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림보상점 시즌2를 종료하고 영감과 나는 새로운 공간을 찾기로 했다. 후보지를 물색하고 목록을 만들었다. 집 근처에 방치되어 있는 마을회관은 어떤지 이장님과 이야기 했다. 이미 누군가 임대를 하고 있어서 물어봐주시겠다는 이장님의 전화를 기다리며 새로운 공간에 대한 꿈을 부풀리고 있었다. 다른 후보로는 그동안 환경운동모임을 함께 해왔던 선생님의 공방도 물망에 올랐다. 하지만 집과 거리가 멀다고 여겨 진지하게 고려하지 않았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차로 15분 거리면 그렇게 먼 것도 아니었다. 산내(시즌1)에 있을 때도 출근에 15분이 걸렸었다. 다만 차가 1대뿐이니 영감이 출근하고 나면 나는 움직이기가 힘들다는 점이 걸렸지만 그 문제도 C가 카풀을 제안하면서 일단락되었다.
2층이라는 점은 문제가 되지 않았고, 아래층에 내가 애정하는 책방 친구들이 있었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그래도 나는 계속 고민했다. 그 이유는 선생님께서 운영하시던 제로웨이스트 가게를 내가 인수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아무도 강요하지는 않았지만 상황이 그리 되었다. 내가 인수하지 않으면 다른 인수자를 찾을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데, 그럼 일이 복잡해진다.
하지만 나는 선뜻 내가 인수하겠다고 말할 수가 없었다. 제로웨이스트 물품을 판매하는 것은 시즌1에서도 했던 일이고, 단순한 판매는 전혀 어려울 게 없다. 하지만 선생님의 가게는 물건만 파는 곳이 아니다. 동네 카페를 다니며 우유팩을 수거하고 아이스팩과 유리병, 정수기 필터 등을 받아 각 처리장으로 보내는 자원순환 센터이자, 거리의 쓰레기를 줍고, 사람들에게 함께 하자며 메시지를 보내고, 무엇보다도 내가 먼저 그 삶을 살아낼 수 있어야 한다. ‘내가 할 수 있을까?’ 생각하면 덜컥 겁이 났고, 부담이 되었다. 제로웨이스트가 지금 우리 사회에서 추구해야 할 최우선 과제라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내게는 ‘여유가 없었다'.
아이 둘을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가게에 나가 일을 하고 밖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아이들을 데리고 집에 돌아오면 밀린 설거지를 하고 세탁기를 돌리고 저녁을 만들고 아이들을 씻긴다. 두 아이의 옷에서 떨어진 모래로 버석거리는 바닥을 닦는다. 걸레로 온 집안을 닦고 일어서면 나를 기다리는 것은 바로 쓰레기들이다. 분리수거되길 기다리는 쓰레기. 바닥에는 올리브오일, 참기름 등 씻지 못해 내놓지 못하고 있는 기름병 5개가 몇 주 째 내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할 여력이 없으니 집 한켠에 조금씩 조금씩 쌓여간다. 이런 내가 제로웨이스트 가게를 운영할 수 있을까, 자신이 없었다.
느림보상점만 해도 빵을 만드는데 쓰레기가 나온다. 물론 일반 식당에 비하면 적은 양이고,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언제나 고민하지만 ‘제로’는 너무 멀기에 ‘로우웨이스트’라고 표방한다. 그런 내가 제로웨이스트 가게를 운영할 자격이 있을까? 이건 오만이고, 그린워싱이야. 내 안의 내가 소리쳤다.
그때 느림보상점의 상징인 벌새가 떠올랐다.
그 작은 벌새는 숲에 큰 불이 났을 때 부리에 물을 담아 열심히 퍼 나른다. 그 양은 양동이보다도 소소하고 커피 컵보다도 작은 비루한 양이다. 그래도 벌새는 꿋꿋이 물을 퍼 나른다. 양동이만큼 나르겠다는 꿈도 꾸지 않고 양동이만큼 못 할 바에는 안 하는 게 낫지,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저 자기가 할 수 있는 만큼의 일을 한다.
