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을 위한 슾 프로젝트
식당을 열고 싶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요리학교를 졸업하거나, 도제 방식으로 일하거나, 혹은 오랜 세월 해온 집밥 실력을 가지고 있어야 할 것이다. 나는 여기 어디에도 해당되지 않는다. 나는 요리책 수집광이며 인터넷으로 요리 클래스 듣는 것을 좋아하는 적극적인 요리 취미반이다.
5년 전만 해도 라면 물도 못 맞추던 나였는데, 결혼하고 요리를 하다 보니 이제 된장국은 간이 맞고 파스타는 척척 만다. 여하튼 그 정도. 좋아하는 요리사들이 있고 요리에 대한 나름의 개똥철학도 있다. 허나 비틀즈를 좋아한다고 해서 내가 비틀즈처럼 노래하는 건 아닌 것처럼, 요리는 연습이 필요하다.
지방에는 요리수업을 찾기가 힘들다. 서울에 있을 때는 사는 게 바빠 요리수업은 엄두도 못 냈는데 지방에 오니 기회조차 없다. 무리해서 근처 대도시나 서울까지 수업을 들으러 가볼까 고민했다. 하지만 집에 어린이들이 두 명이나 있어 멀리 가거나 큰돈을 쓰는 일이 내겐 부담스러웠다.
그럼 이대로 포기할 것인가. 전혀 아니다. 평탄한 길이 없으면 조금 둘러가고 험하더라도 다른 길로 가자. 나는 요리책을 읽고 독학으로 요리사가 되겠다 다짐했다.
카모메식당, 달팽이식당 같은 일본 영화들을 보며 '식당'에 대한 꿈을 키웠다. 화려한 음식과 주인공의 서사에 초점에 맞춰져 있는 미국 영화들과 달리 일본의 식당영화에는 사람과 사람의 이야기가 있다. 나오는 메뉴라고는 주먹밥이나 카레, 얼음 빙수처럼 수수한 음식들이 전부다.
<카모메 식당>에서 커피를 내리며 “코피루왁”이라는 주문을 외우는 장면을 이제야 이해하게 되었다. 그러자 내가 바라는 식당이 어떤 것인지 좀 더 선명해졌다. 채소를 데칠 때 소금을 넣는 이유가 삼투압에 의해 채소 속에 영양분이 밖으로 빠져나오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말도 좋지만, 영화 <앙>에서 처럼 삶은 팥에다 설탕을 뿌려주고 잠시 뚜껑을 덮은 뒤 ‘팥과 설탕이 만나 친해지는 시간’을 준다는 말은 언제나 내 영혼을 울린다.
책 『당신의 보통에 맞추어드립니다』에서 주인 고바야시 세카이는 '누구라도 받아들이고 누구에게나 어울리는 장소'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며 메뉴에는 없지만 손님이 원하는 음식이 있다면 냉장고에 있는 재료로 뚝딱 만들어 주기도 한다. 나도 그렇게 하고 싶다. 사람에게 맞추어서. 슬플 때는 달짝지근하게, 화날 때는 칼칼하게, 평화가 필요하면 슴슴하게 그렇게 한 명 한 명과 만나고 싶다.
식당을 연다는 것이 말처럼 절대 쉽지 않다는 것쯤은 잘 안다. 어쩌면 그래서 영화고 그래서 로망인 걸지도. 식당을 꼭 차려야 하나? 집에서 가족끼리 먹으면 되지, 아님 친구들을 초대해 대접하는 걸로 만족하면 힘들 일도 없을 텐데 싶다.
나는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하고 싶다.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먹거리를 소개해주고 싶다. 입에만 맛있는 음식이 아니라 영혼이 따뜻해지는 음식을 대접하고 싶다. 누군가의 생일에는 케이크를 구워내고, 일부러 멀리 나가서 사 먹지 않아도 이웃이 먹고 싶은 음식을 만들어주고, 마을 사람들과 종종 국밥 한 사발에 올린 김치 한 점으로 잔치를 벌이고 싶다.
