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림보상점은 우리밀을 사용한다. 우리밀로는 빵 만들기가 어렵고 가격도 비싸 빵집에서 잘 사용하지 않는데, 우리는 우리밀의 가치를 알기에 그것을 고집하였다. 그리고 그 고집을 많은 분들이 좋아해 주셨다.
한날은 가만히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는데, 맛있게 구워진 빵 사진을 보았다. 우리밀 빵이라고 했다. 가까이 경주 시내에 새로 생긴 가게였다.
나는 그때부터 심장박동이 빨라짐을 느꼈다. 나도 모르게 입술을 꽉 깨물고 핸드폰 위로 손가락을 바쁘게 움직이며 그 가게에 대한 정보를 찾아 나섰다.
우리 가게 근처에 대기업 베이커리가 두 군데나 들어왔을 때도 나는 크게 반응하지 않았다. 거기는 우리랑 결이 다르다며 걱정 말라고 오히려 남편을 위로했던 나인데. 우리밀을 사용한다니 사정이 달랐다. 행여 장사에 나쁜 영향을 주지 않을까 상상하니 덜컥 겁이 났다.
최근 새로운 매장에서 시즌 2를 시작하며 감당해야 할 비용이 이전보다 10배나 더 오른 상황이었다. 나와 남편은 전과 같지 않게 매출에 부쩍 많은 신경을 쓰고 있었다. 그래서였나. 두려움이 더욱 날카롭게 나를 파고들었다.
'가까이 우리밀 빵집이 생겨도 사람들은 느림보를 찾아올까?' 궁금해졌다.
새로 생긴 빵집은 시내라서 외곽에 있는 우리보다 가깝고 거기다 빵 가짓수도 많다. 또 요즘 유행으로 SNS에 올릴 만한 인테리어까지. 우리에게 없는 것이 거기엔 너무 많았다. 남의 떡이 더 커 보이고 옆집 잔디가 더 푸르러 보인다고. 우리에게 없는 매력들이 손님들의 마음을 몽땅 빼앗아 갈 것 같았다.
영감과 나는 머리를 맞대고 묘수를 생각해보려 했다.
'그럼 우리도 빵 가짓수를 늘이면 되지 않을까?'
영감은 고개를 저었다.
빵 만드는 일은 정말 고되다. 영감은 새벽 3시 반에 일어나 4시에 출근한다. 빵을 더 만들려면 더 일찍 출근해야 한다. 가끔 빵이 너무 빨리 떨어져 아쉽다며 더 만들어 달라는 손님의 애정 어린 투정을 듣기도 한다. 그럴 때 나는 손님을 빈손으로 돌아가게 한 것에 미안한 마음이 들지만 그와 동시에 '우리가 살아있어야 이거라도 만들어요.'라는 생각으로 몸을 사리고 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시간과 에너지를 아껴 해야할 다른 일도 있다. 가게 이름을 '느림보 빵집'이라 짓지 않고 '상점'이라 칭한 데는 '빵만 파는 곳이 아니다'라는 의미이다.
우리는 현재 크게 두 가지 활동을 하고 있다. 하나는 내가 먹는 것이 무엇인지 알자는 지역 먹거리 운동이고, 다른 하나는 사람들과 함께 삶의 기술을 배우는 클래스를 주최하는 일이다. 최근까지는 <잘 먹는다는 것> 그리고 <잘 산다는 것:삶의 기술> 두 분야로 나누어 '우리밀로 빵 만들기'와 깨진 도자기 수리법인 '킨츠키' 클래스를 하고 있다.
먹거리 운동의 하나로 밀 농사도 짓고 있다. 경주 산내살래팀과 함께 산내에서 경주밀도 대량 재배하였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날 저마다 밀알 한 소쿠리씩을 들고 땅에 뿌렸다. 겨울을 나고 봄을 나는 동안 뭣하나 해준 것도 없고 잠시잠시 들여다보기만 했을 뿐인데 밀은 저 혼자 참 잘 자라더라. 제초제를 뿌리지 않아 풀이 무성한 밀밭에 누렇게 밀알이 영글었다.
밀을 거둬들였다. 그런데 풀이 많아 기계가 들어가지 못한다 했다. 풀이 엉겨 들기 때문이다. 결국 산내 친구들이 뜨거운 햇볕 아래 밀 한 알이 아깝다 하며 낫질을 했다.
농사는 정말 힘든 일이다. 이 소중한 밀알을 잘 써야지 다짐한다. 거둬들인 밀은 숙성이 끝나면 제분기를 이용해 날마다 새로이 빻아 통밀가루로 만들어 쓰려한다.
언젠가 우리가 기른 밀을 다른 빵집에서 쓰는 날도 오게 될까. 가까이에 우리밀을 쓰는 빵집이 생긴다는 건 우리가 해온 먹거리 운동의 결과(손톱만큼이라도 기여했다고)라고 생각하면 기쁠 일이다.
달에 한 번 영감이 느림보빵 만드는 법을 사람들에게 알려준다. 나는 영감에게 물었다.
"다 공개해도 돼?"
보통 공개하는 레시피는 뭔가 달라서 배워서 똑같이 만들어도 사 먹던 그 맛이 나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영감은 자기가 만드는 레시피 그대로 공개했다. 나는 걱정이 되어 물었다.
"영업비밀만 쏙 빼가서 똑같이 만들어 팔면 어떡하려고."
영감은 시큰둥하게 말했다.
"수지타산이 안 맞아서 그렇게 하기도 어려워. 기계도 안 쓰는 손반죽이라 많이 만들지도 못해. 소화하기 좋은 빵이지만 돈 잘 버는 빵은 아니지."
그리고 덧붙였다.
"느림보빵을 만들어 파는 곳이 많이 생기면 느림보빵 골목을 만들어볼까. 남포동 족발 골목처럼."
그렇구나. 그에게 새로운 우리밀 빵집이 생긴다는 건 함께하는 사람들이 생긴다는 의미였다.
이 글을 쓰는 동안 내가 느꼈던 두려움이 조금씩 작아지고 있었다.
우리에게는 우리만이 걷고 있는 길이 있었다. 우리가 사람들과 함께 한다면 사람들도 우리와 함께 할 것이라 생각했다.
새로운 우리밀 빵집의 등장을 어떻게 받아들이냐는 온전히 나에게 달렸다. 또 다른 경쟁자로 본다면 그것이 두려울 것이고, 나에게 새로운 자극을 주어 나를 돌아보게 해 준다면 감사할 것이다. 나는 두려웠으나 그 두려움을 살펴보기로 했다. 이 불편함은 대체 어디서 오는가.
그 덕분에 나는 느림보상점을 돌아보게 되었다. 내가 만들었지만 이제 내 것만은 아닌 가게. 4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이곳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농사를 짓고 빵과 음식을 만들면서 가게는 그 나름의 모습을 가지게 되었다. 팔다리가 자라고 머리카락이 자라듯이. 그 머리카락을 내가 이번에 정리해주었더니 이렇게 예쁜 모습이었구나 다시 보게 되었다.
새로 생긴 빵집님, 무서워해서 미안합니다. 덕분에 좋은 발견을 했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한번 놀러 갈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