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먹는 밥] 3화 어른도 아이도 놀 곳이 필요해
“우리 잠깐 얘기 좀 해.”
혹시 이런 말로 시작하는 대화를 해본 적이 있는가. 듣는 입장에서 왠지 혼날 것 같은 느낌이 든다면 당신은 감이 좋은 편이다. 아래는 내가 남편에게 며칠 전에 한 말이다.
“우리 잠깐 얘기 좀 해…. 나는 우리가 대화를 너무 안 하는 것 같아.”
라고 말했지만 사실 이 말이 하고 싶었다. ‘너는 대화를 너무 안 해.’ 결국 남편을 탓하고 싶은 마음을 조금 누그러뜨려 ‘우리’라는 단어로 완곡하게 표현한 것뿐이었다. 그때 내 속은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나는 우울해. 나는 혼이 쏙 빠지게 웃고 싶은데 너는 나를 웃겨주지 않아, 솔직한 감정을 터놓으며 영혼의 대화를 나누고 싶은데 너는 말이 없어, 아이들, 돈, 사업 걱정 없이 멍하니 시간을 보내고 싶은데 너랑 있으면 그런 얘기밖에 안 해. 아 이건 잘못 살고 있는 거야. 내가 우울한 건 다 너 때문이야!’
자 이럴 때 잠깐 멈춰 보자. 아직 입밖으로 꺼내진 말자. 한 가지만 먼저 확인해 보는거다.
“나 이번 주에 충분히 놀았나?”
남편과 아이들이 아닌 다른 사람들을 만나서 좋은 시간을 보냈나? 내가 좋아하는 취미활동을 했나? 아니라면, 내가 우울한 건 남편 때문이 아니다. 내가 덜 놀았다. 지금 그 생각을 입 밖으로 내지 말고 일단 더 놀고 오자. 편한 친구와 식사 한 끼 하고 나서 내가 얼마나 관대해지는지 지켜보면 남편이 배신감을 느낄지도 모른다.
나의 일상생활은 ‘집—일터—집’의 반복이다. 늘 같은 사람들, 남편과 아이들을 만난다. 내가 그들을 사랑하는 것과는 별개로, 내겐 집과 일터가 아닌 전혀 다른 장소가 필요하다. 놀 곳이 필요하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집과 일터에서는 채울 수 없는 다채로운 욕구들을 충족시키는, 유쾌한 사교의 장소가 필요하다. 도시사회학자 레이 올든버그는 그곳을 ‘제3의 장소’라 불렀다(제1의 장소는 집, 제2의 장소는 일터). ‘삶을 떠받치는 어울림의 장소’. 책 <제3의 장소>의 표지에 적힌 그 구절을 보며 설렜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그런 장소를 갈망하고 필요로 한다는 걸 알고 있다.
“심심해.”
학교에서 돌아온 첫째가 가장 많이 하는 말이다. 자기가 지루한 건 내가 놀아주지 않기 때문이라고 내 탓을 한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놀아주는 게 쉬웠다. 들어 올려 빙그르르 돌기만 해도, 간지럽히기만 해도 아이는 만족했다. 자라면서 아이들이 원하는 놀이가 복잡하고 섬세해졌다. 첫째는 내게 매달리고 부딪히며 몸으로 놀길 원했지만 아이는 이제 너무 무거워졌고 한 덩치 하는 나도 나가떨어질 만큼 힘이 세졌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절절하게 깨닫는 진리, 아이는 나 혼자서 못 키운다, 절대. 아이가 필요로 하는 걸 내가 다 줄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집과 일터를 벗어난 곳에서 새롭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것처럼 아이도 마찬가지로 집과 학교가 아닌 다른 장소에서 또래 친구와 다른 어른들을 만나는 기회가 필요하다.
예전에는 쉬웠다. 동네에 골목문화가 있고, 마을공동체가 있어 학교 갔다 오면 해 질 때까지, 엄마가 저녁 먹으라고 부를 때까지 이집 저집 옮겨 다니며 마을에서 놀았다. 이제는 공동체가 사라지고, 골목문화도 사라졌다. 맞벌이가 많아져 아이를 돌볼 사람이 없다. 놀 곳 없는 아이들의 빈자리를 학원이 대신했다. 나의 경우는 우선 학원비가 부담이고 자영업자로 내가 돌볼 수 있는 상황이어서 학원에 보내지 않고 있다. 하지만 다른 아이들이 학원에 가버리니 놀이터는 비어있고, 친구와 놀고 싶다면 따라서 학원에 가야 하는 상황이다. 학원이 아닌 다른 선택지는 없나? 아이들을 위한 제3의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느림보상점에 자주 오시는 단골손님이 있다. 커피에 빵을 주문하고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가시는데, 그날은 낯선 젊은 여자와 함께 오셨다. 손님이 가신 후 나는 그들의 주문을 받은 직원에게 그 여자분이 손님의 딸이냐고 묻자 그가 대답했다. “같이 운동하는 분인데, 빵집 입구에서 만나서 같이 올라오신 거래요.” 책에서 나온 제3의 장소를 설명하기에 훌륭한 사례였다. 따로 약속하지 않고 원하는 시간에 와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 유쾌하게 대화를 나누는 사교의 장소.
