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두 어린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게 되면 나는 식당을 해보고 싶었다. 아직 실력이 부족해 바로는 아니고 경험이 쌓이면 언젠가는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며, 그전까지 어떤 식으로든 음식 만드는 일을 해야지 생각했다.
어디서 제대로 음식을 배운 적도 없고 맛집 탐방을 좋아하지도 않지만, 나는 '요리'를 하고 싶다. 느림의 삶에는 언제나 소박하지만 맛있는 음식이 있다. 유기농 제철 채소로 만든 음식, 마르쉐와 수카라가 나의 롤모델이고, 언제나 채소와 발효음식에 마음이 끌린다. 그런 음식들을 만들어내는 '요리'는 살아가는 방식의 표현이자 운동이며, 사람들과 함께 하는 자리를 풍성하고 든든하게 해주는 힘이 있다. <카모메 식당>이나 <해피해피 브레드> 같은 따뜻함도 좋고, <리틀 포레스트>의 농사 이야기도 좋다. <줄리 앤 줄리아>를 보면서는 나도 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얻으며, 나는 조금씩 내 요리를 내는 작은 식당에 대한 로망을 몽글몽글 키워왔다.
우리집 두 어린이가 나란히 어린이집 문으로 걸어 들어갔다. 때마침 빵집은 정비 후 재오픈을 앞두고 있었다. 나는 가볍게 델리(미리 만들어두고 판매하는 간단한 음식)를 만들어보기로 했다. 간단하게 두 가지, 당근라페와 인도식 커리로 시작했다. 로컬푸드에서 장을 보고 식재료를 손질했다. 향신료에 토마토와 양파를 인내심 있게 볶고 뭉근하게 끓여서 만든 커리에 상큼한 레몬향이 더해진 당근라페를 곁들이면 빵이든 밥이든 술술 넘어갔다. 쇼케이스 냉장고에 진열된 두 요리를 보고 있으면 가슴이 벅차올랐다. 이걸 누가 사 먹기는 할까? 궁금하기도 하고 내가 만든 음식이 판매된다는 게 꿈만 같았다. 오픈 첫 주에 많은 분들이 오셔서 축하해주셨다. 하루 이틀, 냉장고 속 음식들이 빠르게 줄어갔다. 빵에 커리와 라페를 곁들여 손님들을 대접하니 빵만 달랑 내 드릴 때보다 마음이 든든했다. 그렇게 델리의 신고식을 성황리에 마쳤으나 나는 고민 끝에 델리를 잠시 중단하기로 했다.
많은 양의 음식을 매일 하는 것은 힘이 드는 노동이었다. 요리책을 보고 우리 가족이 먹을 정도의 양을 만들 때 이것은 내게 ‘취미’였다. 하지만 가격을 책정하고 담아갈 용기를 구입하고 많은 양의 음식을 만들어야 할 때 이것은 내게 ‘노동’이 되었다. 당근을 채칼로 썰어내는 일은 생각보다 고되다. 손이 베이기도 하고 손목에 힘이 들어가 무리가 되기도 한다. 1개를 썰 때는 손목 한번 털어내면 뻐근함이 가시는데, 10개를 썰어내고 나면 손아귀에 힘이 안 들어간다. 거기다 아직 일이 익숙하지 않아 시간이 생각보다 많이 걸리고 허둥대는 일도 많았다.
내가 본 영화 속 장면과 너무 달랐다. 영화 속에서는 대게 지난한 준비 장면은 나오지 않고 다 준비된 음식을 사람들에게 내주고 맛있게 먹으며 교감하는 장면이 아름답게 그려진다. 나는 그 마지막 장면을 상상하며 요리를 시작했는데, 가려진 노동은 내가 미처 몰랐던 것이다.
나는 노동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다. 특히 육체노동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아예 안 하는 건 아니고 확고한 목표가 있어야 한다. 예전에 한겨울에 가을이 배경인 영화를 촬영한 적이 있다. 폭설이 내렸는데 장면에는 눈이 나오면 안 되니 나는 영화를 찍어야 한다는 목표 하나로 추운 겨울 새벽부터 몇 시간씩 삽질을 했다. 장갑과 신발이 눈에 젖어 살을 에는 고통을 느끼면서도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런 내가, 밥 안치고 국 끓이기 귀찮아서 근처 김밥집에 가서 김밥을 사 온다. 눈 치우는 것에 비하면 밥하는 건 사실 별 것 아닌데… 내가 ‘밥하기’ 그리고 '델리'를 대하는 태도는 무엇일까.