그래서 나의 요리책에는 레시피책 뿐만 아니라 『소박한 밥상』 『로컬의 미래』 『우린 다르게 살기로 했다』 같은 ‘어떻게 먹을 것인가’ 나아가 ‘어떻게 살 것인가’에 관한 책도 포함된다.
요리는 다양하게 시도해볼 예정이다. 홍대 수카라, 요나님, 달키친님의 요리를 좋아하고 캐주얼 일식에 대한 로망이 있다. 한식은 언제나 좋고, 이탈리안 레스토랑 엘불리의 스탭밀을 소개해 놓은 『패밀리밀』(이름이 마음에 든다)이라는 책에는 대용량 레시피도 있다. 생강님의 『이렇게 맛있고 멋진 채식이라면』 시리즈도 좋아한다. 또 마크로비오틱 요리도 해보고 싶다.
팜투테이블 식당을 하고 싶다. 제철에 농장에서 수확하는 채소가 주인공이고 가끔 고기도 조연 혹은 카메오로 등장하는 식당. 처음부터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고집하지 않고 일단 사람들과 함께 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싶다. 그리고 천천히 함께 좋은 방향으로 변화해나가면 좋겠다. 고기가 들어가지 않은 미역국도 좋지만 경상도 음식인 소고깃국(소고기와 무, 콩나물을 잔뜩 넣어 만든 국)은 지역 사람들의 소울푸드 같은 음식이고, 그런 음식이 하는 역할이 있다고 생각한다.
한살림과 로컬의 식재료들로 음식을 만들고 싶다. 동네 어르신들의 텃밭 작물을 구입해 요리에 사용하고 싶다. 얼마 전에 앞집 대현댁 할머니 참마를 가게에 두고 팔아드렸는데 아주 좋아하셔서 나도 기뻤다.
언젠가는 마을에서 농장을 운영하는 꿈을 가지고 있다. 마을 사람들과 함께 유기농 농사를 짓고 농작물을 식당에서 모두 사들여 음식으로 가공해 판매하는 선순환을 만들고 싶다.
또, 식당에서 일하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마을의 어르신들의 소일거리가 많아지면 좋겠고, 다른 삶을 살아보고 싶어 시골로 들어오는 사람들, 퇴직하고 노후 걱정하시는 부모님 세대와 함께 일하는 일터가 되면 좋겠다. 작은 마을에서 로컬의 미래를 그려본다.
자, 그럼 어떻게 실현시킬 것인가 고민해보자. 한 달에 한 권, 이달의 요리책을 선정해 그 안에서 레시피들을 뽑아 연습한다. 연습은 반복이 중요하다. 분명 해본 음식인데 잘 기억이 안 나는 것은 한 번밖에 안 해서 내 것이 되지 않은 것이다.
하루에 점심, 저녁 두 끼를 요리할 수 있다 하면 일주일에 14끼이다. 7개의 레시피를 선정해 2번씩 반복하자. 한 달로 보면 한 음식을 총 8번 반복하는 셈이다.
독학으로 하는 요리 공부의 가장 어려운 점은 강제성이 없다는 것이다. 그럴 때는 최대한 주변에 많이 말해야 한다. 그래서 사람들이 나만 보면 “오늘은 뭐 만들었어?”라고 묻게 만드는 것이다. 그럼 부끄러워서라도 계속하게 될 테니 강제성 못지않게 계속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3개월의 독학 프로젝트가 끝나면 식당을 열기 전에 도시락 프로젝트도 해보려고 한다. 식당에서 내고 싶은 음식들을 도시락으로 예약받아 배달해준다. 좋은 재료로 영혼을 따뜻하게 만들어주는 한 끼 식사가 필요하신 분들에게 배달해 드릴 생각이다.
내 모든 마음들을 모아 이번 프로젝트의 이름은 '영혼을 위한 슾(Soup for the soul)'이라고 이름 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