그래, 나도 그렇게 하면 되지 않을까, 벌새처럼…. 부족한 대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내가 내뱉은 ‘여유가 없다’라는 말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사람들은 종종 자신이 져야 할 책임을 외면하고 싶을 때 ‘여유가 없다’라는 말을 가져다 쓴다. 그럴 때는 관심이 없다고 하는 게 솔직할 것이다. ‘방법을 모르는 낯선 일을 시간을 들여 하고 싶지 않다’, ‘남들이 중요하다고 말하니까 그런가 보다 하는데 나는 잘 모르겠다’ 정도일까.
하지만 쓰레기문제, 환경문제는 외면해서는 안된다. 기업과 개인은 만든 쓰레기를 책임져야 한다. 내 집에 있는 기름병 5개도 외면하는데, 하물며 어딘가에 쌓여있는 쓰레기산은 눈에 보이지도 않아 모른 척하기 쉽다. 그것들을 보려고 노력해야 한다. '여유가 없으면' 만들어야 한다.
제로 웨이스트 가게를 인수하는 일은 내 책임을 다하겠다는 의지이다. 지구의 문제를 내 삶의 우선순위 상위로 끌어올리는 것이다. 내가 환경문제를 마주할 여유를 일부러 만들어 그 책임을 다하는 일이다. 다른 변명의 여지를 없애는 일이다. 일과 삶의 균형을 잡는 일이 중요한 것처럼, 일과 삶과 제로웨이스트의 균형을 잡으며 살아보려 한다.
일 - 삶 - 제로웨이스트 균형 잡기
1. 비닐포장
느림보상점에서는 비닐포장을 최소화하고 있다. 식사빵 중에 유일하게 비닐 포장되는 제품이 하나 있는데, 식빵이다. 식빵은 얇고 부드러워 썰어 놓으면 빨리 말라버린다. 안 썰고 통으로 가져가시는 분도 계시지만 대부분 썰어서 가져가시는데, 집에서 칼로 썰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개인용기를 가져오시면 제일 좋지만 안되면 일단 종이봉투에 넣어 가셔서 재사용하는 다회용 지퍼백이나 밀폐용기에 넣는 대안도 있다. 하지만 이때, 여전히 종이봉투가 쓰인다는 점에서 완벽하진 않지만 당연하게 비닐을 내어주는 것에서 변화를 줄 수는 있지 않을까.
2. 자전거 이용
집과 가게의 거리가 멀어졌다. 자동차를 한 대 더 사야 하나 했는데, 일단 자전거로 출근해보기로 했다. 체력 부족으로 운동을 고민하던 차였기에 잘 됐다 싶었다.
자동차로 15분 거리인데 자전거로는 얼마나 걸릴까. 타본 지 오래돼서 40분은 잡아야 할까. 그렇게 오래 타면 땀범벅이 되지 않을까. 가게에 화장실이 꽤 넓다. 샤워실을 만들어서 사용하면 되지 않을까. 링컨이 그랬다. “먼저 ‘할 수 있다. 잘 될 것이다’라고 결심하라. 그러고 나서 방법을 찾아라.”
아, 일단 겨울이 갈 때까지는 C가 차를 태워준다고 했다.
잘 모르는 일을 처음 시작하는 일은 쉽지 않지만 가슴 설렌다. 작년에 시즌2 공동체실험을 시작했을 때도 나는 공동체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없었다. 그냥 사람들이 좋았고 같이 사는 게 좋겠다는 큰 방향만 있었을 뿐, 아무런 경험도 지식도 없었다. 그래도 하니까 되더라. ‘된다’는 것이 어떤 번듯한 결과가 있는 것이 아니라, 한발 한발 부딪히고 배우는 힘겨운 여정이긴 해도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고, 결국에는 내가 살고자 하는 삶에 가까이 다가가게 된다는 말이다. 제로웨이스트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생각한다.
매 순간 질문하자. ‘어떻게 나와 너와 지구가 함께 살아갈까?’ 지구에서 모두와 공존해야 한다는 진실을 가슴에 품고 있다면 결국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배우며, 나만의 길을 찾아갈 것이다. 도움을 받을 친구도 있다. 그러니 걱정하지 말고 맘껏 지구를 사랑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