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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바 Aug 27. 2024

아버지, 빵집에서 같이 일하실래요?

<시대예보>를 읽고, <시대예보>가 내다본 아버지와 딸의 미래

아버지께 전화를 드렸다. 폭염에 에어컨은 틀고 지내시냐 물으니 “돈도 안 버는데” 하시며 선풍기 하나 틀고 일거리를 찾고 계신다고 하셨다. 아버지의 아버지, 나의 할아버지는 쉰 살에 병을 얻어 돌아가셨다. 그래서 아버지는 당신이 쉰 다섯 쯤 되셨을 때부터 "얼마나 살겠냐"는 말을 자주 하셨다. 그런 아버지가 올해 환갑이다. 회사를 그만두고 귀농한 지 이십 년. 얼마 전 하시던 버섯 농사에서 손을 떼셨다. 힘에 부친다 하셨다. 고된 노동에서는 해방되었지만 끝이 아니었다. 농사를 위해 빌린 돈이 빚으로 남아있었다. 아버지는 지인의 소개로 정유 공장에 나가셨다. 정유 공장 일은 녹록지 않았다. 거리가 멀어 공장 근처에 고시원을 잡고 머물렀다. 공장 내부의 공기가 탁해 늘 방진 마스크를 써야 했고, 다혈질 상사의 윽박도 견뎌야 했다. 그럼에도 필요한 돈을 벌 수 있으니 버텨야지 했는데, 이젠 그마저도 계약이 끝나 집에 계신다. 그런 아버지를 보면 안타깝다. 내가 대학 다닐 때 아버지가 달마다 보내주신 용돈을 떠올렸다. 내가 돈을 많이 벌면 아버지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까. 그런 고민을 하던 차에 <시대예보>의 목차 속에서 ‘아버지를 고용한 딸, 가녀장의 시대’라는 소제목을 발견했다. 간절함으로 이 책을 집어 들었다.




핵개인의 시대에 공동체를 말하는 오리너구리

이제는 ‘핵개인’의 시대가 되고 있다고 저자 송길영은 말한다. 새로운 존재인 ‘핵개인’을 정의할 때 두 가지를 중요한 축은 ‘지능화’와, ‘고령화’이다. ‘누구나 디지털 도구와 AI의 도움으로 이전에는 혼자 할 수 없던 일들을 해낼 수 있게 된’ 지능화의 결과로 개인의 힘이 강해졌고, 100세 시대의 고령화로 회사와 가족을 벗어난 후의 삶이 더 길어졌다. 이전에는 없었던 낯선 변화이기에 저자는 날씨를 예보하듯 시대를 예보하여 사람들이 각자의 삶을 잘 준비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고 했다.

아버지의 딸, 나는 90년생이다. 저자의 시대 해석에 따르면 나는 집단주의와 권위주의에 반작용으로 출현한 개인주의 그리고 IMF 이후 국가에 대한 불신으로 생긴 각자도생의 분위기 속에 성장한 세대이다. 어느 세대나 기성세대의 삶에 반항하고 싶은 사람은 있는 모양이다. 나는 내가 자라온 개인주의와 각자도생의 삶에 대한 반작용으로, 공동체적인 삶을 탐구하고 있다.

‘오리너구리’ 이야기가 내 이야기 같았다. 오리너구리는 다른 동물과의 분류에 속하지 않아서 자기만의 계통, ‘오리너구리과’가 만들어졌다. 나는 빵집을 운영하고 있는데 스스로 ‘빵(만 팔지 않는)집’이라고 부른다. 빵을 팔아 공동체 만들기를 실험 중이다. 가끔 손님이 묻는다. 일주일에 사흘만 일해서 먹고 사나요. 일 안 하는 날엔 뭘 하나요. 쉽게 설명하기 곤란하다. 선례를 찾기도 쉽지 않다. 그저 나답게 살 궁리를 하다 보니 여기까지 왔을 뿐이다.




다양해서 망하지 않아

저자는 핵개인의 시대의 다양성은 생존과 번영을 위해서, 멸종하지 않기 위해서 필요하다고 말한다. 다양성이 얼마나 도움이 되느냐면, 나와 남편이 어떻게 빵집을 7년 동안 해왔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

우리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나는 창의적인 일을 좋아하고 변화를 받아들이는데 너그럽지만 반복되는 일에 쉽게 싫증을 낸다. 반면 남편은 일하기 싫다는 말을 한 번도 한 적이 없는, 꾸준히 하는 일을 잘하는 근면성실한 사람이다. 남편은 빵을 구웠고, 나는 행사를 기획하고 홍보물을 만들었다. 아이를 낳고, 코로나가 닥치고, 가게를 옮기는 등 여러 가지 변화에도 빵집을 접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성향도 잘하는 일도 다른 남편과 내가 함께 했기 때문이다.