그 둘의 공통점은 눈에 보이는 선명한 목표가 없다는 것이다. 델리를 하는 이유 중 하나는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인데, 나는 돈 욕심이 없는 사람이라 돈은 매력적인 이유가 아니다. 다른 이유는 요리를 통해 자기표현을 할 수 있다는 것, 하지만 요리를 제공받은 사람이 계산을 하고 바로 자리를 떠남으로써 소통이 아닌 나의 일방적인 표현으로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기대했던 만큼의 기쁨이 느껴지지 않았다.
밥하기도 마찬가지다. 밥하기는 무급노동이다. 거기다 우리집 사람들은 먹으면서 맛있다고 얘기도 잘 안 한다. 그저 묵묵히 먹어주면 그게 맛있는 거구나 하지만 피곤한 몸과 귀찮음을 이길 만큼의 동기부여는 안된다. 집에서 좋은 식재료로 직접 해 먹는 밥이 건강에 제일 좋다는 걸 알지만 딱 그 정도였다. 그것이 나의 한계였다.
델리를 그만둔 것도, 밥 하기가 귀찮은 것도 결국 같은 맥락이다. 힘들여서 하는 만큼 보상이 주어지지 않는다는 논리.
나는 나를 수행자라고 생각한다. 절에 들어가지 않고, 수도원에 들어가지 않았지만 나는 수행자다. 내면의 깨달음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그것을 얻을 수 있는 일이 아니면 시작도 하지 않거나 하더라도 금세 그만두었다. '내면의 성장'이 나의 '선명한 목표'이자 '보상'이다.
나는 델리를 계속하고 싶다 생각했고, 밥하기는 피할 수 없는 일이다. 답을 찾고 싶었다. 나는 왜 '델리와 밥하기'에 소홀할까?, 나에게 질문했다.
'델리와 밥하기'에서 나는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선불교에는 ‘반농반선’이라는 말이 있다,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는다고 말한다. 스님이라고 하루 종일 수행만 하지 않는다는 거다. 영화 <Eat Pray Love>에도 주인공이 찾아간 인도의 한 수행원에서 바닥청소를 하는 모습이 나온다. 이곳에서 청소는 수행자의 의무이다.
그러고 보면 지금까지 나는 반쪽자리 수행자였던 셈이다. 의무는 거부한 채 내가 보고 싶은 대로, 하고 싶은 대로만 했다. 균형을 잃고 공부에만 몰두하고, 깨달음에 집착했다. 책 읽고 글 쓰는데 온 시간을 할애하면서 정신을 중요하게 생각했지만 몸은 방치했고, 노동도 등한시했다. 설거지와 청소는 뒷전이라 집은 언제나 엉망이고 밥은 사 먹거나 대충 때우는 날이 많았다.
그래서 육체는 소홀히 했더라도 정신은 온전하냐, 그렇게 말할 수 없었다. 두 달 정도 글쓰기에만 몰입하자 온 몸이 고장 났다. 난생처음으로 감기가 이 주 동안 지속됐으며 두 달 가까이 코가 막혀있는 비염 증세를 보였다. 반면 몸을 움직인 날에는 코가 뚫렸고 책의 내용도 더 잘 이해했으며 긍정적인 생각들이 솟아났다. 결국 몸과 마음은 연결되어 있었다.
나는 육체적 노동이 시간낭비라고 생각했다. 땅 밑에 보물이 파묻혀 있다는 걸 알면 최대한 빨리 그걸 파내고 싶었다. 그런데 어딨는지 잘 모르니까 여기 파다가 없는 것 같으면 포기하고 재빨리 다른 곳을 팠다. 보물이라는 목표, 보상을 얻기 위해 최대한 효율적으로 움직인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는 어쩌다 얕게 묻힌 보물 한 두 개를 발견할 뿐이었다.