하지만 책에서 정의한 제3의 장소가 나의 정서에 꼭 맞는 건 아니었다. 나는 낯선 사람에게 먼저 말을 걸거나 합석하자고 하는 일이 거의 없으며, 수다 떠는 일을 좋아하지만 여유 시간이 얼마 없는 만큼 그 시간을 내가 좋아하는 책을 읽고 글을 쓰며 농도 짙게 보내고 싶은 마음도 크다. 그렇다면 방법이 있다. 기성품이 내게 맞지 않으면 주문제작을 하면 된다. 찾아도 없을 때는 직접 만들어 보자. 나와 이웃들이 필요로 하는 제3의 장소는 어떤 모습일까.
우선 내가 노는 장소에는 어떤 특징들이 있는지 알아보자. 주로 가는 장소는 두 군데이다.
1.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 마당
2. 글쓰기 소모임
어린이집 마당에는 아이를 데리러 온 부모들이 마당에 있는 평상에 앉아 수다를 떨고 육아 고민과 정보를 나누고 서로를 집에 초대하기도 한다.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놀고 어른들은 어른들끼리 평상에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현대판 골목놀이 처럼 보인다.
그리고 글쓰기 소모임에 나가는데, 짧은 글을 써서 읽고 마음을 나누는 자리다. 그곳에는 책을 좋아하고 글쓰기에 흥미가 있는 사람들이 열명쯤 모인다. 모임장이 준비해 준 맛있는 간식들을 먹으면서 사람들이 써 온 글을 읽고, 생각을 나눈다. 이곳은 포근한 마음 연결의 장소이다. 나는 이렇게 놀고 좋은 기운을 가득 채워온다. 어떻게 놀아야지 몸과 마음이 충전되는지는 사람마다 다르니 평소에 자신을 유심히 관찰하면 좋다.
아이는 어떻게 놀까. 어린이집 마당에서 놀고, 느림보상점에서 논다. 마당에서는 흙장난을 하고 친구들과 나무 타기를 하거나 달리기, 소꿉놀이, 대장과 졸병 놀이를 한다. 가게에서는 만들기, 요리, 자동차 경주 놀이를 하고, 화단에 물주기나 줄넘기를 하기도 한다.
위의 개인적인 특징들을 바탕으로 나와 아이의 놀이의 조건을 분석해 보니 아래 4가지가 필요하다.
1. 수다부터 속 깊은 이야기까지 모든 종류의 ‘대화’
티타임, 식사자리 같은 사교가 목적인 모임부터, 책모임, 글쓰기모임 같은 대화의 매개가 있는 모임이 있고, 온전히 대화에만 집중하는 대화모임도 좋다.
2. 음료, 간단한 먹을거리부터 식사까지
사람들이 모이는 자리에 먹을 것이 빠질 순 없지!
3. 아이들이 혼자 올 수 있는 거리의 장소
아이들이 원해서, 스스로, 언제든지 올 수 있으면 좋겠다.
4. 아이들이 놀 거리
아이들이 흥미를 느끼는 놀 거리를 준비한다. 초등 1학년인 아이의 요즘 관심사는 종이접기, 장난감, 요리, 로봇 만들기, 여행 계획 세우기이다.
좋은 소식은 우리에게 이미 장소가 있다는 점이다. 느림보상점은 위의 4가지를 모두 실현 가능한 장소이다. 사람들이 모일 공간이 있고, 주방이 있어 음료부터 식사준비까지 가능하다. 거기다 학교가 가까워 아이들이 혼자서 걸어올 수 있는 곳이다.
빵을 팔지 않는 날에는 느림보상점에서 사람들과 함께 놀고 싶다. 혹시 당신이 집과 일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거나 만나는 사람이 남편과 아이들 뿐이라면, 느림보상점에 와서 같이 시간을 보내면 좋겠다. 아이들은 저 혼자 놀러 보내라. 부모 없이 또래끼리 놀면서 많은 것을 배울 것이다. 우리에겐 장소가 있다. 뭐든 시작하면 된다.
사진: Unsplash의Louis Hanse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