물론 다른 우리가 함께 일하기 위해서는 많은 공부와 대화가 필요했다. 저자는 대화 순서의 평등성, 친화적인 분위기, 팀원 각자의 특장점을 융합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노력, 책임은 같이 지는 조직 문화, 형평성과 포용성이 보장된 안전한 환경 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우리 역시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일어나는 일들을 이해하기 위해서, 소통법, 비폭력대화, 마음공부, 조직문화 등을 연구했고 일본으로 공동체탐방을 다녀오기도 했다.




매일매일 정진, 현행화

빵집은 전문가가 아닌 이웃들과 함께 하고 있다. 일이 필요하고 공동체적 삶이 필요한 사람들을 환영한다. 빵 만드는 법을 모르면 가르쳐준다. 소통하는 법을 모르면 배울 수 있다. 함께 일할 때 필요한 능력은 무엇보다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개방성과 더 나은 사람이 되려는 열의이다. 이것이 저자가 말한 ‘현행화 능력’의 내 버전이다. 저자가 말한 현행화란 업데이트다. ‘새로운 도구, 새로운 기술, 새로운 연결성에 대한 적응’이다. 특히 ‘다음 세대와 교류하기 위해서는 현행화가 필요하다’는 말이 와닿았다.

“아버지를 고용하자.”

남편에게 제안했을 때 그는 한참 말이 없더니 이렇게 말했다. “‘장인어른’에게 일을 지시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

나는 아버지와 친하다. 어릴 때 왕복 80분 거리를 통근하는 아버지와 한 차에 타고 같은 노래를 들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 시간들이 있었다. 아버지는 권위적인 사람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아버지와 딸이라는, 장인어른과 사위라는 위계는 남아 그런 부분이 불편하고 알게 모르게 부담이 된다.

저자는 이슬아 작가의 소설 <가녀장의 시대>를 인용하며 ‘부양의 짐을 지되 그 역학은 수평으로 맞추는 타협’의 방법을 제시한다. 아버지와 딸, 장인어른과 사위라는 사적인 관계에다 새로운 관계가 더해진다. ‘가치 교환의 관계’, 아버지는 일하고 나는 임금을 드린다. 즉 계약 관계이다. 이 둘이 더해져 복잡하게 얽힌 관계들을 한차례 ‘재정립’한다. 이때 힘의 균형은 수평으로 맞춘다는 말이다.

남편의 불안이 조금 가라앉길 바라며 이 부분을 읽어주었고 그는 흥미롭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께 새로운 수평 관계를 제안해 보겠다고 내가 선언했다. 현행화로 가능할 것이다.

현행화는 매일매일 정진하는 일이다. 남들보다 앞서 나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변화하는 매 순간에 깨어있고 잘 적응하는 것이다. 아버지를 빵집의 새로운 구성원으로 맞이하게 되면 빵집의 시스템은 그대로여서는 안 된다. 아버지 또한 당신이 가지고 있던 기존 사회의 인습과 관행을 끊어내야 한다. 역설적이지만 지금처럼만 하기 위해서 매일매일 정진해야 한다. 욕심부리지 않고, 게으름 피우지 않고.




아버지가 중심을 잃고 표류하는 모습을 보고도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알아서 잘하시겠지 믿고 싶었다. 그러나 이번엔 달랐다. 아버지가 환갑을 넘어간 후 들어선 새로운 국면이었다. 아무도 내게 자식 도리를 운운하지 않았지만 나는 변화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이제껏 아무런 대비를 하지 않았기에 막막하기만 했다. 그러던 차에 <시대예보>를 만났다. 나와 아버지의 미래가 책에 있었다. 아버지 세대를 이해하고, 부양을 짐이 아니라 서로에 대한 ‘존중’으로, 달리 보게 되었다. ‘현행화’ 같은 구체적인 방법도 배워 유용하게 사용했다. 책을 읽고 글을 쓰며 한 발 내딛을 용기를 얻었다.

아버지께 전화를 드렸다. 빵집에 일하러 나오시려는지 여쭈었다. 아버지는 당신이 뭘 할 수 있겠냐고 되물으셨다. 나는 대답했다.

“뭐든요. 같이 찾아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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