구속 없이 너무도 자유롭게 내가 살고 싶은 대로 살았다. 포기하고 싶을 때 포기해도 잃는 것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다. 남편이 있고 아이들이 있고 나와 연결된 많은 사람들이 있다. 포기하면 잃는 것이 생겼다. 이것은 내게 큰 변화였다. 포기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살다가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을 사랑하게 되면서, 그들의 존재는 나의 한계를 넘어서게 만들었다.
이를 악물고 해 나갔다. 전에 라면 포기했을 상황에서 이제는 계속해나갈 이유와 방법들을 찾았다. 분명 예전이라면 내면의 성장을 하는데 효율적이지 않다고 생각했을 노동들이 지금은 깨달음에 도달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 되었다. 그리고 그 자체로 하나의 수련이 되었다. 똑같은 행위를 반복한다. 당근을 썰며, 가만히 당근에, 써는 행위에 집중한다. 머리가 맑아지고 잡념이 사라진다. 바쁘다며 명상할 시간도 못 냈던 내게 그 시간은 명상의 시간이 된다. "바닥에 흘렸을 때 바로 닦았으면 이렇게 안 힘들 텐데.", "빨리 설거지하고 다른 일도 해야 하는데." 생각하는 대신 걸레가 지나간 자리가 깨끗해지는 것을 가만히 보고, 비누칠한 그릇이 뽀득뽀득 해지는 그 느낌에 집중한다. 그렇게 나는 깨닫는다. 보물을 찾기 위해 하는 노동 자체가 보물의 한 형태라는 것을 말이다.
절에서 공양간의 역할이 아주 중요하듯이 수행을 하면서 영혼을 탁하게 하는 음식을 먹는 것은 안된다. 나는 밥에 정성을 쏟을 때는 부지런히 한살림에 가서 장을 보고 아는 농부님께 농산물을 얻어먹는다. 하지만 공부하느라 바빠 밥하기를 소홀히 하면 어디서 어떻게 만들어진지도 모르는, 영혼을 탁하게 하는 음식을 먹게 된다. 밥 하는 시간 아껴 그 시간에 글 한 자 더 보자는 마음인데, 그렇게 해서 제대로 공부한다 말할 수 있을까.
거기다 우리는 하루에 많게는 세끼까지 온 가족이 모여 먹는데, 어떤 음식을 어떻게 먹느냐는 삶에서 아주 중요한 행위이자 의식이다. 내가 만드는 음식은 우리 가족의 세계관을 단단하게 만들어나갔다. 감사의 기도를 하고 서로 음식을 챙겨주고 부족하면 나눠준다. 그날 하루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하고 아이가 새로 배워온 말을 듣는 시간이다. 달큰한 가을무로 만든 무생채에 기껏 고춧가루를 빼고 어린이용으로 따로 만들어줬더니, 우리집 어린이들은 고춧가루 잔뜩 묻은 어른용을 물에다 씻어먹는다. 그 모습을 보며 너털웃음 짓는 시간이다. 웃고 대화하고 배를 채우며 우리는 서로와 함께 한다. 이 소중한 시간들을 대충 먹으며 대충 보내고 싶지는 않다.
결국 밥하기도, 일하기도 수행인 것이다.
밥을 하고 밥을 먹는다는 단순한 일상의 행위를 하나의 수행이라고 보자 그것들에 대한 태도가 달라졌다. 단순히 질 좋은 재료로 요리해 건강하게 먹는다는 '육체적 건강'만을 생각하던 한계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정신적 건강', '영혼의 건강'까지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다른 일을 끝내 놓고 남은 시간에 쫓기듯 밥하지 않아야겠다. 쌀을 물에 담가 휘저을 때도 숨을 고르고 감사한 마음, 맛있어지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야겠다. 거대한 보물을 기대하며 조급하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대신 삽질 한 번이라도 온 숨을 담아 해내겠다. 그것이 결국 매 순간을 보물처럼 살아내는 방법이자 결국 보물을 얻어내는 가장 빠른 길일 것이다.
육체노동이 정신적인 삶을
가로막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사실은 정반대이다.
육체노동을 할 때만이
지적이고 영적인 삶이 가능하다.
- 레프 톨스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