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스와니예(Soigne)
나는 스와니예 출신이다.
길지 않은 삶의 터닝포인트가 몇 가지 있다면 가장 깊게 자리 잡은 2가지 중 하나가 아닐까 한다. 기억에 남은 시기가 몇번 있는데, 공통점을 꼽자면 관점을 변화시켰다는 것. 보이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게 해 준 장경원셰프와의 인연이 그랬고,
다른 문화권에 속하면서 편협한 사고방식에 대해 의식하고 의심하게 했던 해외 근무생활이 그랬고,
팀으로 일하면서 레스토랑 비즈니스를 다각화해서 보거나, 팀원 각각의 시너지를 이끌어내는 리더십, 브랜드가치와 브랜딩 개념에 대해 인지하게 해 준 스와니예서의 시간이 그랬다.
내가 이준이라는 셰프에게 받은 영향은 요리사로서 장경원이라는 셰프에게 받은 영향만큼이나 크다.
기획자로서 이준의 사고방식을 내 것으로 만들고자 많은 복기를 통해 내가 가진 기획의 기준을 만들 수 있었는데, 그 복기의 내용은 당연히 스와니예에서의 경험이다.
스와니예에서 직, 간접적으로 했던 모든 경험은 대부분 브랜드 경험이었는데 사람들이 소비하는 콘텐츠를 소비자 관점에서 준비하는 과정, 아카이빙을 통해 우리 자체를 브랜딩 하는 과정, 브레인스토밍을 통해 직원들이 브랜드 자체에 집중하게 하거나 스스로 생각하고 결론을 낼 수 있게 기다려주는 내부 브랜딩의 과정은 요리사 특유의 고질적인 생산자적 관점에서 벗어난 관점을 가지게 해주었다.
많은 복기를 통해 내린 결론은, 나는 "이준"처럼 할 수 없다는 것. 존경의 의미도 있지만, 다른 삶을 살아온 두 사람이 같은 결론을 내릴 순 없다고 생각을 정리했다. 그렇게 다른 사람이라는 건, 각자의 경험이 다르다는 것.
그렇게 다른 결정을 해온 사람들이라야, 각자의 색을 내는 것이라고 믿는다.
현재의 난 과거의 내가 경험해 온 사람들을 쌓아 올려 만들어졌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된 시기 역시 스와니예에서였다. 그래서 스와니예에서의 시간부터 "경험"이란 가치는 내가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에 가장 소중한 재료였고, 그것을 얻기 위해 사용하는 돈과 시간을 아까워하지 않았다.(덕분에 엄마한텐 돈 안 모은다고 많이 혼났다.)
음식을 만드는 사람에게 음식의 색은 자신의 삶과 일치한다.
요리사라면 누구나 할 줄 알게 되는 공통적 분모, 고된 노력으로 클래식컬한 조리방식을 겹겹이 쌓아 올리고 나서야 분출하는 색은 아이러니하지만 그 사람 자체의 원시적인 경험이다.
브랜딩은 내게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하는 답안지이면서, 내 주장을 더 설득력 있게 들리게 할 수 있는 언어다. 브랜드는 문제해결 과정과 나의 주장에 공감할 수 있는 경험들이 쌓아올라 만들어진 나와 닮은 인격체다. 내가 보여주는 브랜드의 상(相)이 진심이 전달되어 매력적으로 보일수록 사람들은 이 브랜드를 아끼고 사랑해 주게 된다. 국밥의 팬이라기보단 안암의 팬이 되어준 분들의 말씀을 들어보면 더욱 그렇다.
전문직종이 가져야 할 양심적 가치관과 정의의 기준 같은 뿌리가 깊은 가치관들을 떠올리면 항상 기준이 되는 사람은 장경원이다. 내가 요리사로서 근본이 어디 있고, 누구의 등을 보고 좋은 요리사가 되기 위해 집중했는가를 생각해 보면 언제나 장경원이다.
그렇지만 내 사고력과 관점을 다각화하고, 타인의 경험을 간접적으로 설계하거나 구상하는 법을 이해하게 되고, 전달력 있게 전달하도록 세상을 보는 관점을 열어준 건 스와니예에서의 경험이었다.
내가 기억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보다 훌륭하다.
스와니예의 준솊과 팀원들이 낸 성과는 더욱 훌륭하다.
타인의 성과에 흔치 않게 행복함을 느낀다.
올바른 사람들이 성과를 내는 시간이 끊임없이 이어지길.
스와니예의 2 스타 달성과 이전 모두 축하하며.
Be soigne!!