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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인장 Oct 12. 2022

프로젝트 안암(安岩)

#14. 만연한 것들

1. 만연체


 리뷰를 확인하다 블로그 리뷰 중 이런 글을 보게 되었다.

전달코자 하는 주제에 알맞다 싶은 글을 인스타에서 타깃 광고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모르는 사람에게 놀림감이 되고 있었다.


글의 흐름으로 살펴보면, 맛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서두로 조롱을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어찌 됐든 내게 중요한 것은 모르는 커플에게 놀림거리가 되고 있었다는 것. 


국문학도이신지 어쩐진 잘 모르겠지만, 글을 지적받는다는 생각은 아예 해본 적이 없어서 많이 당혹스럽고 참담했다. 아마 별 생각없이 쓴 글이겠지만, 장난으로 던진 돌에 맞은 개구리 꼴이 되었다.

무슨 요리사가 글 못쓴다는 비난에 기분이 나쁠까. 음식은 맛있다고 칭찬을 받았는데. 

왜 그렇게까지 기분 나쁜지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니 스스로를 "요리사치고" 잘 쓴다고 믿었던 듯하다. 

아니면 고졸 치고 글을 잘 쓴다고 믿었거나. 


저 글의 지적대로 내 글이 만연체인가를 생각해보면 사실 나는 저 글을 보기 전까지 만연체가 무엇인지조차 몰랐다.


퇴고를 거치지 않은 글은 누구의 글이든 그렇게 느껴질 테고, 대부분의 글이 퇴고를 할 시간까진 주어지지 않는 내 입장에선 시간이 부족해서라고 핑계를 대보지만, 글을 읽는 사람에겐 현재 눈에 보이는 텍스트가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의 전부일테니 원하는 방향으로 판단할 수 있는 뚜렷한 기준을 주지 못한 내 부족함이 크다. 

책을 읽거나 글을 읽을 때 글을 쓰는 기술에 대한 생각은 별로 해보지 않은 것 역시 나의 잘못이다. 


2. 만연한 것들


  흠을 잡긴 쉽지만, 다른 분야를 시도할 자격은 쉽게 주어지지 않는 세상이다. 

사람들이 실패를 무서워하는 것도, 남이 나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신경 쓰는 것도 약간은 이해가 된다. 

의도와 상관없는 시선으로 나를 보는 것엔 익숙한 편이라 개의치 않지만, 흠을 잡을 자격은 누가 주었는가? 그것 역시 타인을 비난하는 것에 대한 자유와 상관이 있는 것인가? 내가 이런 글을 쓰는 것은 모순적이지 않은가? 만연하는 기준 사이에서 또렷하게 나로 산다는 건 "무엇이든 잘한다"는 뜻이거나 "흠잡을 곳 없는"것이어야 하는가? 에 대해 생각한다. 

 또 타인의 흠을 잡는 이들은 완벽해야 하는가? 그들은 어떤 마음으로 타인을 흠잡는가? 그런 사람들에 대한 평가는 내가 할 수 있는가? 그렇기에 쉽게 그들에 대한 판단을 한다는 건, 나 또한 같은 사람이지 않은가? 에 대한 생각도 하게 된다. 

나는 사람이 배운 만큼 세상을 보고 산다고 믿는다. 자기 시야에서 보이는 세상이 수면 밖인지 수평선 밖인지 더 배우기 전엔 알 수 없다. 수면 아래서 세상에 대해 이야기해봐야 자기 눈에 보이는 세상이 전부일뿐이다. 

다양한 기준에 평가받는 세상이다. 만연할 건 수면 위로 뛰어오르려는 시도여야 하지, 타인을 평가하는 기준이여선 안된다고 믿는다. 


오늘 일을 계기로 나는 내 수준의 기준을 가지고 타인을 평가하고 있진 않은지, 낮은 수준으로 높은 수준인 척 하진 않았는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내 실수로 인한 노이즈에 묻히진 않을지, 내가 나로 산다는 것에 있어서 어떤 것이 가장 중요한지에 대해 한번 더 생각해보게 된다.

내 방식대로 사는 것 외엔 방법은 없다. 내가 사랑받기 위해 모른 척해봐야 씁쓸함만 남는다.

비웃음을 사고 있는가? 그렇다면 나는 그 이슈를 계기로 성장할 수 있는가? 

나로 산다는 건 내가 겪은 사건들을 자양분으로 만드는 것. 

내가 성장할 수 있다면, 이 불쾌함 또한 시간이 지나 좋은 기억으로 남을 테다. 

만연체가 무엇인지 배웠고, 내 수준을 알게 되었다. 

내 기분은 분명히 불쾌하지만 오늘이 지나면 아무것도 아닐 거다.

한 가지 확실한 건 명확하게 어제보다 나은 사람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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