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의 주문
한창 마음이 뒤숭숭할 때는 길을 걷다가도 문득, 밥을 먹다가도 문득 생각났다. 하루 종일, 생각을 멈출 수가 없었다. 사랑에 빠진 거라면 그보다 더 아름다운 일이 있을까 싶지만, 그건 아니라 나는 화에 갇혀 있었다.
사랑에 빠진 우리가 사랑하는 상대와 함께 하는 장면들을 상상하는 것처럼, 화가 나도 똑같이 상상한다. 상대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그 의도를 상상하고,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일 거라는 나름의 심리분석까지 한다. 상사병은 나를 사랑해주지 않아서 가슴을 치는 것이고, 화병은 그 사람만 생각하면 억울해서 가슴을 치는 것이니 짝사랑과 화는 어쩌면 그 알맹이만 다를 뿐 메커니즘은 같지 않을까 하는 우스운 생각마저 든다.
명상가 마이클 싱어는 화의 '지껄임'을 한발 물러서 바라보라고 했다. 그 지껄임이 자신이 아님을 인식하라고 했다. 화난 누군가가 내 마음속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지껄일 때, 나는 한 발 물러서 그것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러자 화는 '내'가 아니라 '손님'이 되었다. 그 손님은 잠시 내 마음속에 머물다 자신의 할 얘기가 끝나면 조용히 사라졌다.
나는 이 화라는 손님이 반갑지 않았다. 연락도 없이 찾아오는 데다 매번 내 거실을 내주고 내 시간을 방해받은 채, 그의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기다리는 것도 지루해졌다. 만날 때마다 부정적인 이야기를 하는 사람과는 계속 만나고 싶지 않다(그것도 매번 같은 이야기로!). 다음에 또 찾아오면 면전에서 문을 닫아 버려야지 마음먹었다. 그런데 어떻게? 나는 9편의 글을 쓰며 자연스럽게 그 방법을 터득했다. 그 방법을 여기서 공유하겠다.
화가 문 앞에 올 때까지 기다릴 필요도 없다. 저 멀리서 모습을 드러낼 때 (이때 내가 화를 느끼는 대상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나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마음속으로 두 손을 모으고 이렇게 속삭인다.
“당신이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마음속 기도를 마치고 눈을 뜨면 신기하게도 화는 어느새 사라지고 없다.
그렇다고 아예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몸에 난 상처가 어느 한순간에 낫지 않고 또 낫는 동안에도 때때로 간지러워 긁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나. 문득 떠오르면 그때마다 그의 행복을 빈다.
단, 이 마법 같은 주문이 성공하려면 반드시 진심으로 해야 한다.
공동체실험 보고서를 마무리하며
위의 글까지 모두 10편의 보고서를 쓰며 내 인생은 극적으로 달라졌다. 글을 써서 삶이 바뀔 수 있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글을 써야 한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내 글은 자기 성찰을 위한 글이다. 적다 보니 욕심이 생겨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글을 적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는데 지금은 내 능력 밖의 일인 것 같아 마음을 내려놓았다. 내면의 감정들을 들여다보고 정리하는 일에 집중했다.
영성이라는 가치로 본 공동체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고, 나의 영적 성장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그것이 내 우선과제였기 때문이다. 이제 한 단락을 마무리했으니 또 다른 시각으로 공동체를 바라보는 공부도 해보려고 한다.
내가 달라졌다는 말이 훌륭한 사람이 됐다는 의미는 전혀 아니다. 또다시 갈등이 일어났을 때도 내가 깨달은 것을 100퍼센트 다 활용할 수 있을지도 잘 모르겠다. 그저 좀 더 나은 사람이 되었고 나 자신과 주변 상황에 만족하는 사람이 되었을 뿐이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오만하다. 내가 더 이상 오만하지 않게 된다면 이 글들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글은 존재하고, 나는 여전히 오만하고 그래서 글을 쓴다. 그러니 나는 아직 멀었다.
나는 행복한 사람이 되어 행복에 취해 몇 날 며칠을 감격 속에서 살았다. 그러다 다음에 내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고민했다. 여전히 내 주변에는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이 있을 텐데 그 고통을 외면한 채 나만 행복한 것이 의미가 있을까. 일단 나부터 행복해야겠지만 거기서 멈추어서는 안 될 것이다.
모든 사람을 위해 기도한다.
내가 미워했던 사람을 위해, 나를 미워하는 사람을 위해,
내게 상처 받은 사람을 위해, 내게 상처를 준 사람을 위해
나는 오늘 모두를 위해서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