울컥한 적도 있었다. 이 아이들은 어린이집에서 무엇을 보고 어떤 말을 듣는 걸까 궁금해졌다.
아이들은 자연을 벗 삼아 자라야 한다는 나름 확고한 기준으로 어린이집을 선택했다. 그 전에는 국공립 어린이집에 다녀 비용이 전혀 들지 않았는데, 지금 다니는 곳은 비용이 만만치 않은 데다 집에서 왕복 1시간 20분이나 걸렸다. 그래도 나는 좋았다. 늘 막연하게 아이들이 산으로 들로 나가 놀았으면 했지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몰랐다. 내가 몰라서 줄 수 없는 것을 어린이집에서는 줄 수 있었고 그거면 됐다 생각했다. 아직 어려 어린이집에 가지 못하는 봄이를 안고 먼 거리를 매일같이 왔다 갔다 했다. 그러다 우리는 운이 좋아 어린이집 근처로 이사를 하고 가게도 옮겨왔다.
삶의 터전까지 어린이집 근처로 옮겼지만 어린이집과 나 사이에는 어떤 벽이 있었다. 현관에서 아이를 들여보내고 나는 바로 가게로 출근했다. 가게 일을 하고 시간이 되면 다시 아이들을 데리러 갔다. 그것이 내가 하는 일의 전부였다. 마치 운행차량 기사 같았다.
하루에 아이들이 깨어있는 시간이 13시간 정도라면 반 가까이 되는 6시간의 아이들은 내 기억 속에 없었다. 아이들이 부르는 노래를 같이 부르고 싶은데 모를 때, 재밌는 걸 했다고 계속 말하는데 그게 뭔지 못 알아들을 때, 그럴 때 나는 내 삶과 아이들의 삶이 단절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들이 적응하고 있는 세계를 나는 모르는 것이다. 아이들의 다리가 얼마나 빨리 길어지는지 알고 나니 그 시간이 정말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붙잡고 싶었다. 아이들이 독립하기 전까지 얼마 되지 않는 시간을 서로의 세계를 공유하며 살아가고 싶다.
『어린이라는 세계』를 쓴 김소영 작가는 자신의 삶을 글로 썼는데 온통 어린이 이야기였다고, “어린이를 빼놓고는 나의 세계를 설명할 수 없다.” 고 말했다. 나도 그랬다. 우리집 두 어린이와 함께 하며 나는 세상을 다시 배웠다.
출산 전 내게 어린이란 존재는 어떠한 관점도 태도도 없는, 백지 같은 무관심과 소외의 영역에 있었다. 아주 어린 아기들을 예뻐하긴 했지만 까꿍, 하면 좋아한다는 것 외에는 별 다르게 아는 건 없었다. 띠동갑 동생이 있지만 동생은 그냥 '내 동생'일뿐이었다. 내가 어린이였을 때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어린이란 존재는 무엇인지,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다.
낳고 키우면서 내가 깨달은 것은 어린이는 '내 새끼'나 '애들' 아니라 한 명의 '타인'이라는 사실이다. 오랫동안 내 삶에서 타인은 빈칸이자 물음표였는데, 그건 내가 어린이란 존재에 대해 모르는 것과 분명 관련이 있었다. 어린이 덕분에 나는 타인의 존재에 대해 처음부터 다시, 제대로 배우고 있다.
『어린이라는 세계』는 작가가 운영하는 어린이 독서교실에서 보고 들은 이야기들을 소개하는데, 문득 나도 어린이 독서교실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이유는 내가 책을 좋아한다는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그곳에서 '타인'을 만나기 때문이다. 우리집 어린이가 아닌 다른 어린이들에게서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아직은 내가 잘 모르는 그들의 세계는 두려운 미지의 영역이자 매력적인 배움의 보물창고이다.
사람들은 어린이에게 뭔가를 배우려는 생각은 하지 못하는 것 같다. 단지 그들을 가르쳐야 하는 대상, 부족하고 미성숙하며 성가시고 부담스러운 존재로 본다. 김소영 작가는 “어린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사회라면 더 많은 사람들이 어린이 이야기를 해야 한다.”며 자신이 어린이 전문가가 아니지만 어린이에 대한 글을 쓴 것처럼 나도 어린이 이야기를 할 수 있고, 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나는 기꺼이 하고 싶다.
그런데 독서교실을 하려면 공부도 해야 하고 애들도 좀 키워놔야 될 것 같은데, 대충 세어봐도 4-5년은 걸릴 것 같다. 그럼 어째, 지금은 포기하고 눈 돌릴까, 하던 차에 불현듯 깨달았다.
어린이집에는 어린이가 많다.
어린이집에는 ‘산들맘’이라는 제도가 있는데, ‘산, 들, 마음’의 줄임말이다. 부모든 형제든 심지어 조부모나 친척도 할 수 있으며, 산과 들로 나들이를 가고 점심을 함께 먹으며 아이들이 어린이집에서 어떻게 생활하는지 볼 수 있다. 거기 더해 참가자 자신도 아이들의 시선과 마음으로 자연과 연결됨을 느낄 수 있다. 나는 이 좋은 제도를 써보기로 했다.
나 혼자 아이들을 데리고 매일 산으로 나가는 건 어렵지만 노련한 선생님들이 계시고 나는 거기 꼽사리 끼기만 하면 된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 나도 꼽사리에서 선생님의 보조 정도는 될 수 있을 것이니, 그럴 때 그 형태가 공동육아와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어린이집과 나 사이의 벽은 사라지고, 나의 삶과 아이들의 삶이 조화롭게 잘 섞이리라 기대한다.
내 삶에 아이들을 더 적극적으로 껴안기로 했다. 아이들은 언제나 내게 깨달음을 주었고 나를 더 정진하게 만들었다. 어린이를 빼놓고 내 삶을 설명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럴 거면 어중간하게 안지 말고 꽉 껴안아보기로 했다. 그로 인해 어떤 어려움이 생길 것이며 그것을 어떻게 헤쳐나갈는지가 관전 포인트다. 앞으로 어린이라는 세계를 통해서 타인과 함께 살아가는 세상의 이야기를 해 볼 생각이다.
아침을 먹고 어린이집에 가기 전 바닥에 앉아 나누미(밥 한 끼 먹을 때마다 쌀 한 숟가락을 모아 기부하는 어린이집 활동)를 한다. 봄이는 어른 숟가락으로 쌀을 그득 퍼 올려 이리 휘청 저리 휘청. 나는 숟가락에서 쌀이 쏟아질까 조마조마해하며 그것만 바라보고 있는데, 그런 엄마는 안중에도 없는 봄이는 숟가락을 더 높이 쳐올리며 느긋하게 무어라 말한다.
“빨리.. 어린이집에 가고 싶은.. 마음을 담겠습니다.”
숟가락에서 통으로 쌀알이 차르르 떨어진다. 나는 통 밖으로 떨어진 쌀알을 주워 담으며 한 톨 한 톨에 감사한 마음을 담는다.
그래 얼른 가보자. 빨리 가고 싶은 그 마음이 무엇인지 엄마도 궁금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