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하기 싫다고 해서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냐.
"결혼은 내후년에 하자."
라고 해놓고는 내년이 되면 또 "내후년에 하자."라고 미뤄온지 수년째. 나도 염치가 있지 더 이상 내후년으로 미루자고는 할 수 없는 시기가 되었다.
-
우리는 대학교에서 CC로 만난 12년 차 커플이다. 마냥 호기롭던 20대 초반에서 이제는 조금 세상 물정을 배운 30대 중후반이 되었다. 내가 20대 후반이던 때부터 후배들이 하나 둘 결혼을 하기 시작했지만 우리는 꿋꿋하게 <연애>라는 견고한 성 안에서 동문들의 의문을 온몸으로 받았다. '저 커플은 왜 사귀면서 결혼은 안 해?'라는 의문.
대학생 때는 28살~30살이 되면 당연히 누구나 결혼을 하는 것이라는, 지금 생각하면 코웃음만 나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30살이 되었지만 결혼은 하지 않고 연애 중인 선배 CC들을 보며 '왜 저 언니 오빠는 결혼을 안 해?'라고 이해하지 못했던 사람이 바로 나였다.
나는 한 때 션과 정혜영 커플을 선망해서 '나도 저렇게 남편과 지극히 사랑하면서 아이를 많이 낳아야지!'라는 다소(많이) 무모한 계획을 세웠고, 아이를 셋이나 낳은 나의 엄마에게 '참나, 그게 얼마나 힘든 일인데!' 하는 꾸지람을 들었었다.
-
그랬던 나는 어떤 계기로 이렇게 변했을까.
생각해 보면 첫 회사에 입사한 뒤로 일이 무척 즐거워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일을 했고, 다른 것에는 크게 관심이 없었다. 요즘은 직장인들이 (직업인으로서의) '성장', '자기 계발'이라는 단어를 많이 쓰지만 당시의 나는 그런 단어들과 무관하게 내 일을 사랑했고 성장했다.
2년 차 정도까지는 주말이고 밤이고 일을 했고, 언젠가부터는 시간과 경제적 여유가 생겨서 대학 시절보다 비싼 밥을 사 먹으며 친구들과 놀 수 있게 되었다. 가끔 해외여행도 다녀오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훌쩍 결혼 적령기라고 생각했던 나이가 되어 있었는데, '벌써 이 나이가 되었다고? 난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되었는데? 지금 이 자유가 너무 행복한데?'라고 느꼈다. 결혼을 한다면 이렇게 달달한 자유는 누릴 수 없을 것 같았다.
남자 친구는 원했지만 나는 한 해, 두 해 계속 결혼을 유예했다. 그러는 동안 그의 마음도 오락가락해서 '나도 이제 결혼하고 싶은 마음이 줄었어.'라고 했다가, '나 다시 결혼하고 싶어.' 하기도 했다.
-
아무튼, 그랬던 우리가 올해(2022년) 결혼을 한다.
그런데 결혼을 왜 하는 걸까. 결혼을 미루던 내 마음이 이제는 변한 걸까? 그는 왜 이전부터 결혼을 원했을까.
이 대목에서 알랭 드 보통의 글을 인용하고자 한다.
약혼한 연인들에게 참을성 있게 자아를 살펴보면서 정확히 무엇 때문에 청혼을 하거나 받아들였는지를 조금 더 깊이 설명하라고 요구하면, 사람들은 이를 비낭만적이고 심지어 야비하다고 여긴다. 이렇듯 혼인 과정을 엄정히 분석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그 지위가 낮다. 물론 우리의 질문은 주로, 어디서 어떻게 청혼했느냐에만 집중된다.
알랭 드 보통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55쪽
사람들은 결혼을 결심하게 한 낭만적인 계기를 기대하지만 사실 (적어도 나에겐) 그런 건 없었다. 나의 생각은 '사랑하는데 결혼이 꼭 필요한가? 그냥 사랑하면서 살면 되는 거 아닌가?'였지만 상대방은 결혼을 원했고, 이 사회에서 "보다 안전하고 편안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결혼이 필요한 것이 현실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늘 의문을 던지는 삶을 살고 있는 나에게 결혼의 모든 과정은 '이거 꼭 이렇게 해야 돼?', '이런 것도 해야 되나?'의 연속이었고 자꾸만 사람들과 다른 길을 걷게 되었다. 이제부터 그 고민과 선택과 결과에 대해 공유해보려고 한다.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을 위해, 더 다양한 생각이 가능한 세상을 위해.
-
덧 1.
아, 내가 결혼을 미루어왔다고 해서 연인을 사랑하지 않았던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우리는 자주 만날 수 없기 때문에 더 애틋한 사랑을 하고 있었다.
덧 2.
이 글은 2022년에 쓰인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